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벚꽃같은. 그리고...



들어가며

 

살다보면, 믿기지 않는 일이 생기곤 한다.

스크린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 소설에서나 나옴 직한 비현실적인 이야기들. 만나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그리고 그리워하고. 삶이란 게 어쩐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들어가는 이야기 역시 그렇다.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고, 이별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내게는 그 모든 것들이 도무지 실제 같지 않다. 꿈을 꾼 것일까. 진짜였었나, 나 조차도 고개를 갸웃거려 볼 때가, 가끔, 있다.

그럴 때면 독하지 않은 술을 한잔 마시고, 담배를 태운다.
백열등 밑으로 알싸한, 담배의 연기가 이제는 한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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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이름 하나가

시린 허공을 건너와

메마른 내 손등을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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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자율 학습이 엄격했던, 서울 위성 도시의 한 고등 학교를 졸업한 그 해. 나는 가출도 했고, 땅끝에 다녀왔으며, 술을 마셨고, 대학에도 합격했다. 입학식은 가지 않았다. 학교를 다닐 생각이 별로 없었다. 자유와 방종의 벼랑 끝에서 위태롭게 하루하루를 허비했다. ‘절망’의 정체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점멸하는 가로등 밑에서 허적(虛寂)을 씹으며 결국 나는 길을 잃었다.

계절이 바뀌고 여름이 되었다. 장마였다.
나는 비에 젖어 눅눅한 시내 버스를 타고 있었다. 가끔 버스 안내 방송에 라디오 소리가 묻혀졌다. 오전과 오후의 애매한 시간이라 버스 안에는 손님들이 많지 않았다. 드문드문 비어 있는 좌석. 편입 시험 대비 광고 문안. 시들은 대중 가요. 무료한 사람들, 무료한 시내 버스. 무료한 나는 뒷문 바로 뒷자리에 앉아 턱을 괴고 무료히 창밖을 훑는다. 삶은 창백했고 지리했다. 스치는 빗방울, 스치는 건물, 스치는 여름.

버스가 정거장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꽤 들어선다. 동전과 토큰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앞에서부터 좌석이 없어지고, 몇은 손잡이를 잡고 섰다. 사람들이 많아지자 눅눅한 시내 버스는 더욱 습하다. 나는 유리창에 서린 입김에 뜻 없는 글자를 쓰고 지운다. 창밖으로 빗방울이 몽울져 흘러내린다.  

뒷문 바로 앞 좌석에 서 있던 그녀를 발견한 건 두어 개의 정거장을 지나서였던 것 같다. 덜컹거리는 시내 버스 안에서, 귀에 이어폰을 낀 그녀는 정물화처럼 미동이 없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녀를 보고 있었다. 덜컹거리는 시내 버스, 그리고 그녀.

크지 않은 키. 긴 속눈썹.
눈(雪)이라도 사뿐히 내려 앉을 것만 같은, 긴 속눈썹.
가끔 버스가 심하게 덜컹거려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리면 곧 손으로 단정히 정리하는 귀밑머리.
소담한 귀. 귀걸이 따위는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꼭 한번만 만져 보고 싶은, 귀걸이를 하지 않은, 그녀의 귀.
한번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 볼 것도 같은데 움직임이 없는 그녀. 라디오를 듣는 것일까. 이따금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 그녀.
희다 못해 아련해 보이기까지 한 피부, 벚꽃같은.
삶의 어느 한 순간에만 방점을 찍고 흔적없이 사라지는, 벚꽃같은 그녀.
검정색 긴 치마.
주름이 진, 발목까지 내려오는 정갈해 보이는, 검정색 치마.
덜컹거리는 시내 버스, 그리고 그녀. 

