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순,『선비의 배반』(고즈윈, 2004) 읽다.

 

․ 海東(해동) 六龍(육룡)이 나라샤 ① 일마다 天福(천복)이시니.
․ ② 古聖(고성)이 同符(동부)하시니 <1장>

․ 狄人(적인)ㅅ 서리예 가샤 狄人(적인)이 갈외어늘 岐山(기산) 올마샴도 하늘 뜯디시니.
․ 野人(야인)ᄉ 서리예 가샤 野人(야인)이 갈외어늘, 德源(덕원) 올샴도 하늘 뜯디시니. <4장>

․ 블근 새 그를 므러 寢室(침실) 이페 안즈니 聖子革命(성자혁명)에 帝祜(제호)를  뵈오니.
․ 큰 배야미 가칠 므러 즘겟 가재 연즈니 聖孫將興(성손 장흥)에 嘉祥(가상)이 몬졔시니. <7장>

․ 말씀을 사뢰리 하대 天命(천명)을 疑心(의심)하실 새 꾸므로 뵈아시니.
․ 놀애를 브르리 하대 天命(천명)을 모르실 새 꾸므로 알외시니. <13장>

․ 해동(우리나라)의 여섯 용이 날으시어서, 그 행동하신 일마다 모두 하늘이 내리신 복이시니
․ (이것은) 중국 고대의 여러 성군(聖君)이 하신 일과 부절을 맞춘 것처럼 일치하십니다. <1장>

․ (주나라 태왕 고공단보가) 북쪽 오랑캐 사이에 사시는데, 그들 오랑캐가 침범하므로 기산으로 옮으심도 하늘의 뜻이시도다.
․ (익조가) 여진족 사이에 사시는데, 그들 여진족이 침범하므로 덕원으로 옮으심도 하늘의 뜻이시도다. <4장>

․ 붉은 새가 글을 물고 (문왕의) 침실문 앞에 앉으니 거룩한 임금의 아들(무왕)이 혁명을 일으키려 하매 하느님이 주신 복을 미리 보이신 것입니다.
․ 뱀이 까치를 물어다가 큰 나뭇가지에 얹으니, 거룩한 임금의 성손(聖孫)인 태조가 장차 일어남에 있어 (하늘이) 경사로운 징조를 먼저 보이신 것입니다. <7장>

․ (무왕에게 은나라 주왕을 치라는) 말씀을 사리는 사람이 많다. (무왕이) 천명을 의심하므로 (천명인지 아닌지 몰라 주저하므로) (신인이) 꿈으로 (주왕을 치라고) 재촉하시도다.
․ (여말에 이씨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 이가 많되, 천명을 모르시므로 (나라를 세우지 않더니) (하늘이) 꿈으로 알리시도다. <13장>

 

훈민정음으로 기록된 최초의 문헌인 용비어천가(위 인용 - 고어(古語)가 깨짐)는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도모하기 위해 지어졌다. 악장의 대표작인 이 노래에서 조선 개국의 정당성은 두 가지 조건(①,②)을 갖춤으로 완비된다. ① - 조선은 하늘이 주신 복을 받았다. ② - 조선의 왕은 중국의 옛 성군과 동일한 행위를 했다. 용비어천가를 인용한 까닭은 저자가 강조한 천인합일설의 개념이 용비어천가 창작 동기와 일치하기 때문. (첨언. ②는 3장부터의 형식적 특징에서 잘 구현된다. 이 사적찬은 전절에서 중국 왕에 대한 얘기를, 후절에서 조선 왕에 대한 얘기를 대응하게 배치해 놓았다. 이를 통해 중국의 성군과 조선 임금의 등가성이 성립한다. 물론, 이는 ‘권위에의 오류’에 해당한다. 나는 어찌된 일인지 용비어천가에 대해 좀 안다.)

천인합일설(天人合一設)이란 천명(天命)과 인심(人心)을 하나로 보는 것이며, 이에 따른다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하늘의 뜻을 좇는 것이다. 하늘의 뜻과 합치하기 위해 군주는 부단한 자기 수양이 필요하며, 군주의 정심(正心)은 곧 치국(治國)의 요체다. 이러한 천인합일설의 논리는 조선 건국 정당성의 근거가 된다. 왜? 고려 왕조는 하늘의 뜻을 역행했기 때문에 나라의 기운이 쇄한 것이며, 조선은 순리대로 천명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개국할 수 있었다는 것. 위의 용비어천가 인용문(파란색 글씨)을 보면, 조선 개국 과정에서 천명(天命)이 얼마나 강조되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학교 다닐 때 달달 외던 요놈. 요 ‘하늘 뜯’이 바로 천인합일설이며, 이는 조선 시대의 역사 전체를 통시적으로 관통하는 중요한 사상적 근거가 된다. 저자에 의하면 정도전의 ‘총재론(冢宰論)’은 이 천인합일설에서 파생된 개념이라 한다. 정도전의 총재론(冢宰論)에서 ‘재상(宰相)’이란, 재상이 어리석은 군주를 보상(輔相)하고[相], 백관과 만민을 다스려 그들의 마땅한 바를 잃지 않게 하는 일[宰]을 해야 한단다. 정리하자면, 하늘의 뜻을 거스르지 않아야 나라가 바로 서며, 이를 위해서 임금은 바른 마음(正心)을 함양하도록 수행해야 하는데, 이를 곁에서 보필해 주는 이가 선비(宰相)라는 것이다.

정도전의 총재론은 시대의 변곡점마다 양태를 변주하여 영․정조 시대까지 이어진다. 임금은 다른 무엇보다도 마음의 본질을 탐구하고 그 수양론으로 심학(心學)에 몰두하여야 하며, 이는 곁에서 도와주는 선비(宰相)을 통해 가능하므로 이는 신권(臣權)의 강화로 변용된다. 조선 시대의 사대부(士)는 임금에게 심심 수양에 역점을 두라고 강변하며, 자신의 기득권을 강화․유지했다는 것이다. 이는 협의로 볼 때 절대 왕권에 대한 배반이며, 광의로 본다면 백성에 대한 배반이며, 곧 나라에 대한 배반이라는 것이다. 무릇 위정자란 충(忠)으로 임금을 보필하고, 선정(善政)으로 백성을 다독여야 하는 것. 그런데 조선 선비의 ‘충’과 ‘선정’이란 표면의 하단에는 ‘기득권 유지’라는 현실적 이해 관계가 탐욕적으로 똬리를 틀고 있었다는 얘기다. 저자의 해석에 따르면 동인(東人)이니, 서인(西人)이니 - 남인(南人), 기호학파(畿湖學派), 영남학파(嶺南學派), 노론(老論), 소론(少論) 등의 성리학의 분파도 결국 밥그릇 쌈이라는 것.

대개의 역사서가 왕조를 중심으로 서술된 반면, 이 책은 선비들의 담론을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3부까지 전개된 붕당 정치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공리공담 맞다. 이 책에서 글쓴이가 역점을 둔 부분은 <4부. 왕권과 신권의 대결>이며, 여기에는 효종과 송시열의 갈등이 비교적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쉬운 말로 송시열이 ‘심학(心學)’이란 칼을 들고 효종을 갖고 놀았다는 얘기. 특히 ≪심경(心經)≫과 관련된 ‘밀고 ․ 땅기기’는 꽤 재밌다.

뱀발 : 저자 후기. 저자의 바람과 달리 그들(참여정부)은 실수했다. 그 결과 그들은 기묘사화 아닌, 기축사화를 당했다. 과연, 역사란 나선의 동심원인가.

 

Posted by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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