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흠 소설집『귀뚜라미가 온다』(문학동네, 2005) 

 

9개의 단편 묶음.

 

1.「광어」- 횟집 주방장과 다방 레지. 여자는 누구의 새끼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낙태한다. 남자는 여자를 위해 광어회를 뜬다. 죽을 만든다. 남자는 여자가 다방에 빚진 돈을 갚으려고 돈을 모은다. 남자는 여자에게 함께 떠나자고 한다. 다음날 아침 여자는 남자를 남겨두고 돈을 들고 사라진다. 남자는 여자가 버린 광어회를 우물우물 씹는다.

2.「귀뚜라미가 온다」- 달구는 술을 마시면 늙은 엄마를 팬다. 바로 옆방에서 남자와 여자는 섹스를 한다. 늙은 엄마는 매질의 아픔을 꾹꾹 참는다. 여자는 교성 소리를 꾹꾹 참는다. 태풍이 몰아치던 밤, 남자는 아이를 갖기 위해 여자의 뒤에서 힘을 쓴다. 달구는 늙은 엄마를 심하게 매질한다. 집이 태풍에 휩쓸린다.

3.「밤의 조건」- 두 개의 조건 만남. 하나, 제이는 쉬메일(shemale)과의 섹스에서 이전과는 다른 흥분을 느낀다. 둘, 남편의 배웅을 받고 조건 만남을 나간 여자는 중년의 남자에게 매질을 당한다.

4.「구두」- 아내가 바람을 피운다. 남자는 자신의 어머니와 아이를 죽이고, 아내도 죽인다. 마지막으로 안마를 받고 싶어 안마방에 간다. 맹인 안마사가 안마를 한다. 남자는 맹인 안마사를 뒤쫓는다. 잠입. 강간. 자살.

5.「전나무숲에서 바람이 분다」- 겨울, 육손이(왼손은 정상, 오른손이 여섯 손가락이다) 산장지기가 있는 인적 없는 산장. 여자가 산장에 찾아와 유산을 한다. 남자는 정성껏 여자를 구완한다. 여자는 회복하고 둘은 같이 잔다. 며칠 후 여자는 계곡에 빠져 죽는다.

6.「배의 무덤」- 영철씨는 원양 어선을 타고 떠난다. 우루과이에 도착한 영철씨는 그곳에서 양치기를 하며 산다. 20년 정도가 지난 후 영철씨는 고향에 돌아온다. 다방 레지였던 아내는 집을 나가고 영철씨의 딸은 다방 레지가 되고 싶어 한다. 딸이 다방에 취직한 그날, 마을 남자들은 영철씨를 땅에 파묻는다. 왜? 20년 전. 마을 청년들은 다방 레지였던 영철씨의 아내와 잤고, 그 사실을 안 영철씨는 그 마을 청년들의 아내 14명을 강간한 후 떠났었다. 영철씨가 떠난 후 마을 청년들은 영철씨의 딸을 ‘가랑이에 털도 잡히기 전’에 유린했다.

7.「2시 31분」- 여자 A가 여자 B를 죽인다. 남자 A가 여자 A를 죽인다. 남자 B가 남자 A를 죽인다. 남자 A와 여자 A는 사랑했던 사이. 여자 B는 남자 A가 사랑한 여자. 남자 B는 여자 B의 아들.

8.「배꽃이 지고」- 정신 지체아 병출씨, 병출씨의 아내 개순이. 과수원 주인. 과수원 주인의 아내. 과수원 주인의 아내는 병출씨, 개순이, 아내를 때린다. 개순이의 젖을 먹고 싶어 개순이의 젖먹이 아기를 죽인다. 배꽃이 진다.

9.「성탄절」- 성가대원 나는 전 목사의 딸 듀나를 사랑한다. 고물상 땅딸보 남집사의 딸 수은이는 나를 좋아한다. 성탄절 이브, 나는 땅딸보 남집사와 듀나의 관계를 알게 된다. 나는 교회 강대상 뒤에서 승은이를 벗긴다. 그러나 승은이의 몸에 들어가기도 전에 사정하고 만다. 비릿한 냄새가 교회 안을 가득 채운다. 나는 수은의 손을 잡고 매일 밤 폐가로 향한다.


 

며칠 전, 면도하다 베었다.

종종 있는 일이다.

소설을 읽는 동안 이 쌉싸래한 느낌은 뭘까, 생각했는데 이제 알겠다. 면도날에 벤 섬뜩함이다. 삵-. 처음엔 상처가 난 줄도 모른다. 육안으로는 식별이 안 되기 때문이다. 조금 아프다. 면도가 끝나고 나면 칼에 벤 부위는 피로 물든다. 혈흔은 많지 않다. 칼에 벤 만큼의 아픔, 칼에 베어진 만큼의 혈흔. 면도날은 과장하지 않는다.

 

두 번째 소설「귀뚜라미가 온다」를 읽을 때쯤, 느꼈다.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 - 결핍과 대립.

