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정승일이종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부키, 2012) 읽다.

 


가장 현실적이고도 이상적인 복지국가론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읽다 보면 신자유주의의 모순과 함정을 알게 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궁금증이 그려진다. 이 책은 그 궁금증에 대한 대담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물음표라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일종의 예시 답안이다.

 

대담집이다.

시사IN 이종태 기자가 의제 설정 및 논의 제시를 하면, 장하준정승일 박사가 이에 대해 풀어가는 식이다. 읽다 보면 장하준정승일의 구분이 잘 안 될 때가 많다. 으로 시작하는 성씨가 비슷해서일까, 아니면 그들의 문제 인식과 대안 제시가 유사해서일까. 아무튼.

 

액면으로만 보자면 지루하고 심심한 책이다.

고작 재테크 서적 수 권밖에 읽은 적 없는 얄팍하고 저렴한 독서량, 그에 비례하게 조악한 경제학 지식 수준으로 이해하기에는 ‘BIS’, ‘M&A’, ‘R&D’ 같은 용어는 매트릭스의 암호문이다. 그래서 또박또박 읽었다. 일주일 간 꼼꼼히 읽으니, , 나는 이제 좀 알 것만 같다. 가상현실 매트릭스를 이루는 숫자와, 그 숫자 배열들의 불규칙적 패턴이 그려내는 수열의 원리를. 기특한 수열.


장하준은 전작에서 신자유주의를 나쁜 사마리아인으로 규정했다.

그 핵심은 이렇다. 개발도상국이 경제를 발전하기 위해서는 보호 무역 및 유치산업의 육성 등이 필요한데, 신자유주의는 선진화’, ‘세계화라는 미명으로 이들 국가들에게 자유무역을 강요한다. 비유하자면 초등학교 야구 동아리와 메이저리그 프로팀과의 사활을 건 대결이라 할까. 싱거운 경기일 테지. 어쨌든 이것은 현재의 경제 질서를 관성화시키며, 따라서 개발도상국은 신자유주의의 그늘 밑에서는 결코 괄목할 만한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역시 신자유주의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현재 신자유주의 질서의 핵은 금융 산업이며, 여기에는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주주자본주의가 탐욕스런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다. 이 주주자본주의는 인내심이 부족하다. 때문에 자신이 투자한 기업의 장기적이며, 지속 가능한 발전에는 관심이 없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상하이 자동차가 쌍용자동차를 () ()’ 한 것처럼 이들은 언제라도 자신의 이익분이 달성되면 이익금을 환수해 자신들의 동굴로 달아난다. 따라서 주주들에게 배당금과 이자를 챙겨주기 바쁜 기업(또는 주주에 의해 임명된 CEO)은 신기술 투자나 노후 생산 시설 정비 등에 쓰일 자금 운용에 인색할 수밖에 없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1960년대로 돌아가 보자. 제일모직이 같은 계열사의 (이제 막 시장을 개척하려하는) 삼성전자에 원조하는 것은 지금의 주주자본주의 관점에서 잘못이다. 왜냐하면 제일모직에 투자한 주주는 자신의 이익금을 환수할 마땅한 권리를 지녔기에, 제일모직에서 발생한 순이익을 다른 회사(같은 계열사라 하더라도 이들은 법적으로 독립 회사다)에 투자하는 것은 기업이 주주의 확정된 이익을 빼앗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 역시 배임죄로 고소돼야 한다. 이런 식이라면 현대자동차도, LG전자도 지금 같은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없게 된다.

재투자하지 않은 기업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자명하다. 결국 해당 기업은 알맹이를 쏙 뜯긴 채 또 다른 하이에나에게 내맡겨질 신세로 전락한다. 결국 금융을 정점으로 하는 이 신자유주의에 대한민국과 같은 이머징마켓은 휘둘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다시 되돌이표, 보호 무역이나 국가 핵심 산업 등의 관치가 필요한 이유.

 

문제는 이 관치에 관한 평가다.

우리 사회는 박정희의 오랜 그늘에 신음했던 기억을 공유하기 때문에, 그와 관계된 기억의 상흔을 제거하려 한다(물론 다른 편에선 박정희 우상화 작업이 현재도 진행중이지만). 때문에 진보적 개혁주의자라는 사람들이 박정희는 전체주의자에 반민주주의자이므로 그의 행위는 모두 옳지 않다, 그는 악의 화신이다, 그러므로 그가 했던 경제 정책인 관치 역시 구시대적이며 반민주적인 경제 시스템이다라는 도식적 인과를 그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들의 견해는 다르다. 포악한 금융 시장으로부터, 그리고 고장난 브레이크를 달고 달리는 주주자본주의로부터 국가 경제를 지키기 위해선 이 사악하며 탐욕스런 짐승들에 대해 원칙을 갖고 통제규제할 관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니까 민주주의를 억압했던 박정희는 내던지더라도 그가 했던 산업 정책이나 보호주의 경제 정책은 지금에도 유효하며, 그러므로 박정희는 비스마르크나 이토 히로부미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근대화의 영웅이라는 평가가 적절하다는 말씀. 논의를 연장하자면, 그렇기 때문에 2008년 금융 위기를 선제적으로 극복했던 리만 브라더스(이명박강만수)의 관치에 대해서도 저자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물론 신자유주의의 종결자란 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규제 철폐나 민영화 사업을 비판하긴 하지만).

