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흐린 날의 기억 

새들은 무리지어 지나가면서 이곳을 무덤으로 덮는다

관 뚜껑을 미는 힘으로 나는 하늘을 바라본다

 
이성복의 세 번째 시집,『그 여름의 끝』(문학과 지성, 1990) 읽다.

시집,『남해 금산』이 과거 - 치욕의 기억에 대한 절규 (참고 : <기억의 눅눅한 카타콤> )였다면, 위 인용시는 이를 환기하기에 적절하다. 인용시에서처럼 이성복에게 기억은 무덤 - 죽음, 수의(壽衣), 악몽으로 대체할 수 있다. 중력의 관성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새’는 이성복의 기억을 무덤으로 환치한 후 땅의 속박에서 벗어나 유유히 사라진다. 비상의 수단이 있을 리 없는 시인은 새로부터, 떠날 수 있는 것들로부터 방기된 채 공동묘지에 서 있다. 방치된 치욕. 그러나 다음 행에 주목할 때 우리는 그의 변화를 가늠할 수 있다. 치욕 : 과거에서 신열을 앓던 이성복은 이제 관 뚜껑을 밀며 하늘 : 현재를 바라본다.


그곳에 다들 잘 있느냐고 당신은 물었지요.
염려 마세요 어쩔 수 없이 모두 잘 있답니다.

-「편지 3」中


절망과 희망은 모순어(모순어와 반의어는 다르다!)가 아니다. 이는 ‘절망 아님은 희망’의 등식이 성립할 수 없음을 말한다. 희망을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 이성복은 고작 관 뚜껑을 밀었을 뿐. 그가 밟고 있는 곳은 질척거리는 삶의 ‘진흙창’이다. 탈출하지 못한 것들만이 남겨진 이곳에서 ‘짐승들은 무리지어 몸을 숨기’며 ‘벌레들은 낮게 울’고 있다. 지상에 있는 낮은 자들은 음모의 냄새를 지각한다. 이성복은 기억의 감옥에서 탈출한 것이 아니다. 그가 서 있는 시간의 좌표를 확인하고, 이제 막 미지수 X
를 감지, 손을 뻗으려는 찰나.

숲속에서 

숲 전체가 쓰르라미 울음밭이었습니다
날개 빼면 손톱보다 작은 덩치가 숲을 가득 메웠습니다

쓰르라미 우는 쪽으로 다가가자 울음이 뚝 그쳤습니다
몇 발짝 물러서면 나뭇잎 사이, 번쩍이는 햇빛 사이
빛나는 노래는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애써 마음먹으면 잡을 수도 있었겠지요
쓰르라미 잡히면 숲이 갇혀 숨죽이고
은밀한 나의 기쁨 끝날 테지요 

내가 멀어지면 쓰르라미 울음 소리 눈부십디다
여름날 해거름 쓰르라미 울음 소리 귀를 찢었습니다

 
숲 전체에 가득한 쓰르라미의 울음 소리.

그것은 시원으로 가는 비밀의 통로일까. 아니면 카타콤에서의 부활을 재촉하는 주술가일까. 아무래도 좋다. 그것은 숲보다 크며 햇빛보다 번쩍인다. 하지만 기억의 녹슨 쇠고랑을 달고 있는 이성복에게 그 은밀한 울음 소리는 가깝지만 멀고, 다가가면 사라지는 허깨비 같은 것. 은신처를 잃은 시인(관이 집이었던 시인, 관 뚜껑을 밀어 버렸으므로)이 지으려는 집은 ‘비울수록 무겁고 다가갈수록 멀’어진다. 허깨비, 나, 그리고.

애가 2

오늘도 솔밭머리 하늘은 푸르러
얼어붙은 우리 슬픔 갈 곳 없어도
저 푸르름 속에 우리 슬픔 내다버릴 수 없다 

지아비와 지어미의 통곡 걷히고
파랗게 싹을 내는 겨울 보리,
밟아도 밟아도 고개 들이미는 겨울 보리


이성복이 말하는 ‘그 여름의 끝’은 단순한 희망의 목격만이 아니다.

길이 끊겨진 ‘절벽’의 끝에서 이성복은 ‘통곡하는 사람’을 대면하며, 이성복의 상처가 비단 이성복만의 것이 아님을 목격한다. ‘하루 종일 빠져나오지 못한’ 덜컥거리는 슬픔은 이성복을 둘러싼 모든 존재의 슬픔인 것. ‘한쪽 어깨가 바람에 깊이 패이도록 마른 나무들의 호흡을 받’으며 바라보니 ‘한번도 잡아주지 못한 손, 타인의 여윈 손’이 시인의 야윈 손과 같은 상흔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 땅의 모든 ‘지아비와 지어미의 통곡’에는 슬픔이 묻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남루하게 떠돌며 만난 우리는 모두 쓸쓸한 것이고, 그래서 그 ‘쓸쓸함의 정다움을 처음 알았을’ 때, 이성복은 살아가는 것(보편적 존재로서의 모든 개인)을 바라본다. 살아가는 존재는 ‘발가락과 발바닥 사이 아주 낮은 삶’을 살고 있으며, 그들은 모두 저마다의 ‘이제 막 아물기 시작하는 근질거리는 헌 생채기’를 갖고 있다. 그들은 ‘연뿌리보다 질기고 뻿센’ 상처에 신음하는 우리로서의 당신, 혹은 나의 빙의.

이 깨달음의 인식은「역전」연작시에서 섬뜩하게,「비단길」연작시에서 감미로운 연가로 변주된다.


뒤죽박죽 복잡하다. 정리해 보자.

① 과거 : ‘기억(치욕)’ → ② 인식(‘관’에 대한 자각) → ③ 지향 (하늘, 길의 끝) → ④ 닿지 못함 → ⑤ 목격(상처 받은 당신) → ⑥ 절망의 끝(살아있음?)

뭐, 이 정도일까.

아래 시「그 여름의 끝」에서 절망이 끝나는 순간으로서의 ‘피’의 제의적 장치와 수식어구(‘장난처럼’)의 모호성을 주의 깊게 살펴 본다. 통과의례로서의 피와 성장통으로서의 절망!

 

그 여름의 끝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Posted by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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