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마이너리그』(창작과 비평, 2001)


역사 연구는 거시사(巨視史)적 연구와 미시사(微視史)적 연구로 나눌 수 있다(이는 상충의 개념이 아니다). 거시사는 역사를 이루는 큰 틀을 중시하는 입장으로 사회 전체의 구조적 변화에 관심을 가진다. 87년 6월 항쟁이 대통령 직선제라는 과실을 맺게 만든 그 과정을 살펴 보는 것은 거시사적 연구의 사례가 될 수 있다. 반면 미시사적 연구는 사회 구조보다는 실재했던 개인들의 삶에 주목한다. 어떤 역사적 사건 주변에 파편적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개인적 자료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2008년 6월 종로에서 초를 파는 박씨 아저씨의 가계부를 분석하는 것이 그 예가 된다. 일반적으로 소설의 접근법은 미시적 서술에 가깝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멀리서 보면 모든 사물은 정형적이고 한가롭다.
그러나 가까이 가보면 거리감이 담지하고 있는 환영에 속았음을 깨닫게 된다.
(82쪽) 


은희경의『마이너리그』는 개인들의 미시적 삶을 현미경으로 탐색한다. 이 소설책에는 10월 유신, 10 ․ 26, 5 ․ 18, 6 ․ 10의 소용돌이가 아닌, 그 먼 언저리를 스치듯 지나쳐온 풀뿌리 마이너리거의 삶이 있다. 해상 능력이 뛰어난, 은희경이란 렌즈로 관찰된 세상은 결코 아름답거나 평화롭지 않다. 은희경이 포착한 세계의 단면은 달착지근한 욕망과 달콤․쌉싸래한 배신과 허위적인 내면이 뒤엉켜 있다. 위풍당당한 교목(喬木)으로서의 영웅이 아닌, 낙락장송(落落長松)의 발목을 핥으며 숲을 기어 다니는 ‘드렁칡’으로서의 개인이 있다. 양귀자의『원미동 사람들』은 멀고도(遠) 아름다운(美) 동네가 아닌, 멀기(遠) 때문에 아름다워(美) 보이는 삶이다. 은희경은 다른 색채를 가지고 이를 변주한다. 그녀는 광학 렌즈를 바투 쥐고 지근거리에서 삶을 조명한다. 거리감이 담지하고 있는 환영이 사라진 자리에는 끈적거리는 관계망과 악다구니와 남루한 취기가 있을 뿐이다. 이게 우리네 삶 아니겠는가, 라고 묻는 듯 하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소설을 읽는다면, 이 소설은 꽤 괜찮다. 아니 상당히 재밌다. 소리 내어 웃으며 읽을 수 있는 소설은 흔치 않다. 과장한다면 성석제만큼 재밌다.

1. 소희는 대통령이 총에 맞았을 때 신문을 보더니, 세상에, 나하고 악수도 했었는데,라며 쓰게 웃고는 그 신문을 옷걸이에 둘둘 말아 두환의 이동세탁소에서 쓸 바지걸이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듣자 우리는 유난히 날이 빳빳이 선 두환의 바지 주름을 흘겨보았다. 소희가 서른살 생일에 국수를 끓이다가 손등을 데어 큰 흉터가 남았다는 말을 듣고는 당장 병원 식당에서 끓는 물을 구해와 두환의 손등에 들이붓고 싶었다. (152쪽)

두환은 소희에게 수백번 되풀이했던 맹세를 얼마 전에 또 했다. 이제 다시는 고생 안 시킬게. 그리고 매우 파격적인 방식으로 그 맹세를 지켰다. 죽여버린 것이다. (139쪽)

2. 충직한 그 개는 자기가 개밥에 도토리 신세인 것을 모르고 주인 곁을 떠나려고 하지 않았으며 개주인이 하는 수 없이 증거인멸을 위해 그 개를 개패듯 패서 잡아먹은 뒤 개코나 개뿔이나 개의 행방에 대해 전혀 모르는 척했으니, 그 개주인이 개판으로 벌인 개수작만 봐도 개죽음을 당한 개가 웃을 일이 아니냐고 사람보다 개의 의리와 절개가 우선이라고 하루종일 개타령이었다. (126쪽)


인용문 1은 만수산 4인방의 첫사랑인 소희의 죽음 이후의 묘사다. 익살과 위트가 이처럼 맛깔나게 표현된 소설은 내 범위에서는 성석제 말고 쉽지 않다. 우리는 소설을 읽는 내내, 너스레 속에 별사탕처럼 숨어 있는 위트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정도의 즐거움을 맛보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반면 인용문 2(순간! 신경숙의『깊은 슬픔』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는 과유불급(過猶不及) - 작가의 욕심이 과했던 건 아닐까.

뱀발 :
1. ‘만수산 4인방’의 작위적 설정과 이를 개연적으로 엮으려는 부분은 개연적이지 않다. 어색하다. 책을 덮고 나서 갸우뚱한다. 여자 작가의 남자 얘기라 그런가. 왜 어색하지. 뭐지. 그러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혹시 나는, 서술자를 작가의 투사물로 생각하고 읽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작가가 은희경이 아니었다면. 은희경이 유명한 소설가가 아니었다면? 이 소설에 대한 지나친 폄훼는 지나친 것일 수 있다.
2. 은희경은 모두 읽었다고 생각했었다. 요녀석, 쟁그럽게도 책장에 8년동안 묵혀 있었다. 요녀석.

Posted by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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