얼마를 지났을까.
무슨 생각에서 그녀를 따라 버스에서 내렸는지는 잘 모르겠다. 버스가 정거장에 도착하자 그녀가 버스에서 내리고 나도 따라 내린다. 멀리서 그녀가 걷고, 멀리서 내가 걷는다. 어깨에 맨 가방, 별로 무거워 보이지 않는 그 가방을 대신 들어주고 싶었던 건 쓸쓸해 보이는 그녀 발자국의 무게 때문이었을 것이다. 뜸해진 장마와 장마 사이. - 빗줄기가 약해졌다.

길이 좁아지면서 나와 그녀의 거리는 점점 멀어진다. 혹시라도 내 걸음이 그녀에게 방해가 되면 어쩌나 싶어서였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첫눈에 반하는 사랑은 믿지 않는다. 그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무료함과 호기심 사이의 중간 저울 어디쯤에서 나는 걷고 있었다. 구멍 가게를 지나고, 철물점을 지난다. 어느 동네에서나 있을 법한 허름한 세탁소를 지나고, 노인정을 지난다. 아이들이 컵에 담긴 떡볶이를 먹고 있다. 어딘가에선 보글보글 김치찌개 냄새가 난다. 길이 좁아진다. 골목길이 좁아지면 나와 그녀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진다.
나는 그녀를 어디선가 잃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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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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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과는 단순했다.
늦은 오전에 일어나 뒹굴거리다 밥을 먹고, 집을 나선다. 길 잃은 거리에서 길을 찾거나 먼 산을 바라보곤 했다. 학교는 가끔 나갔다.  

때로는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삶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것만큼, ‘언제’ 만나는 가도 중요하다고.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느끼게 된 것이지만, 이들은 충분히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며 의리도 있다. 하지만 나와 그들은 직장 동료와 직장 동료의 관계로 만난 것. 나와 그들은 직장 동료만큼의 거리에서 친절하고, 또 직장동료만큼의 거리에서 좋은 사람들이다. 만약 이들 중 누군가를 중학교 때나 고등학교 때 만났더라면 우린 지음(知音)의 ‘절친’이 되지 않았을까.  

하릴없이 빈둥거리던 대학 새내기의 나. 나에게 할 일이 생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그 ‘시기’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우리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시 말하지만 난 첫눈에 반하는 사랑 같은 건 별로 믿지 않는다. 내가 그녀를 사랑해서 그녀를 보고 싶었던 것일까. 못 보면 안달나겠어서 그녀의 골목길을 그렇게 서성댔던 것일까.
아니다. 나는 다만 그녀의 앞모습을 한번만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다. 그믐달 같은 속눈썹의 선을 정면에서도 한번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잠시 스쳐지나가며 한번만 보면 그것으로 족하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그녀를 가까이서 한번만 지켜보는 것으로 좋았다. 정말 그랬다. 나는 그녀를 잃은 그 골목에서 기다렸다.

구멍 가게에서 질 나쁜 빵 쪼가리를 씹으며, 계단에 앉아 신문 따위를 읽으며 그녀를 기다렸다. 하드를 입에 물고 산책하거나 담배를 태우며 그녀를 기다렸고, 구멍 가게 주인 아주머니와 손님이 말다툼을 하는 것을 지켜보며 그녀를 기다렸다. 노인정 앞에서 어르신들이 바둑 두는 것을 속으로 훈수하며 그녀를 기다렸다. 해질 무렵이 되면 한떼의 아이들이 괴성을 지르며 잠자리를 쫓기도 했다. 나는 작은 공원에서 맥주도 마셨다.
한가롭고 지루했다. 그렇게 기다렸다.

방심하는 순간 감정은 과장되곤 한다.
사랑이란 감정은 기다림으로 과장되곤 한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기다림의 이유는 사랑이 아니다. 기다림의 이유는 기다림 자체다. 

방심하고 있었다.
그녀를 다시 만난 건 장마도, 늦더위도 지난, 가을의 초입.
날은 쾌하고, 하늘은 높다. 다시 비가 올 기미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그녀를 잃은 그 골목부터 분식집, 노인정, 철물점, 구멍 가게, 그리고 정거장까지 역순으로 산책한다. 어슬렁- 어슬렁-. 꼬맹이 녀석들이 세 발 자전거를 타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며 달려간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지나치기도 한다. 학생들의 웃음 소리가 가볍게 내려 앉은 골목에서 나는 산책을 한다. 교복을 입은 학생이 이어폰을 끼고 지나치기도 한다, 교복을 입은…. 방심하고 있었다.

