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일 외, 박정희의 맨얼굴(시사in, 2011.04) 읽다.

 

 독재는 좀 했지만, 경제는 잘했다?


선거의 해다.

박정희의 딸, 박근혜는 지난 5년 동안 대선 지지율 1위를 단 한차례도 뺏기지 않았다. 추세 상으로 본다면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은 박근혜가 유력해 보인다. ‘선거의 여왕으로까지 불리는 그녀의 추동력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그래서 박정희다.

 

흔히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독재는 좀 했지만, 경제는 잘했다로 귀결될 것이다. 박정희의 18년 철권 통치를 독재가 아니다, 라고 항변하는 사람들은 애초에 소통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제쳐 두자.

 

박정희의 경제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기 전에, 일단 가치 평가에 대한 고민을 선행해야 할 것이다. ‘독재는 했으나 경제는 잘했다. 그러므로 박정희는 훌륭한 대통령이다라는 명제의 전제는 경제라는 영역의 신성불가침성에 있다. 해방 직후에도, 산업화 이후에도, 민주화 이후에도, OECD 가입 이후에도, 세계 경제력 10위권을 목전에 둔 지금에도 오직 중요한 것은 그 망할 경제’ ‘경제’ ‘경제였다. 과연 경제가 정치사회문화예술의 합집합을 상회할 만큼의 불가침 영역인가.

물론 경제는 중요하다.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설에 따르면 인간의 욕구 단계는 총 5단계가 있고, 이는 각 순서대로 생리 안전 사랑 - 자아 존중 - 자아 실현이다. 경제(생리-안전)는 다른 모든 것이 있기 위한 기본 조건이며, 이 항목은 그 상위 단계로 발전하기 위한 초석이며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경제 만능론은 경제를 모든 것의 필요충분조건으로 환치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보릿고개를 넘기던 시절의 상황 논리를 1970년에, 심지어 2012년의 지금에도 적용하면 곤란하지 않은가.

경제는 중요하다. 하지만 경제가 인권자유보다 중요하다 말할 순 없다. 모든 것이 뒤바뀐 가치 전도의 세상에서 이제 우리의 시선을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돌릴 때라 생각한다.

 

박정희로 돌아가자.

이 책의 문제의식은 이렇다. ‘박정희가 경제를 잘했다고? 과연 그럴까? 박정희 정권 18년을 오직 경제, 하나로만 낱낱이 파헤쳐 주겠어.’ 뭐 이런 식.

각 장별로 필자를 달리 해서, 논지가 조금씩 다른 부분이 있으나 박정희의 경제 정책은 대체 아래와 같다.

 

1. 선성장 후분배론

2. 관료적 통제, 관치경제에 의한 성공 신화

3. 수출지상주의, 중화학 공업 육성책

4. 재벌 주도형 경제 성장

 

선성장 후분배론(1)2012년 현재에도 적용된다. 이른바 MB노믹스, 낙수효과를 기대한 성장우선정책이다. 이는 경제개발 초기에는 성립 가능한 정책으로 유효하나, 개발도상국의 단계를 뛰어넘는 순간 순차적으로 폐기해야 할 정책이었다. 즉 이는 경제 개발의 초기 단계에 국가가 주도하는 관치 경제(2)를 말한다. 박정희 정권은 관치 산업의 목표와 방향을 수출지상주의와 중화학 공업 육성(3)으로 잡았다. 덩치가 커지고 국가가 관리해야 할 산업 분야가 다양해짐에 따라 국가는 관치 산업을 민간에 이양했고, 이것이 재벌 주도형 경제 성장(4)으로[민영화] 귀결된다.

 

여기서 관치 경제(2)나 수출주도형 중화학 공업 육성책(3)에 대한 논박은 전술적 차원이니 굳이 논박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장하준이 복지국가의 모델 동력으로 제시한, 국가 주도의 관치 산업에 대한 평가는 현재의 내 경제 지식 수준으로는 평가가 불가능하므로. 선성장 후분배론(1) 역시 당시 대한민국 경제 상황으로 봐서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성장 우선 정책의 기조를 집권 기간 내내 유지했던 그 인습적 관성은 지적해야 한다. 이후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에까지 이르는 동안 이 기조는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 철옹성이 됐고, 그 결과 대한민국 국민은 국가의 보위를 받지 못하는 각자도생의 길을 강제 받았다. 결국 현재 대한민국의 물신화라는 것은 국가가 만든 거대한 괴물인 것이다. 하지만 문제의 근원을 무한정 소급하는 것도 지나치므로 이쯤에서 해두자.

문제는 재벌 주도형 경제 성장(4) 바로 이것이다. 이는 독재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 자금 출처로서의 거대 재벌 탄생을 낳았고, 정경 유착, 재벌의 도덕적 해이, 중소기업의 성장기반 취약 등의 부작용을 낳았다. 박정희 본인의 권력욕과 독재욕을 위해 국가가 주도해 재벌을 성장시켰으며, 그것은 필연적으로 노동자에 대한 임금 착취와 인권 유린으로 이어진다. 자원 및 기술이 현격히 부족한 당시 국내 경제 여건에서 유일하게 풍부한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노동집약적 산업 육성은 많은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했으나, 박정희 정권과 재벌 대기업은 노동자에게 과실을 나누어 주지 않았다. 국가 주도의 임금 억제책은 저임금 노동자를 양산했고, 이를 바탕으로 상품의 가격 경쟁력은 제고되었으며, 대한민국은 수출 중심 경제로 경제 체제를 확립할 수 있었다.

 

정리.

박정희 정권을 경제성적표로만 판단한다면 일각에서 말하는 것처럼 낙제점이라 할 수 없다. 관치 경제나 수출 주도형 산업 등은 대한민국 경제의 성장 모멘텀을 확보했으며, 선성장 후분배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지금 시각에서의 평가이므로 온당치 못하다. 그러나 자신의 독재 연장을 위해 재벌 주도형 경제 성장으로 전환한 것은 정경 유착 및 노동자의 임금 착취를 낳았으며, 이는 기형적인 부의 편향성을 가져왔으므로 잘못이다.

그러나 이것은 박정희 옹호론자들이 말하는 오직 경제성적표만 최대 양보치로 평가한 것이다. 비록 경제 성적표에서 어느 정도의 후한 점수를 준다 할지라도, 정치인권사회 등에서 받은 낙제점을 상쇄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이 박정희의 망령에서 벗어나야 할 이유다.

 

아래는 <한국의 지가>라는 메모. 통렬하고 가장 재미있게 읽었으나 전반적 경제 정책으로 보기 어려우므로 글에서는 뺐다.

 

한국의 지가(이정우) : 한국 땅을 팔면 캐나다를 6번 사고, 프랑스를 8번 살 수 있다. (한국 남북한 22km2, 프랑스 55km2). 비싼 지가 : 도로 증설 비용 증가(토지 보상), 가계 압박(부동산), 이로 인한 서민의 팍팍한 삶, 공장 건설 부담 등. 1963~1979년의 17년 동안 땅값은 무려 180배 상승. 불로소득. 박정희 정건 기간 연평균 9.1%의 고도 성장. 하지만 그 결과는 소수의 부유층에게 집중. 특히 생산현장에서 131조의 소득이 발생하는 동안 부동산 시장에서 326조의 불로소득이 자산증가의 형태로 발생.


Posted by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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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2.21 1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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