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화, 가난한 부모라면 세상에 맞설 지혜를 줘라(다산 에듀, 2012) 읽다.

 

가난하지만, 지혜로운 부모의  육아 일기


빈부란 상대적이다. 그렇다면 평균적으로 나는 가난 쪽에 속하는가. 동산과 부동산의 크기나 양을 봤을 때 나는 내 삶의 모양대로 어정쩡할 것이다. 가난하지도 부자이지도 않은 내가 가난한 부모의 육아 일기를 읽는다.

 

늘 반복되는 얘기지만 대한민국에서 사교육은 필요악이다.

술이 필요악이듯, 게임이 필요악이듯, TV가 필요악이듯 사교육도 필요악이다. 담배가, 총이, 폭력이 악인 것과 달리 사교육은 필요악이다.

학벌 위주의 공고한 사회 구조가 붕괴되지 않는 이상 좋은 대학에 대한 수요는 공급의 범위보다 훨씬 상회한다. 서울대학교에 얼마나 많이 입학을 했느냐가 고등학교의 성적의 척도라고 했을 때, 특목고를 제외한 일반고에서 서울과 비서울의 격차는 크며 서울 안에서도 강남 3구와 그 외의 지역 차이의 격차는 더욱 크므로, 흔히 말하는 아파트 값 비싼 데서 사는 고등학생들의 성적이 그렇지 못한 곳에 사는 학생들보다 월등히 높다는 결론이 난다이유는 명징하다.

가난한 부모들은 먹고사니즘의 이데올로기가 자식 교육보다 앞선다. 당연하다. 교육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생존 그 자체보다 우선시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안타깝다.

반면 부자인 부모들은 먹고 사는 생존 자체에 대한 1차원적 고민은 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자식 교육에 대한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투자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효율성의 측면에서 공교육은 사교육을 이길 수 없다. 사교육이 밀집한 강남 3구의 고등학교에서 서울대학교 입학생을 많이 배출하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다.

빈부의 되물림은, 그러므로, 사회 구조에서부터 시작한다.

문제는 사교육을 없애는 것도, 사회주의 식으로 부의 공평한 분배도 아니다. 기형적으로 형성된 사회의 재구조화가 필요하다.

 

늘 그렇듯 자극적인 제목이다.

지혜를 줘라에서 반감이 가난한 부모에서 공감을 느끼며 책을 읽는다.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호기심을 채워 주며, 책을 가까이 하게 하는 것, 그것이 세상에 맞설 지혜라는 것이다. 공감한다. 내 독서는 편협하며, 고르지 못하다. 우리 수겸이가 건강하고, 지혜롭게 세상을 살았으면 한다.

 

감정 이입이 돼서 그런지, 읽는 도중 몇 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영혼이 따뜻한 아이가 됐으면 한다.

부디 세상의 가난한 부모의 아이들이여, 지혜롭게 세상을 살아가시길. ‘맞서지는 마시고, 가난한 아이들, 부자인 아이들 가리지 말고 아름답게 세상을 직조하시길, 바란다.

축복이, 그대들에게.

Posted by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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