여고생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길을 한참이나 걷다 뒤늦게 깨달았다. 방향을 바꿔 걷는다. 걸음이 빨라진다. 뛰기 시작한다. 숨이 가쁘다. 저 앞으로 그녀가 걷고 있다. 그 걸음걸이가 분명하다. 거리가 좁혀 진다. 들숨을 크게 해서 숨을 고른다. 나, 그녀의 어깨에 톡톡, 노크를 한다. 돌아보는 그녀의 눈이 커다랗다. 그녀의 눈 한가득 물음표가 찍힌다. 당황한 나, 입을 연다.

“저기요…, 저… 혹시 기억나세요? 한달 전쯤 같이 버스를 탔었는데요….”

그녀, 입가에 잠시 미소를 띄었었나. 아마 그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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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살고 싶다

외눈박이 물고기 처럼

사랑하고 싶다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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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창백했던 대학 새내기의 남자. 아련한 벚꽃같은, 고등학교 2학년의 여자. 우연처럼 우린 동갑이었다. 학교에 일찍 들어간, 19살의 남자. 중학교 때 병으로 일 년 휴학을 한 19살의 여자. 아파서 1년간 시골에서 요양을 했다는 얘기를 한 것 같은데 자세한 것은 묻지 않았다.
그녀의 이름은 J였다.

우린 합법적이며, 공개적으로 사귀었다.
그녀의 공부를 가르쳐 주겠다는 핑계를 대고, 나는 J의 집에 자주 들락거렸다. 고등학교 때 영문법을 그렇게 열심히 외웠던 이유는 바로 오늘 같은 날을 위해서였나보다. 나는 영어를 잘하는 내가 대견스러웠다.

J의 집에 자주 갈 수 있었던 건 J의 어머니께서 나를 무척 예뻐하셨기 때문이었지도 모른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머니들은 나를 대체로 예뻐하신다. 나는 어머니들께 예쁨 받는 한 가지 방법을 알고 있다.

방법은 이렇다.
식사를 할 때다.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다.
공기에 고봉으로 담긴 밥. 최대한 빠른 시간에 밥을 해치운다. 반찬과 국을 열심히 먹는다. 최선을 다해 씹고, 마신다. 연신 감탄하는 듯한 표정으로 맛깔나게 먹어야 한다.
 
“최고예요”
“이렇게 맛있는 밥은 처음이예요”
“저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겠어요”
“어머니, 제발 절 죽여주세요. 악!”
“코끼리가 되고 싶어요, 저는 하늘을 날고 있어요.”
이런 정도의 속이 뻔히 보이는 미사여구는 하지 않는 게 좋을 수도 있다. 가식적인 녀석이란 낙인이 찍힐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감격과 희열의 표정으로,
반찬을 집는 젓가락의 가벼운 떨림으로,
그리고 밥덩이를 목구멍으로 삼킬 때의 그 미세한 탄성으로
우리 어머니들께서는 충분히 흡족해 하실 것이다.
배가 부르겠지만 감동은 계속 되어야 한다. 밥공기가 비어져도, 젓가락을 놓치 말자. 어머니께서 말씀 하실 것이다, “밥을 좀 더 주랴?” 물음표가 끝나기 전에 맑고 높은 음으로 “네”라고 대답하는 센스.
열심히 밥을 먹어야 한다. 두 공기째부터는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치지 말자. 기름기 달달한 잡채도, 이제는 조금 시들은 나물도, 성실하고 힘이 센 염소처럼, 최선을 다해 씹어야 한단 말이다. 힘들지만, 해야 한다. 어머니의 표정을 보라.
먹을 수 있도록 최면을 건다. 야발라바히기야. 야발라바히기야. 주문을 건다. 속으로 열심히 주문을 외울 때라도 탄성의 표정은 유지하자. 야발라바히기야. 야발라바히기야. 우주는 생각만큼 크고 넓고, 우리의 위장은 생각보다 크고 넓다.
대개의 경우 성실하게 두 공기를 비우더라도 우리의 사랑스런 내숭녀 그녀는, 아직 한 공기의 반을 간신히 넘겼을 뿐일 것이다. 맛있어서 못 참겠다는 듯이, 젓가락을 들어 그녀의 밥덩이를 한 두 번 정도 뺏어먹는다. 나를 쳐다보는 어머니의 표정이 환하다. 세상이 밝아진다.
훈훈한 풍경. 이 얼마나 진솔하고, 솔직하며, 정겨운 식사가 아니겠는가.
나, 이렇게, 어머니들게 이쁨 받으며 살았다. 때론 비굴하지만, 이 방법은 상당히 유효하다.

