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다라 [曼茶羅, Mandala]
- daum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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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84. 눈 덮인 길
개울을 건너서 능선으로 기어 올라가는 법운과 지산.
지산: 그래, 이번엔 부처님 빤스 자락이라도 붙잡았나?
법운: 부처님 그림자도 못 봤습니다.
지산: 그림자는 잡히지 않지. 원래 존재하지 않으니까?
법운: 스님은 언제까지 이렇게 살 셈입니까? 늘 취해서만 살 작정이냐구요?
지산: 놔 두게. 이렇게 비틀거리면서 사는 것도 삶의 한 방법이니까.
법운: 희망은 없는가요?
지산: 희망이야 무한하지. 하지만 난 이제 글러 먹었어.
법운: 포기했다는 얘긴가요?
지산: 포기는 안 해. 방법은 하나 남아 있으니까?
법운: 무슨 …… ?
지산: 절망으로 절망을 이기는 거야.
잠시 마주보는 두사람. 다시 걷기 시작한다.
S#85. 눈 덮인 첩첩 산중
걸어가는 두 사람
지산: (둘러보면) 꼭 공동묘지를 지나가는 기분이군.
법운: 중생에겐 삼계(三界)가 다 무덤이죠.
지산: 태어나지를 말아라, 죽기가 괴롭느니. 죽지를 말아라, 태어나기가 괴롭느니……. 원효 대사는 니힐리스트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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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운: 마치 견성한 사람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지산: 견성은 쉬운 일이지. 실행이 어려울 뿐. 우리가 인생에서 최초로 허무에 부딪혔을 때 초극하기 위한 방법으로 택한 게 입산(入山)아닌가. 그래서 공부했다, 허무를 뛰어넘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란 말이야. 뛰어넘었는데 보니까 더 큰 허무가 기다리고 있더라 이거야. 허허 또 기다리고 있어요. 그야말로 허무의 첩첩 산중이라.
법운: 결국은 좌절인가요? 좌절의 슬픔인가요?
지산: 허무를 모조리 극복해 버린 후에 맨 꼭대기에 앉아 계신 분이 바로 부처야. 하지만 부처가 되고 난 뒤에 오는 참말 커다란 허무를 어찌 견딜 것인가. 생각하면 겁이 난단 말야. 흐흐……. 이건 지옥에 떨어질 소린가.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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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87. 암자 안(방)
호롱불은 켜 있고……. 지산과 법운이 마주 앉아 있다.
법운: ……사실 난 스님이 부러워요. 성실한 수좌도 못 되고, 그렇다고 스님처럼 성실한 짐승도 못 되고……. 희지도 못하고 검지도 못하고, 중도 아니고 속(俗)도 아니고……. 난 아무것도 못할 인간인 것 같아요.
지산: 흐흐……. 사실은 나도 아직 뭐가 뭔지 몰라. 부처님은 인간의 끈기에 따라 팔만 사천 법문을 설하셨다느데 내 귀엔 하나도 안 들리니. 빌어먹을! 부처님은 왜 태어나서 우릴 이렇게 못살게 구는지 모르겠어.
- 김성동 원작, 이상현․송길환 각색, <만다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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