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김영사, 2007) 읽다.


과학자의 눈으로 본 신의 허상

 

얼마 전, 신문 기사를 읽고 쓴 메모.

 

이슬람 무장 단체 IS2,000년 된 이라크의 고대 도시를 파괴했다. 앞서 이들은 모술 박물관과 고대 아시리아의 유적물들도 약탈, 파괴했다. 이들은 율법주의자, 교조주의자다. 나는 저들의 구호를 알지 못한다. 관심 없다. 그러나 생명을, 문화재를, 역사를 앗고, 파괴하고, 소멸시키는 저들의 행위에는 분노한다. 유네스코는 경악했고, 나는 분노한다. 그들의 울림과 구호는 의미 없는 양철통 속 메아리일 뿐이다. 설득의 전제란 타자에 대한 겸허한 자세다. 하긴, 애초에 설득이 아닌 배제를 택한 저 광신도 집단에게 이 또한 공염불이겠지.

- 2015.03.07

 

저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옳은 일을 했다. 우리가 보기에 맹목적 비합리성이 그들에게는 그들의 신을 위한 숭고한 투쟁이요, 항거다. 그리고 우리는 안다. 저들의 행위는 성경의 데자뷰다.

성경은 기록한다. 시나이 산에서 내려온 모세가 금송아지를 만든 같은 부족에게 했던 행위를. 모세는 우상을 숭배한 사람들을 칼로 베어 죽여 무려 3,000명에 이르는 동족 살인을 했다는 것을(출애굽기). 성경은 증거한다. 모세가 미디안인을 공격할 때 도시를 불태우고 모든 남자를 살해했으며, 처녀인 여자들만은 살려 그들의 성노리개감으로 취한 사실을(민수기). 또한 성경은 말한다. 우상을 섬기는 자들의 제단을 헐고 석상을 깨뜨리고 목상을 잘라버리라고. 왜냐하면 거룩한 야훼는 질투의 신이므로(출애굽기).

내 상식으로는 IS와 유대인들의 차이점을 알지 못하겠다. 그들은 그들의 종교적 신념을 위해 살인, 방화, 강간, 약탈을 했고, 윤리, 도덕, 생명, 문화, 다양성, 인간다움을 파괴했다. 만약 성경 속 유대인들을 옹호해야 한다면, IS에게도 같은 논리를 적용해야 마땅하다. 혹자는 모세 5경의 내용은 구약이므로, 예수 탄생 이전과 이후를 구분해야 한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럼 되묻겠다. 십자군 전쟁과 중세의 마녀 사냥은? 그들은 다른가. 같은가. 다른가.

 

인간의 본성이 합리적인가의 문제와, 사고나 행위의 지향점이 합리적어야 한다는 명제는 결이 다르다. 나는 나라는 인간의 비합리성을 인지할 정도의 이성은 갖고 있는, 말하자면 합리성을 추구하는 비합리적 인간이다. 또한 진보의 방향, 역사의 나침반은 비합리성으로부터 합리성으로 궤적을 그려야 한다고 믿고 있는 인간이며. 물론 역사적 퇴행이나 정체는 있어 왔으나, 우리가 입력해야 할 내비게이션의 도착점은 지금보다는 좀 더 합리적인 세계여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합리성이란 이치와 논리적 근거에 타당한 성질을 말한다. 폭력이 아닌 대화가, 차별이 아닌 구별이, 맹신이 아닌 설득은 합리적이다. 그리고 유일신을 믿는 종교엔 폭력, 차별, 맹신적 요소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비합리적, 비개연적 주장을 강요하거나 강변하는 것은 퇴행적이거나 퇴행적일 가능성이 높다. 그 퇴행의 집합체가 종교다. 미신과 종교의 차이는 그 행위 주체가 단수냐, 복수냐의 차이가 아닐까.

 

진화론창조설은 대립적 위상으로 격론의 대상처럼 여겨지나 사실 창조설은 과학적 논증이라기보다는 ’, ‘설화’, 곧 이야기이므로 같은 위상의 대상이 아니다. 이른바 과학적 사실이나 이론은 무수한 반증 가능성의 여과지를 통과한 시료액 같은 것이다. 그러나 신화는 그렇지 않다.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 알레고리다. 사실이 아니라 은유다. ‘단군신화의 과학성을 논리적경험적실증적으로 틀렸다고 백날 떠들어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창세기의 천지 창조가 옳다 그르다 따진들 무엇하랴. ‘창세기단군신화와는 다른 실제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그것을 확증할 수 있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곧 반증가능성이 없다 해서 그것을 사실이라 강변하면 곤란하다. ‘이 마늘과 쑥을 먹고 웅녀가 된다거나, ‘으로 인간의 형상을 빚어 인간을 만들었거나 과학적으로 검증될 수 없기는 매한가지다. 신화적 메타포와 실험과 관찰에 의한 과학은 다르다.

설령 진화론에 허점이 있다하더라도, 그래서 다윈의 자연선택이 폐기될 위기에 처한다 한들 그것이 창조설이 옳다는 반증이 될 수 없다. ‘진화론창조설은 모순적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A : 이 책상의 재료는 플라스틱이다.’‘B : 이 책상의 재료는 강철이다.’에서 AB는 모순 관계가 아니다. A가 틀렸다 하더라도 B가 옳다고 판정할 수 없다. BB가 옳다는 실증적 증거로 A를 설득할 의무가 있다. ‘진화론창조설둘은 다루는 대상도, 방법도, 성격도, 논리도, 세계도 같지 않다. 다른 거다. 스마트폰과 남대서양너울무늬붉은점박이가시고기처럼, 다른 거. 종교는 신앙비사실이며, 과학은 비신앙사실이다. 종교는 믿음이지, 사실이 아니다.

 

제법 두꺼운 양장본의 이 책에서 제일 관심 깊게 읽은 부분은 ‘4. 신이 없는 것이 거의 확실한 이유편이다. 작가는 창조, 진화론 중 어떤 것이 통계적 비개연성의 문제를 더 논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해 비교한다. 창조설의 주장은 이렇다. ‘완벽해보이는 생물체(가령 인간)가 어떻게 지적 설계자(이를 테면 신) 없이 우연히생성될 수 있는가. 우연에 우연을 거듭해 부속품들이 제 멋대로 조립돼 최첨단 노트북을 만들어지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인간이나 이 생태계의 완벽한 조화 역시 우연히 만들어질 리가 없다는 것. 이에 대해 작가는 창조설이 오역한 자연 선택의 개념을 바로 잡는다. 즉 생물(가령 인간)완벽하지 않으며, 진화는 우연이 아닌 생존 경쟁에서 이긴 선택의 결과다. 곧 결과물로만 봤을 때는 얼핏 설계된 듯 보이는 생물들이 사실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점진적으로 진화한 사례와 증거를 제시한다.

 

한편 여전히 남는 의문은 생명의 기원. 나는 아직도 무기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유기물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 이 책에서도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생명의 탄생 과정에 대한 설명이 미흡하다 하더라도 다윈의 자연 선택은 무수한 반증과 검증을 통과해 살아 남았으므로 진화론이 폐기될 수는 없다. 진화론은 생명의 기원에 관한 이론이 아니라 생명체의 진화에 관한 이론이기 때문이다. , 패러다임으로서 진화론의 지위는 굳건해 보이며, 특히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론은 명쾌하고 완벽하다.


Posted by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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