어머니께서는 가끔 외출을 하셨다.
밥을 열심히 맛있게 먹을 줄 아는 남자는 솔직하며, 성실하며, 응큼하지는 않을 거라고 어머니들은 대체로 믿고 계신다. 나는 열심히 밥을 먹는, 솔직하며, 성실하며, 게다가 응큼하지 않은, 19살의 남자다. J와 나는 솔직하며, 성실하게, 응큼하지 않게 놀았다. 가끔은 비디오를 보다 손을 잡기도 하고, 또 가끔은 소파에 앉아 서로의 팔베개를 해주며 TV를 보기도 하고, 또 아주 가끔은 입도 맞췄지만, 맹세코 우리는 응큼하지 않게 놀았다.

J를 생각할 때면 기억에 남는 영상이 있다.
그해 겨울의 속초. 하루의 여행을 위해 나는 몇 개월 전부터 운전 면허 시험을 준비했다. 차를 렌트해서, J와 겨울 바다 여행을 간다. 속초까지 네 시간. 한 겨울의 속초. 어시장을 구경하고, 방파제를 걷는다. 간혹 낚시꾼들이 보인다. 소라 파는 노점상과 건어물이 즐비한 가게들을 지난다. 번데기를 사먹었나, 쥐포를 사먹었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소소한 얘기들을 하며 우리는 정갈하게 웃기도 한다. J와 나는 조금 출출하다.속초 근처의 해수욕장. 한 겨울의 바다를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사람이 없는, 겨울 바다의 해풍(海風). 해풍 속에 묻힌 그리움의 무게. 바람은 생각만큼 차지 않다. 손을 대본 바닷물은 생각만큼 차다. 오늘의 특식, 라면. 준비해간 코펠에 물을 끓인다. 몸으로 바람을 막는다. 보글보글. 라면이 익는다. 보글보글. 김이 올라온다.

J와 나는 수평선을 보고 나란히 앉는다. 밑반찬이 없어도 아쉽지 않다. 아, 이거 근사하다. 정말이지, 근사하다. 바다의 빛깔이 하늘과 꼭 닮았다.
오오오오오. 파도가 설렌다. J의 눈에 하늘이 들어온다.