역으로 책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의 방임적 시장주의에 대해서는 칼끝을 세워 신랄하게 비판한다. 왜냐하면 이 두 민주 정부의 자유 시장주의 때문에 사회적 양극화는 심화됐으며, 공기업 민영화가 진행되었고, 노동 유연화라는 이름의 정리 해고가 많아졌으며, 중산층 붕괴가 가속화되었다는 것이다. 진보 개혁 세력 입장에서 이런 비판은 물론 불편하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 정부, 특히 한미 FTA 추진 등에 대해선 이런 비판도 마땅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관치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동의하고, 논리적으로도 타당하다 생각한다.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일단 유보하자. 심정적으로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힘들어서일까.) 적어도 한 국가의 경제 방향이 다국적 기업이나 금융 자본에 휘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가적 차원에서 이를 관리감독하며, 경제 모델을 계획설계하는 것이 관치라면 나는 이 관치에 동의한다. 하지만 재벌에 관해서는 어떤가.

재벌에 관한 책의 주장은 한 마디로 재벌과의 대타협론이다. 국가가 재벌의 경영권을 보장하는 법률을 마련해 주고, 현재의 재벌 체제를 인정해 주되 재벌로부터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자는 얘기다. 가령 부자 증세라든가, 신기술신사업에 관한 투자 확대, 해외 공장 설립 제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리해고 제한 등의 세칙을 재벌이 준수 이행할 수 있도록 정부와 사회가 압박하자는 주장이다. 이와 같은 것이 국가의 경제 발전을 선도할 수 있으며, 나아가 복지국가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재벌에 관한 사회적 논의는 이른바 재벌 해체론이다. 지난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이 발의했으며, 19대 국회에서 강력 추진할 재벌 개혁의 골자는 부패한 재벌을 건강한 40(맞나?)의 중견 기업으로 환골탈태 시키자는 것.

하지만 이에 대해 저자는 격하게 반박한다. 만약 지금의 금융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재벌이 해체되면 그 우량한 기업을 누가 인수할 것인가, 쌍용자동차나 대우자동차를 누가 가져갔으며, 해외 사모펀드가 대한민국의 재벌해체론에 반색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라고. 결국 현시점에서 대한민국의 재벌을 해체하자는 주장은 해외 사모펀드와 외국계 기업 앞에 날 잡아잡슈방치하는 격이다. 빗대자면 탐욕스런 하이에나 떼 앞에 탐스런 톰슨 가젤을 방목하는 격이라고 할까.

요약하자면 삼성 같은 대기업을 대한민국 정부가 국유화하지 못할 바에야 재벌 체제를 인정하자는 거다. 오히려 저자들은 재벌들의 경영권을 국가가 보장하고, 이에 상응하는 대가로 이들 기업이 사회적 테제를 선도할 수 있도록 만들자는 착한 주장을 한다. 이 점 동의한다.

 

그러나

과연 가능할까.

온갖 탈세와 불공정 거래, 편법 승계와 분식 회계 등을 일삼는 저들 기업이 과연 개과천선해서 착한 기업이 될 수 있을까.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이라 본다. 저자들 스스로 말한 바와 같이 인간은 이기적이며, 기업은 더욱 이기적이다. 이기적인 기업이 당근으로만 유혹한다 해서 현재의 기득권을 그냥 내던질까. 강온책이 필요한 이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재벌과의 대타협이 가능하기 위해선 선결 조건이 필요하다. 현재 진보 개혁 세력에서 추진하는 재벌 해체를 구호로 하는, 재벌에 대한 강력한 견제와 감시가 그것이다. 범법한 기업인에 대한 확실하고 단호한 처벌과 감시 의무가 필요하다. 늘 솜방망이 처벌과 면죄부를 주는 사법부가, 국회가, 행정부가 먼저 변해야 한다. 용서와 화해는 강한 자가 요구할 수 있다. 재벌과의 대타협을 요구하기에 우린 너무 힘이 약하다. 책에서 비판했던 재벌 해체의 구호와 재벌과의 대타협이 동시적이고 다각도로 진행될 때, 요원한 복지 국가로의 첫 걸음은 시작될 것이다. 이것이 현실적이고도 이상적인 복지국가론이 아닐까.

 

책의 복지 국가 모델은 내 인식의 모호함확실로 바꿔 주었다. 막연했던 복지 국가의 개념이 구체적 상으로 잡혔고, 이 청사진이 구성원 모두가 함께 해야만 구현할 수 있는 미래상임을 나는 안다. 그대와 내가 날실과 씨실로 꿈을 엮어 비단을 짜듯, 보편적생산적선순환적 복지 국가를 함께 꿈꿀 때 그것이 가능함도.

 


복지국가를 이야기하면 흔히들 너무 이상주의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라. 우리는 1950년대 당시 미국의 대외 원조 기관인 국제개발처의 내부 보고서에서 밑 빠진 독이라고 불릴 만큼 경제 개발에 실패한 무능력 국가로 평가 받았다. 1961년 경제 개발에 착수할 당시까지도 1인당 소득이 연간 82달러로, 당시 아프리카 가나이 1인당 소득인 179달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떠한가? 2011년 현재 한국은 환율 기준으로도 GDP 세계 14, 1인당 국민소득 연간 23750달러에 달하는 신흥 공업국이 되었다.

우리가 제시하는 보편적 복지국가 역시 이처럼 이룰 수 있다. 지금은 우리의 복지 수준이 OECD 최하위권으로 멕시코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1961년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에 착수했을 때처럼 전 국민의 힘을 모아 복지 개발 5개년 계획을 세우고 앞으로 10년 후, 20년 후, 30년 후를 바라보면서 힘차게 나아간다면, 10년 후에는 이탈리아 수준, 30년 후에는 스웨덴 수준의 복지국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423)



Posted by 가림토..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