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일지『경마장 가는 길』(민음사, 1990)

흐림.

 

이 소설에서 무엇보다 눈여겨 봐야할 것은 시점 및 거리이다. 형용사나 유추를 엄격히 배제. 소름끼치도록 치밀한 묘사는 작가 자신의 임의적 판단이나 느낌을 제한한다. 종래의 문학에서 작가가 판단한 당위적 견해(가령, “A는 B를 사랑한다”라는 문장에서 작가가 사용한 ‘사랑한다’라는 관념적 판단은 모든 개별적 존재마다 다르게 평가할 수 있기 때문에 이는 필연적으로 우리의 사고를 제약한다는 것. 실은 A가 보여준 여러 행동-손을 잡는다든가, 키스를 한다든가, 부드러운 미소로 상대를 응시한다든가, 소주에 취한 네 눈이 맑아 보인다고 말한다든가, 아주 오래전부터 주고 싶었던 선물이라며 우산을 건넨다든가-은 ‘사랑한다’는 관념이 있기 전의 객관적 사실일 뿐. 이를 귀납 혹은 일반화한다는 것은 실체를 왜곡할 수 있다는 것. 모든 인간은 각자가 다른 현실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이러한 주관적 평가는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을 임의로 조작하고 왜곡하는 것.)는 필연적으로 구조물(텍스트) 속에서 독자를 강압한다.

즉 작가가 유도하는 일정한 사고의 틀로 독자의 사유를 규격화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일지는 반문한다. 그와 같은 종래의 도식적 구조에서 독자는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과연 작가는 독자를 가르칠 수 있는가? 하일지 본인은 그럴 만한 능력도 없고 동시에 그러고 싶지 않다고 새침하게 입을 닫는다. 결국 소설의 시점 및 거리 두기는 작가와 독자의 관계, 나아가 작가의 역할 및 독자의 권리로 방향이 정해진다.

 그리고... 인간 간의 <도덕> 또는 <사랑>이란 위장된 관계. 익명성 및 열린 구조로서의 결말. 귀결되는 현실과의 개연성. 플롯의 단조로움. 이론 자체의 소설화(경험-스토리의 소설화와 대비되는). 경마장의 상징성 - 배설 및 에로티즘, 결론. 소설 장르의 활기와 다양성. 메타픽션.

한편 이 소설이 내게 주는 화두는 두말할 나위 없이 "반복성"(예전의 독서 노트를 꺼내봐야겠지만 15년 전의 기억도 마찬가지 일 걸)이다. 우리의 볼품 없는 일상이란 또 얼마나 볼품 없게 반복적인가. 종과 횡. 모든 상품이 질서 정연하게 가지런히 놓여진 마트에서 라면을 산다. 질서 정연한 마트에서 사온 라면은 질서 정연하게 찬장에 차곡차곡 쌓여진다.
쏠쏠한 재미. 혹은 쓸쓸한 재미.
삶.

R의 찌질함과 J의 비논리성.
R의 궤변과 J의 히스테리.
R의 독선과 R의 담배와 R의 발정과 R의 경마장.
익명성은 ‘모두’를 전제한다.
불규칙적 반복이란 삶의 일관된 패턴이 아니겠는가.

덧> 그 시절. 소설 이론에 해박했던, 경남 통영이 고향이었던, 「섬진강 5」를 읊으며 소주에 취해 울던, 지금은 대학에서 시간 강사를 하는, 가장 아름다운 절은 언어(言)로 만든 절(寺) 곧 시(詩)라고 했던, 그래서 조금은 나를 감동시켰던, 그 선배의 유행어. “대체 니 삶의 이데올로기가 뭐냐.” 깔깔거리며 따라 했던 그 대사. 하일지에는 이 대사가 딱 한번 나왔을 뿐이었다. 기억의 날조 혹은 변조.

Posted by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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