꼭 한번은 J와 콘서트에 간 적이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롯데 백화점. <컬트 트리플> 크리스마스 공연. 지금은 <컬투>로 활동하지만, 그때는 세 명의 <컬트 트리플>로 그들은 대학가에서 선풍적 인기가 있었다. 꽤 비쌌던 입장료. 앞에서 두 번째 줄. 웃음, 웃음, 웃음. J가 그렇게 까무라치게 웃는 것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본 일이 없다.
공연이 끝나고 밖에 나오자 세상은 하얗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까지 눈은 내리지 않았었는데 몇 시간만에 세상은 이렇게 하얗게 바뀌었다.
내 마음에 처음으로 눈 내리는 풍경. 서울에서, 그렇게 많이 내린 눈은, 이후로도 쉽지 않았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케롤이 들리고, 사람들은 밝다. 저마다의 즐거운 사연을 담아 서울에는 눈이 내린다. J가 나와 함께 있어 주기에 서울에는 눈이 내린다. <러브 스토리>에 나오는 연인들처럼 우린 눈싸움도 하고, 눈을 뒹굴기도 했다. 영화 찍는 우릴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웃어주었다. 함박눈은 좀체 그치지 않았다. 이렇게 흰 눈에, 세상이, J와 내가, 묻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J는 불꽃놀이를 좋아했다. 타들어가는 불꽃을 보면 가슴이 벅차오른다고 했던 J. 집에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종로에서부터 동대문까지 불꽃을 들고 걷는다.
손의 체온으로 느껴지는 J의 영혼. 나는 J의 영혼까지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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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잠깐이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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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J와 헤어진 얘기를 해야겠다.
생각해 보면,
삶이란,
비현실적이다. 몽환적이다.

다시 여름이다. J와 만난 지 일 년이 되는 날이었다.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반지를 준비했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한 이벤트였는데, 나름 고민해서 생각한 깜짝쇼.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내면 종업원 누나가 케잌과 반지를 가져올 것이다. 옆에 앉아 계신 손님들께 장미 한 송이씩을 나눠드렸다. 저희에게 뿌려 달라고. 우리 사랑한다고. 이제 1년이 되었다고. 예쁘게 사랑할 거라고. 축하해 달라고. J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물을 마신다.

시간이 지났는데 J는 오지 않는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 J와 나는 내 삐삐로 서로에게 연락을 했었다. 내 호출기의 비밀번호를 공유했다. J가 남긴 음성 메시지는 내가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내가 내 호출기에 음성 메시지를 남기면, J가 그 언젠가 들을 수 있다.
호출기는 울리지 않는다. 나, 전화 박스에 자주 간다.
내가 J에게 남긴 메시지. 회신 없는 메시지. 목이 탄다. 물을 마신다.

뭔가 이상하다. 두어 시간이 지났다.
J는 약속 시간에 늦지 않는다. J의 집, 전화 신호가 끝이 없다. J의 집엔 아무도 없는 것이다. 장미꽃을 나눠 드린 옆자리 손님들이 장미꽃을 내게 내려 놓고 간다. 우린 축복받지 못했다. 나는 물을 시킨다. 뭔가 이상하다. J는 약속 시간에 늦는 법이 없다. 나는 가급적 생각을 하지 않기로 한다.
초조하다. 물을 마신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J의 집엔 아무도 없었다.
불 꺼진 J의 창. 불 꺼진 J의 거실. 불 꺼진 J집앞 가로등. 언제부턴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장맛비. 다시 장마가 시작된 것이다.

새벽. 택시 한 대가 미끄러져 들어온다. J의 어머니.
인사를 드린다. J의 어머니, 뭐라고 말씀 하신다. 나는 정물화처럼 미동이 없다. J의 어머니, 뭐라고 말씀 하시며, 주저 앉으신다.
비가 내리고, 택시는 이미 떠났다. J의 어머니, 울고 계신다. 나는 말이 없다.

J는 침상에 누워 있다.
코로 긴 호스가 연결되어 있다. 공기를 들어가게 해 주는 장치다. 옆에는 심장 박동 기계가 있다. J는 심장 박동기의 그래프로 살아 있음이 확인되었다. 그래프는 낮고, 규칙적이다. 몇 종류의 링겔이 있다. 가끔 간호원이 들어와 혈압과 심장 박동을 체크한다. 벽은 희고, J의 얼굴은 그보다 더 희다. 나는 J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넘겨 주었다. J의 입술이 말라 있다. 나는 가습기의 스위치를 돌린다. 뿌연 수증기 사이로 장맛비가 며칠째 지루하게 내리고 있다. 나는 J의 병명을 모른다.

