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가대표], 잘 짜여진 픽셀의 조합

 

영화 <국가대표>를 본다.

무더위에 파리들조차 비행 중단 파업을 선언한 늦은 저녁.

수영이나 배워볼까, 수영복 하나 사서 덜렁 거리며 도시를 배회 한다. 덜덜 거리는 선풍기와 부채가 있는 집으로 가자니 두.렵.다. 우리집은 그 흔한 에어컨조차 없다. 피서해야 한다. 그래서 들른 곳이 영화관. 청량한 영화, <국가대표>. 오랜만에 들뜬 나는, 먹이 보고 꼬리 흔드는 나일 악어처럼, 과장되게 박수도 치고, 환호도 하며, 엉덩이를 들썩들썩대며, 영화를 본다. 청량한 영화, <국가대표>.

 

할머니께서는 시골에 계셔서 자주 뵐 수가 없었다. 책을 보면 할머니께서 어린 손주에게 옛날 옛적에 하며 옛 이야기를 해주는 장면을 종종 보는데, 난, 그럴 경험이 거의 없었다.

5살의 나이 차이가 나는 형은 어린 내게 동화책 이야기나 모험 이야기, 무협 이야기 등을 들려주곤 했다. 무인도에 불시착한 한 남자가 비행기의 잔해를 이용해 집을 지으며 무인도에 적응하는 이야기를 형은 시리즈로 며칠 동안이나 해주곤 했었다. 요새말로 하면 시즌 1, 시즌 2, 뭐 이런 식이다. 그 얘기들은 정말 재밌었다. 비행기의 파편으로 바람 막이를 하고, 프로펠러를 이용해 자가 발전 동력기를 만들고, 야생 염소를 길들여 목장도 만들고.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는 분명 흥미롭고 신나는 이야기들.

변성기가 지나고, 아픈 성장통을 겪고 나서 나는 알게 되었다. 형이 책에서 들었다던 그 이야기들은 형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것을. 모든 이야기는 화소(話素) - 즉 이야기 구성 요소의 적절한 배합으로 이루어진다는 것도.

 

여기 잘 짜여진 픽셀의 조합이 있다. <국가대표>



1. 주인공은 치유할 수 없는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2. 그는 어릴 때부터 뛰어난 능력이 있지만, 현재는 폐인의 상태.

3. 그의 능력을 아까워한 한 코치가 그를 설득한다. 그리고 성공.

4. 감독은 팀을 모은다. 팀의 멤버들은 저마다 개성이 있고, 그래서 불협화음도 생긴다. 까부는, 어리버리한, 과묵한, 찌질한, 어린 , 뚱뚱한, 잘생긴 녀석 등.

5. 한편 팀의 멤버는 공통 분모가 있다. 그들은 결핍된, 혹은 버려진 존재. 우여곡절 끝에 팀의 멤버들은 의리로 뭉치게 된다.

6. 지독히 원시적인 방법으로 훈련을 시작한다. 몽타주. 코믹적 요소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때도 이 장면들이 나열될 때이다.

7. 극복할 만한 몇 가지의 시련을 겪는다. 그들은 극복한다. 이 팀은 더 이상 서툴지 않다.

8. 극복하기 어려운 시련을 겪는다. 내우외환이라 했던가. 이 경우는 외환내우가 적당하다. 외부의 시련의 여파로 멤버들은 갈등한다. (종종 감독과의 갈등도 있다)

9. 갈등 지속. 와해된 팀원 개개인의 모습, 몽타주.

10. 남자들만의 찐한 의리로 짜잔~ 그들은 다시 뭉친다.

11. 시합을 한다. 그리고 승리, 혹은 승리 상당의 선전을 한다.

12. 화면은 슬로우. 이때 웅장한 음악을 곁들이면 효과는 배가된다. 엔딩.

 

기본적 공식이 뭐 이런 거 아니겠는가.

무한도전 <봅슬레이 특집>도 뭐 위의 화소들을 적절히 배합해서 엮었던 것 같기도 하고.

 

문제는 어떤 화소를 만드는가가 아니다. 해 아래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창조될 수 없듯이, 모든 서사 구조물은 창조적 모방에서 더욱 힘을 발휘한다. 영화 <국가대표>의 잘된 점은 화소들의 매끄러운 연결이다. 구조물들을 아교로 단단히 붙여 이야기를 유연하게 이끌어야 한다. 비약이나 과장을 통해 실패한 <해운대>를 생각해 보면 <국가대표>가 얼마나 픽셀의 조합에 신경썼는지 알 수 있다.

 

강도 높은 쇠를 얻는 방법이란 단련의 반복이다. 불에 달군 후 두드리고, 불에 달군 후 두드리는 것이다.

감동적인 영화는 희극(+)과 비극(-)의 단련을 통해 만들어진다. 로멘스 영화의 기본 서사는 만남(+), 잠시 이별(-), 화해(+), 갈등 및 파국(-), 극적의 재회(+), 사별(-) 의 구조를 취한다. 반대의 극점도 물론 가능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수축과 이완의 반복이다. 웃겨 줘야 긴장은 이완되고, 느슨해진 혹은 무방비의 상태에서 감동이란 놈이 덱데굴 굴러 오는 것이 아닐까. (영화평은 태어나서 두 번째니, 독선적이라도 너그럽게 봐주시길) 잘 단련된 영화를 보며 감동이란 놈과 깔깔거리며 어깨동무하며 집에 갔던 기억을 우리는 갖고 있다.

 

잘 단련된 영화이기에

김수로와 박정수 아줌마 등의 반짝 출연이 맛깔났던 영화이니까

성동일의 능청스런 코믹 연기와 과장되지 않은 CG가 참 그럴싸한 영화이기에

주인공 차헌태의 일탈 및 복귀 과정의 매끄럽지 못한 서사 전개

강요된 애국주의를 연상케 하는 애국가 부르는 장면에 대한 거부감은 애교로 넘어가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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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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