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길, 눈뜨면 없어라(해냄, 1993, 2011 3) 읽다.

  

서툰 희망을 경계하며 절망을 직시한다

 

비 오는 날이었다. 나는 분당수서간 고속화 도로의 어디쯤 차 안에서 잔뜩 화가 나 있었다. 비는 오고, 도로는 정체 중이었던 것이다. 아마 출근길이었을 테다. 아무 생각 없이 켜 놓은 라디오 소리가 무신경하게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 뚜둑. . 불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모스 부호 닮은 빗소리에 섞여. 사실 그때 나는 출구 없이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있었다. 휴일 없이 계속 되는 일과 일 사이사이. 남루한 일상과 마이너스가 늘어가는 월급 통장. 안전지대는 없었다. 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라디오에서, 김한길의 산문집, 그 건조함과 치열한 문장에 대해 들은 건.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후 나는 이 산문집을 읽는다.

 

인간은 여러 거죽을 끼고 산다. 그 거죽의 두께와 질감은 저마다 다르고 그것은 또 위치나 관계에 따라 변색한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에 따라 다른 가면을 쓴다. 부모나 형제, 친구, 수위실 아저씨, 선생님과 청소 아줌마를 대하는 가면은 다른 것이다. 융은 이것을 페르소나라고 명명했다. 그렇다면 가면 아래 고유의 본모습은 어떤 것일까. 대체 그런 것이 있기나 한 것일까. 외부의 일체와 관계 없이 자신만의 고유하며 본래적인 본성이 있을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나는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다.

김한길은 정치인 이전에 소설가였다. 내가 그를 처음 알게 된 것도 여자의 남자라는 소설을 통해서였으니까. 그러나 소설 속 인물을 작가의 투사물로 보는 전통적 견해가 옳다면 김한길의 정계 입문은 예상 가능한 수순이다. 이번 민주당 당대표 선거에서 이해찬 씨에게 석패를 하긴 했으나 김의 예상 밖 선전에 당 안팎이 모두 놀랐다. 당 대변인부터 출발해 국회의원, 장관, 이번 총선에서의 화려한 복귀, 그리고 이번의 민주당 당대표 선거 과정에서의 파란까지 김한길은 분명 성공한 정치인의 길을 걷고 있다. 소설(여자의 남자) 속 남주인공(이름 가물)의 행보가 결국 그의 정치 욕망의 예고편이라는 해석은 견강부회일까. 나는 그가 처음 정계에 입문했을 때 그닥 놀랍지 않았다.

 

한 마디로 매우 좋은 산문집이다. ‘매우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간결하고 리듬감 있는 문장은 그의 필력을 증명한다. 눈에 잘 들어오는 문장들과 사색의 무거운 무게. 짧은 글이지만 기승전결의 안정 구조. 위트 있고 진솔한 표현은 읽을수록 맛이 난다. 책을 놓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과장하지 않아서 좋다. 그의 표현대로 자신의 절망을 딱 그만큼의 깊이만큼 보여 준다. 아니 여과해서 보여준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까. 어둠의 습지의 삶, 그 한복판에서 나오는 위트는 그래서 슬프지만 아름답다. 어떤 이는 삶은 웃픈 것이라 했는데,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김한길의 산문집은 분명 웃프(웃긴데 슬프). 우리 삶이 우스우며 슬픈 것처럼.

곱씹는다. 싫은 것에 분명한 이유가 필요하듯, 좋은 것에도 적절한 근거가 역시 요구된다. 어떤 평론가는 좋은 글을 좋다고 말하는 게 참 힘들다 했다. 옳다. 읽으며 참 좋다, 참 좋다, 몇 번이나 말했는데(속으로가 아니라 입 밖으로)도 이 책이 왜 좋은 책인지 말하기가 참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이유가 있기는 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책을 읽으며 나는 나의 20대 즉 그 수치스러웠던 기억들이 위로받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일종의 공감이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었구나, 그래 너도 그렇게 힘들었구나. 우린 모두 그 어둠의 터널을 지나 지금 여기 서 있다. 이 자리에 서면 그 시기가 통과점으로 분명히 보이지만, 늪처럼 막막하고 까마득했던, 그래서 출구가 보이지 않았던 나의 20. 아직 너무나 서툴렀던, 과잉된 자의식만으로 똘똘 무장해 독기를 품고 지냈던. 그 지점을 통과한 자들의 충고를, 오만이라고 여겼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절망의 크기를 과장해서 값싼 술을 마시고 더러운 거리에서 술에 취해 토악질하던 시기가 있었던 것이다.

20대를 보냈거나, 보내거나, 보낼 이 땅의 수많은 영혼에게 위로와 자비를.

 

Posted by 가림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