일주일째 병간호를 했다. J는 아직도 누워 움직임이 없다.
날은 습하고 비는 지루하고 눅눅하다. 밤이 되니 조금 서늘해 진 것다. 병원 밖을 나와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사서 마신다. 나는 조금 지쳤었던 것이다. 맥주를 마신다. 청량하다. 담배 한 개비를 피운다. 몽롱하다.
다시 편의점에 들어가서 캔맥주를 사서 마신다. 살짝 취기가 오른다.
담배 한 개비를 피우니 역시 기분이 좋아진다.

난 장점이라곤 별로 없는 인간이다. 만약 내게 남들과 다른 나만의 장점이 하나 있다면 아마 그건 ‘침착함’이 아닐까. 별 것 아닌 것에도 호들갑 떨기 좋아하는 나이지만, 막상 큰 일이 일어났을 때의 나는 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침착하며 의연하다. 나는 극한의 상황에서 차가워진다.

병실로 들어서니, 심장 박동을 알려 주는 그래프가 멈춰 있었다. 나는 호흡을 멈추었다. 호흡을 가라앉히자 상황을 인지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나는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일을 미리 연습이라도 해둔 것처럼 나는 기계의 전원 코드를 확인하고, 수화기를 들어 담당 간호사를 호출했다. 간호사가 오는 동안 J의 코에 손가락을 가까이 해서 숨이 멎었는지를 확인하다. 담당 의사가 급하게 달려 온다. 사망 확인. 나는 물을 마시고, 잠시 의자에 앉는다.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 J에 대해 말씀 드린다.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장례를 치르고, 바다에서 J를 보내주었다.
J. 너는, 벚꽃처럼, 분분히 흩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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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겨울을 누워 지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려

염주처럼 윤나게 굴리던

독백도 끝나고

바람도 불지 않아

이 겨울 누워서 편히 지냈다.

 

문 한 번 열지 않고

반추 동물처럼 죽음만 꺼내 씹었다.

나는 누워서 편히 지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이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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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와 장마 사이가 끝나고,
다시 장마가 시작되고, 그 장마가 끝났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그 해 여름. 나는 결국 학교를 포기했고, 다시 길 위에 서 있었다.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란 사소한 것으로부터 촉발한다. J와 걷던 길을 나 혼자 걷는다. J와 자주 갔던 페스트 푸드점. 그곳에서 햄버거를 하나 사서 몇 시간 동안 앉아 있기도 했다. 서점에서, 공원에서, J의 골목에서 나는 J를 찾고 있었다. 회신 없는 호출기만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J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J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나는 삶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숨고 싶었다.

아마 이때 나는 절망의 끝자락을 대충 경험했을 것이다. 가게에서 쌀과 라면과 김치와 술과 담배를 사서 방의 구석에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나는 스스로 외부와 격리했다. 끼니 때마다 밥을 차려 먹는 일이란 얼마나 귀찮은 일인가. 식사의 횟수는 갈수록 줄어들었고, 한 끼 식사의 양은 과장되게 많았다. 나중에는 그마저도 귀찮아져서 생쌀을 씹어 먹거나 라면 스프를 입에 털어 넣기도 했다. 책장을 넘기기는 애초에 귀찮았다. 늦더위란 놈의 팔베개에 포근히 기대어 TV를 봤다. 나태와 권태의 끝자락 즈음에서는 결국 TV 시청도 포기했다. TV를 보기 위해선 끊임없이 눈을 움직여야 한다. 나에게는 최소한의 운동량이 필요했다. 나로부터 감각을 격리하기로 했다. 나는 시각을 봉쇄했다. 활성화된 감각을 줄여 나갔다. 라디오를 틀어놓고 누에처럼 하면(夏眠)을 한다. 자고, 자고, 푹 잤다.
그 해 여름의 끝자락에서, 나는 누워서 편히 지냈다.