소설의 인물은 모두 결핍된 존재들이다. 그것은 ‘구속’과 ‘자유’로(광어), ‘성(性)’으로(귀또리, 밤조건), ‘신체’로(밤조건, 배꽃, 전나무숲), 때로는 ‘젖’(배꽃)이나 ‘성가대원의 숫자’(성탄절)나, 혹은 ‘언어’(전나무숲, 배꽃, 구두 등)로 모양을 달리할 뿐이다. 결핍이란 말은 상대적 개념이므로 곧 결핍되지 아니한 것은? 이라는 반문이 성립된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결핍과 대립 구조의 안정감(?)을 획득한다. 남자와 여자. 늙음과 젊음. 사디즘과 마조히즘. 가학과 피학. 정상과 비정상. 배꽃과 배. 신성(교회)과 신성모독(섹스). 죽음과 삶.

 

결핍된 것은 결핍되지 않은 것을 시샘하고 질투한다.

결핍되었다는 사실의 진술은 폭력을 수반한다. 이것은 ‘반드시’라고 할 수는 없다. 생각해 보라. 모든 결핍된 존재가 폭력적이라면 세상은 얼마나 볼만 하겠는가. 하지만 백광흠에게 그것은 필연이다. 백광흠에게 ‘성(性)’이란 곧 폭력이다. 사드가 떠오른다.

 

그렇다면 왜?

평론가는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평론가 김형중의 말을 빌려보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사드를 통해 백광흠을 조명한다. 그 중 앞의 내용을 잠깐 인용한다. 무척 흥미롭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백광흠의 주인공들이 사랑의 대상을 선택하는 기준 중 앞의 세 가지(남의 여자일 것, 순결하지 않을 것, 그러나 내가 구원해줄 가치가 있을 만큼은 가엾을 것)는 마지막 기준(엄마를 느끼게 해 줄 것, 혹은 엄마일 것)에 포함된다고 말해도 무방하단 사실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백광흠의 주인공들이 욕망하는 대상은 궁극적으로 엄마인바, 그 엄마는 창녀이고, 다른 남자의 여자이면서, 나의 구원을 기다리는 여자이기도 하다. … 내 여자인 줄 알았던 여자가 사실은 다른 남자(아버지)의 여자였단 사실을 확인한 남아(男兒)는 일차적으로 아버지에게 심한 질투를 느낀다. 그러므로 사랑을 선택하는 첫 번째 기준에서의 ‘경쟁자’는 사실을 심리적으로 모두 아버지이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부정한 관계로 치부한 이상 어머니는 부정한 여자가 된다. 두 번째 기준, 곧 순결하지 않은 여자에 대한 신경증 환자들의 매혹은 이로부터 파생된다. 나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를 택한 여자, 어머니는 곧 부정한 여자다. 물론 세 번째 기준, 즉 타락한 여자를 구원한다는 테마도 이로써 설명이 가능한데, 부모의 관계를 용납하기 힘든 남아는 어머니의 변심을 자의가 아닌 것, 어쩔 수 없었던 정황의 산물로 치부함으로써 자신의 사랑을 방어한다. 그리하여 어머니는 지금은 어쩔 수 없이 타락해 있지만 언젠가는 나에 의해 구원받아야 할 대상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한다. (263, 264쪽)

소재 및 스토리의 파격성에 섬뜩하다.

그런데 이 섬뜩함을 더 빛내는 장치가 있으니 그것은 그의 문체다.

간과하기 쉽지만 작가는 소설의 비극미를 극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문체에 신경썼음이 틀림없다. 

이른바 비극적 황홀미?

가령 아래와 같은 구절은 탁월한 시구가 아니겠는가.

 

여자가 병출씨를 발견하자,

멀찍이 서서 배꽃을 만지작거립니다.

손끝으로 똑, 꽃잎을 땁니다.

여자가 꽃잎을 버리지 않고 다른 손에 모읍니다.

한 손 가득 꽃이 모아지면 바람을 기다립니다.

하얀 배꽃이 눈처럼 흩어집니다.

여자의 얼굴에 하얀 배꽃 같은 미소가 번집니다.

 

 

덧> 이 책에 관한 독서감상문 몇 개

- 룰루룰루 :  http://rulurulu.tistory.com/303?srchid=BR1http%3A%2F%2Frulurulu.tistory.com%2F303

- 상큼한좀비통조림 : http://zombie21.egloos.com/1838096

 

덧>「전나무숲」에서 여자는 칠성장어를 잡으려다 죽는다. 왜 칠성장어? 아무 생각없이 읽었는데...

오늘 EBS 다큐 10+에서 그 정체를 봤다. 아, 이 녀석은... 좀... 그렇다. 아래는 칠성장어 사진이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동물에 앞으로 칠성장어가 추가된다. 1. 바퀴벌레 2. 쥐 3. 칠성장어

 

 

Posted by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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