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스 호이엑-마우스, 떼쓰는 아이 심리 백과(이재금 역, 청어람미디어, 2010) 읽다.

  

친절하고 단호한 육아의 방법


저자는 떼쓰기공격성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하며 그 둘을 다른 챕터로 구분했는데 막상 해결 방법은 동일하다. ‘떼쓰기는 영아 때, ‘공격성은 유아 시절에 나타나는, 즉 어린이의 발달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일종의 현상이다.

아이의 위와 같은 행동의 이유는 유전적 요인보다는 환경적 요인이 큰 것이며, 그 핵심적 이유는 부모의 잘못된 양육 때문이다. 아이에게는 부모가 곧 세계이며, 모방의 틀이며, 인간 관계의 최초 대상이다. 만약 이 전제가 옳다면 아이의 비뚤어지고 부적절한 행동의 유인은 전적으로 부모로부터 비롯한다. 그래서 올바른 육아의 방법에 대해 저자는 구구절절(구질구질로 읽으면 곤란하다) 말한다.

 

친절하고 단호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친절한 태도란 부모가 아이를 훈육의 대상으로만 여기지 말고, 하나의 살아 있는 인격체로서 대해야 한다는 의미며, ‘단호한 태도란 상벌의 정확한 기준과 규율을 제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친절한 필자의 친절하라는 이 말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너무나 어려운 숙제이기 때문에 당혹스럽다. 인지부조화.

 

나는 여성성이나 남성성도 환경적 요인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 환경, 역시 부모의 태도다. 가령 남자 아이가 소꿉놀이 할 때의 부모 반응과 자동차 놀이를 할 때의 부모 반응은 다르다. 전자의 경우보다 후자일 때 부모는 더욱 관심을 갖고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비록 너는 남자 아이니까 소꿉놀이를 하면 안 돼. 그건 계집애들의 놀이야.”라는 부모의 제지가 없다 하더라도 이 아이는 부모의 관심을 좇아 자동차 놀이에 좀 더 열중한다. 즉 남아가 남자처럼 행동 했을 때, 보이는 부모의 반응에 아이는 익숙해지고 이는 동일 행동의 반복으로 나타날 것이다. 결국 아이의 2차 성정체성은 가정에서 학습된다. 유전적 요인과 더불어 부모의 이러한 태도가 사회적 성역할 규정 이전에 아이에게 강제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수수께끼는 풀리게 마련이다.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친절한 태도는 결국 관심으로부터 비롯한다. 아이에 대한 관심에는 두 종류의 것이 있다. 하나는 긍정적 관심, 다른 하나는 부정적 관심. ‘칭찬은 코끼리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듯, 아이의 착한 행동에 대해 칭찬하고 반응을 보이는 것이 결국 아이를 규정한다. 아이의 잘못된 습관이나 나쁜 행동을 계속 지적하는 것은 우리 아이를 나쁜 아이로 주홍글씨 새기는 잘못이다. 옳지 못한 행동은 칭찬을 통해 옳은 방향으로 바꾸는 것, 감정을 실려 화내지 말고,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느끼도록 하는 것. 이것이 친절한 태도. 만약 나에 대한 평가가 착한 사람이라는 쪽이 조금이라도 더 많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현명한 우리 엄마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로선 단호한 태도가 사실 더 어렵다. 매사에 우유부단하고, 내 삶에 대한 확신도 없는 내가 아이를 어떤 식으로 주조(?)한다는 생각은 아무래도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아이에게 사무적이거나 엄격한 태도를 취하는 것, 이것은 결국 균형의 문제로 환원된다. 아이는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것, 세상은 인과의 규칙이 지배한다는 것, 이 세상은 성공의 기쁨보다는 좌절의 슬픔이 곳곳에 매복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좌절에 대한 저항력은 아이를 단련한다. 담금질한 무쇠가 단단해지듯.

 

그래도, 나는 아직 요 단호함이 어려울 것 같다.


Posted by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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