한번은 J의 어머니께 연락이 온 적이 있었다.
바다에서 J를 보낸 후 처음 듣는 어머니의 목소리. 나만큼 수척했지만, 그녀는 나보다 잘 견디고 있는 듯 느껴진다. J가 내게 남긴 선물이 있다 한다. 외출. J의 집에 들렀다. J의 방. 노란 벽지의 볕이 잘 드는 J의 방. 이제는 주인 잃은 J의 방. 죽음에도 무게가 있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었다. J의 방은 공기조차 납덩이처럼 무겁다. 사람이 살지 않는 주인 없는 방. 노란 벽지와 그 무게감의 불협화음. J, 네 마음도 이렇게 무거운 것이니. 네가 있는 곳에도 노란 벽지와 볕이 있을는지. 책상 위에 놓여진 선물 상자를 들고 J의 방에서 나온다. 방을 나와 메마른 어머니의 손을 잡아 주었다. 어머니와 나는 별 말이 없다. 우린 서로 억지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인사를 드리고, 도망치듯 J의 집으로부터 나왔다.

나는 누더기 같은 내 방에 앉아 있다. J의 선물 상자를 앞에 두고 나는 앉아 있다. 이 상자를 열어 볼 것인가를 두고 나는 고민 중이다. 무척 어렵다. 친구를 부르기로 한다. 내가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녀석. 소주를 마셨다. J를 보내고 처음 마시는 술. 술병이 늘어갈수록 정신이 명징해 진다. 친구는 말없이 같이 술을 마셔주었다. 나는 녀석에게 말한다.

선물은 열어 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냥, 나는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어. 나는 선물을 열어 볼 자격이 없어. J는 내게 과분했어. 아니야, 거짓말이야. 나 밤마다 J를 꿈 꿔, 나… J로부터, J로부터 도망칠 수 없을 것 같아, 무서워. 미안해. 내가, J가 무서워. 선물 상자를 푸는 순간 나… J로부터, J로부터 도망칠 수 없을 것 같아, 미안해. 나, 어쩌면 좋지, 나 어떡하지. 무서워, 뭐라고 말 좀 해줘. 나 이제 어떡하니….

J와 헤어진 후
그 날, 나는 처음으로 울 수 있었다.
눈물을 흘려 행복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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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며

 

늦은 오후, 잠에서 깼다. 누더기 방에 햇빛 한 장이 얇게 떨어져 있다.
머리가 아프지 않다. 어딘가 후련해진 기분이다. 방 구석에 J의 선물 상자가 있다. 무릎으로 기어 선물 상자가 있는 곳으로 간다. 심호흡을 하고 담배도 한 대 피운다.
알싸한, 담배의 연기가 한가롭다.

늦은 오후, 비가 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을의 초입.
심호흡을 하고, 선물 상자의 리본을 푼다. 노란 선물 상자 안에는 그보다 좀 작은 선물 상자가 있다. 노란색의 좀 작은 선물 상자를 열어 본다. 선물 상자 안에는 앞서보다 좀더 작은 선물 상자가 있다. 피식-. J 녀석. 나는 소리 내며 웃었던 것도 같다. 노란색의 좀더 작은 선물 상자를 연다. 상자 안에는, J의 선물로 짐작되는 것이 있었다.

선물. J의 마지막 선물.
녀석은, 엉뚱하게도, 우리 만난 지 1주년의 선물로 내게 과자를 주었다. J의 마지막 선물, 과자. 엉뚱한 녀석….

나는 한동안 이 선물의 의미가 뭔지 잘 몰랐다.
아주, 아주, 한참이 지난 후에야 나는, 선물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소리 내어 웃었다.
나는
소리 내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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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주제 던져 문답질 - 나에게 글쓰기란?

 

나에게 글쓰기란? 진실과 거짓이다  

흔히 소설을 말할 때 ‘진실성 있는 허구’라 한다. 어디 소설 뿐이겠는가. 수필을 제외한 대부분의 문학 - 희곡, 시나리오, 그리고 시. 이것들은 대체로 거짓이다. 정서란 현미경으로 분석하거나 실험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진실은 사실과 구별해야 하는 말이다.

