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민복의 네 번째 시집,『말랑말랑한 힘』(문학세계사, 2005) 읽다.

‘콜럼버스의 달걀’은 상식적 차원의 사고가 아닌, 발상의 전환을 의미하는 관용적 표현이다. 상식으론 세울 수 없는 달걀. 콜럼버스는 달걀의 밑둥을 깨고 달걀을 세워 버렸다. 발상의 전환을 통한 패러다임의 혁명. 그러나 눈을 가늘게 뜨고 콜럼버스의 달걀을 쳐다보면 우리가 간과했던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칼럼니스트는 ‘달걀 세우기’에 관련된 그 동안의 통념이 잘못되었음을 문명사적인 관점에서 비판한다. 대체 왜 사람들은 달걀을 깰 수 없었던 것일까. 이는 애초부터 달걀이 세워질 수 없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달걀이란 생명의 모태이자, 자궁이며, 최초의 집이다. 만약 알이 모나거나 각이 진 모양이었다면 어미가 알을 제대로 품을 수 없었음은 물론이거니와, 알을 낳는 것도 여간 고역이 아니었을 것이다. 달걀은 자연과 생명의 섭리를 담아 설계된 것이다. 그렇다면 달걀을 세워보겠다는 발상 그 자체가 탐욕적이며, 비생명적인 사고의 발현이 아니겠는가. - 실제로 콜럼버스는 카리브 해안과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해 원주민들을 무자비하게 살육했다. 깨 버릴 달걀이 그다지 많이 남아 있지 않은 현재. 어떻게 하면 달걀을 세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 이전에 달걀이 왜 타원형일까에 대한 성찰이 먼저가 아닐까.

 

감촉여행

도시는 딱딱하다
점점 더 딱딱해진다
뜨거워진다

땅 아래서
딱딱한 것을 깨오고
뜨거운 것을 깨와
도시는 살아간다

딱딱한 것들을 부수고
더운 곳에 물을 대며
살아가던 농촌에도
딱딱한 건물들이 들어선다

뭐 좀 말랑말랑한 게 없을까

길이 길을 넘어가는 육교 바닥도
척척 접히는 계단 길 에스컬레이터도
아파트 난간도, 버스 손잡이도, 컴퓨터 자판도
빵을 찍는 포크처럼 딱딱하다

메주 띄울 못 하나 박을 수 없는
쇠기둥 콘크리트 벽안에서
딱딱하고 뜨거워지는 공기를
사람들이 가쁜 호흡으로 주무르고 있다

 

함민복에게 도시란 거대한 남성으로 발기된 공간이다.

해발 0인 바다는 대지의 중력에 수평적으로 순응한다. 이에 반해 수직에의 욕망이 곳곳에서 발기한 도시에 순응은 없다. 딱딱한 도시, 점점 더 딱딱해지기만 하는 도시는 ‘메주 띄울 못 하나 박을 수 없’는 반생명적이자 반자연적인 세계다. ‘예수님 피 흘려도 보이지 않’을 네온사인이 범람하는 도시의 말초 감각. 욕망의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도시는 그야말로 ‘개새끼님들’이다. 이 도시는 견고한 폭력성은 농촌(자연)까지 흡수할 태세다.


이제 농촌이 도시를 베끼리라
아파트 논이 생겨
엘리베이터 타고 고층 논을 오르내리게 되리라
바다가 층층이 나눠지리라

-「김포평야」中

 

문명과 과학은 자꾸만 분리하고 해체하려 한다. 효율과 실용의 미덕으로 포장된 도시는 자연의 공간을 분리했다. 밟는 것은 땅이요, 고개를 올리면 하늘이었던 자연은 이제 잘 벼리어진 문명의 칼에 의해 섬뜩한 상처를 남기고 베어진다. 지하로 길이 뚫리고, 아파트 논이 만들어지고, 바다가 층층이 나뉘어질 것이다. 수평과 수직의 직선이 만드는 폭력성. 이 진저리나는 폭력을 피해 시인이 ‘낯설지 않은 도시를 떠돌다 낯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필연이다. 낯선 고향, 바다의 뻘에서 시인은 견고함의 경직성과 대척점에 있는 말랑말랑한 생명성에 흠뻑 취한다.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한 발을 잡아준다
말랑말랑한 힘이 말랑말랑한 가는 길을 잡아준다

말랑말랑한 힘
말랑말랑한 힘

 

도시가 콘크리트의 딱딱함이라면, 바다는 뻘의 말랑말랑함이다. 도시의 직선이 수직이라면, 바다의 곡선은 완만한 수평이다. 도시가 욕망 ․ 금속 ․ 물질 ․ 발기된 남성이라면, 바다는 무욕 ․ 유연 ․ 정신 ․ 여성의 자궁이다. 시인은 말랑말랑한 뻘에서 말랑말랑한 힘을 발견하며, 이 부드러운 것이 우리들 상처(그림자)에 새살이 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함민복의『말랑말랑한 힘』을 읽으며, 요 바다를 어떻게 이용할까에 대한 생각 이전에 왜 바다의 뻘이 말랑말랑한 것일까에 대한 고민을 잠시 해 본다. 


도시

바다

딱딱함

문명 : 수직

직선 : 효율

욕망 : 소외

금속성 : 물질

발기 : 남성성

말랑말랑함

자연 : 수평

곡선 : 형평

무욕 : 화해

유연성 : 정신

자궁 : 여성성



상처-‘수직’에 의해 생긴 것이리라-에 대한 생각 하나.

함민복의 이번 시집에서 상처는 그림자로 은유된다. 그림자 - 빛에 의해 감지되고, 지표면에 의해 지각되는 그림자. 시인의 표현대로라면 ‘완벽한 어둠이거나 환함 / 또는 평지뿐이라면 / 존재하지 않았을’ 그림자. 세상은 완벽한 어둠이거나 환함이 존재하지 않고, 아무리 평평해 보이는 광야라 할지라도 극미세 굴곡이라도 있을테니, 모든 입체적 존재는 숙명적으로 그림자(상처, 슬픔)를 지닌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래의 시 한 편!


  그림자

금방 시드는 꽃 그림자만이라도 색깔 있었으면 좋겠다

어머니 허리 휜 그림자 우두둑 펼쳐졌으면 좋겠다

찬 육교에 엎드린 걸인의 그림자 따뜻했으면 좋겠다

마음에 평평한 세상이 와 그림자 없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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