좋은 글이란 갈무리해 둔 내면의 진실을 씹어, 되새김질해, 게워내는 과정이다. 고로 진정성이 담기지 않은 글은 계란 없는 계란빵이다.

한편 진심이 담겨 있다는 말과 사실을 담는다는 말은 분명 다르다. 내가 쓴 글의 일정 부분은 거짓이겠지만 - 이건 생각해 볼 문제다. 나는 요즘 감정이란 놈의 진위 여부를 헷갈리기 시작했고, 기억이란 놈의 작위성과 왜곡 때문에 기초적 사실 관계도 어긋나기 시작했다 - 거짓이면 어떻고 사실이면 어떤가. 그 거짓 안에 생각의 흔적과 고민의 잔여분이 느껴진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진정성이라는 앙꼬를 넣고 그 위에 먹음직한 거짓말을 덧대야 맛있는 글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맛있는 글은 맛있다.

 

․ 릴레이는 다크초코코님, 아이미슈님, 옹리혜계님을 거쳐 저에게 까지 왔습니다. 릴레이의 형식은 글을 쓴 분이 다음 릴레이 주자에게 주제를 던지는 식으로 진행됩니니다. 다음 주자는 임의적으로 주제를 바꿀 수도 있습니다. 옹리혜계님께서 제게 주신 주제는 “나에게 글쓰기란?”이었습니다. 주신 날짜를 헤아려 보니 열흘이 훌쩍 넘었군요. 미적미적 대다 오늘에서야 겨우 글을 완성해 포스팅합니다. 혹시라도 제가 부담을 느끼는 것일까, 멀리서 걱정해 주신 옹리혜계님의 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심심한 사과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빈말이 아니라 글을 쓰는 내내 즐겁고 아련한 경험을 했더랍니다. 오랜만에 느껴본 감정이었습니다.

․ 제 블로그를 즐겨 찾아 주시는 분은 옹리혜계님, 헌책방IC님, 깊은숲님, 그리고 pobia님이십니다. 단촐하고, 소박해서 좋습니다. 처음 릴레이 부탁을 받았을 때 다음 릴레이를 어떤 분께 넘겨야 하나 그것이 가장 힘든 일이었습니다.

옹리혜계님은 제게 바통을 넘겨 주신 분이라 어렵고(반사! 무지개 반사! 블랙홀 반사! 이런 거 안되잖아요..), 깊은숲님은 저와 같이 바통 받으신 분이라 불가능했습니다(제 것까지 두 개 써주세요, 일타이피. 막걸리 사드릴게요.. 자비를..). 깊은숲님께서는 제가 pobia님께 릴레이 바통을 넘길 거라 말씀하셨지만, 제가 아끼는 소년작가 pobia님께는 애초부터 릴레이를 넘길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 뜻을, 사려 깊으신 pobia님이라면 '충분히' 짐작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글을 작성하기도 전에 헌책방IC님을 섭외해 두었습니다. 헌책방IC님은 주로 책 리뷰를 포스팅하시는 블로거시죠. 서평도 훌륭하지만 삶의 향기는 더 따뜻하신 분입니다. 따뜻한 가슴과 차가운 머리, 헌책방IC님께 어울리는 수식어입니다. 좋은 글 써 주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헌책방IC님께 드릴 주제는 “나에게 시내버스란?”입니다. '소주'로 할까, 망설이다 '버스'를 택했습니다. 주제는 헌책방IC님께서 임의대로 바꾸셔도 됩니다. 선뜻 부탁을 받아주신 헌책방IC님께 고마움 한 줌 얹어 둡니다.


덧> 중간에 낯익은 표현들은 대부분 문학 작품에서 구절을 조금씩 차용한 것들입니다. 너무 많아 열거하기 힘듭니다. 가령 J에 관한 묘사에서 속눈썹 어쩌구 하는 것은 김용택의 <그 여자네 집>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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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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