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 자서전』(함석헌 역, 한길사, 1983) 읽다.

흔히 윤동주를 부끄러움의 시인이라 한다.

부끄러움의 심리적 기원은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바라는 이상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의 괴리감에서 발생한다. 존재가 추구하는 정신적 가치로부터 한참을 벗어난 현실적 삶의 양태, 그 둘 사이의 괴리감과 거리감에서 부끄러움은 시작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부끄러움이라는 정신적 결핍의 자각은 자아 성찰의 출발점이 된다. 부끄러움을 느낀 존재는 부끄러움을 없애기 위한 다양한 실험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식의 실험이 가능할까. 어떤 방법을 동원해야 부끄러움은 사라질 수 있는 것일까. 원리는 단순하다. 문제의 바람직한 해결이란 근본 원인에 관한 치유가 선행될 때 얻을 수 있다. 이를 부끄러움에 적용해 보자. 이상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의 거리감에서 부끄러움이 발생하므로 두 대상간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면 부끄러움은 소멸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방법은 다음의 세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겠다.

① 이상적 자아를 없앤다. → 현실적 자아만 남는 경우.

② 현실적 자아를 없앤다. → 이상적 자아만 남는 경우.

③ 이상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가 서로에게 다가 선다. → 둘 사이의 거리 중간에서 만나는 경우.

어느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②와 ③이 헷갈린다. 지상에 땅을 밟고 사는 범부(凡夫)라면 ③을 고르는 게 적절하다. 개인이 추구하는 이상의 범위를 지상의 방향으로 끌어 내리고, 현실적으론 그 이상에 근접하도록 발돋움을 하는 것이다. 안되면 까치발이라도 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현실과의 타협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당연히 가장 바람직한 상태는 ②의 경우다. 현실적 욕망을 절제하고, 제약함으로써 자아를 완성하는 것, 자아 성찰이다. 여기서 현실의 욕망을 절취한다는 것은 극단의 경우에 자기를 내던질 수 있다는 것을 포함한다. 영혼의 더깨, 육체조차 포기할 수 있는 용기. 이쯤 되면 부끄러움의 문제가 종교적 영역으로 확장된다. 기독교의 속죄양 모티프 motif가 윤동주 시에 빈번히 등장하는 것은 이와 같은 제의적 상징이 형상화된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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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트마[위대한 영혼] 간디는 유달리 부끄러움을 잘 느끼는 사람이었다. 간디의 부끄러움은 우리가 평소에 느끼는 부끄러운 감정 : 창피함, 머뭇거림, 용기 없음과는 좀 다르다(유․소년기 간디의 부끄러움은 이 범주에 포함된다고도 할 수 있겠다). 간디, 나탈 국민의회를 조직하고, 변호사로 명성을 날리고, 인권 변호사로 주목받으며, 전 인도를 사티아그라하[진실의 힘 - 비폭력 저항 운동]로 결속시킨, 간디. 그가 느끼는 부끄러움이란 진리의 광휘에 도달하지 못한, 그 아득함을 감지한 자의 탄식이다.

이 책의 부제이기도 한 진리 실험 이야기란 아힘사[인도․종교의 기본 사상. 불살생(不殺生). 힌두교의 이상. 비폭력]의 실현을 위한 끊임 없는 자아 탐구의 여정이다. 간디는 진리의 발견, 실현을 위해 극단적으로 육체를 다스린다. 일종의 식이 실험으로 대변될 수 있는 경도된 채식주의, 브라마차리아[금욕 : 성욕 절제를 통한 정화]의 선언, 일체의 인위적 치료법을 배제 : 흙과 물을 이용한 자가 치료법 등은 모두 진리를 받아들이기 위한 육체의 비움 : 정화 작업에 해당한다.

그러나 간디의 위대함은 철저한 자기 금욕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간디는 스스로를 하나의 깨끗한 그릇으로 정화한 후 여기에 민중과 민족과 세계를 담았다. 스와라지[자족 경제]를 위한 가내 수공업 : 물레의 실현이라든가 스와데시[자치 실현]의 주창 등은 비단 인도인에게만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간디가 생각하는 폭력이란 단순한 물리적 가해만이 아니다. 기계에 의해 대량 생산된 옷을 소비함으로써 인간들은 지배와 착취의 구조에 굴종된다.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인도인들은 물레를 돌려야 한다. 가내 수공업의 자급자족을 통해 지배의 억압 구조로부터 인간은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 평등과 박애, 그리고 진리의 실현이다. 이른바 칼의 교의(敎義)가 지배하는 세상에 대해 사티아그라하를 선언한 간디. 간디의 사상은 진리의 실험이므로 보편적이며, 원형적이다. 간디가 말한 사티아그라하란 모든 폭력적인 것에 대한 저항이며, 이는 모든 폭력에 무방비적으로 노출된 현대인에게 나지막히 속삭이는 경종의 울림이다.


뱀발 1 : 대략 일주일간 힘들게 읽었다. 책이 두껍다, 650쪽 가량. 나의 경우 번역서에 인물․지명이 많으면 이해가 더디다. 그래서 시간이 더 걸렸다. 마음 단디 먹고 읽어야 한다. 고(故) 함석헌 선생이 옮긴 책이다. 책을 덮고 나서 함석헌 선생의 약력을 찾아 읽어 본다.

뱀발 2 : 친일 사전이 나왔다. 수동적 복종인가, 적극적 가담 행위인가. 행위의 능동성에 관한 논란이 거세다. 어떤 식으로든 바른 역사 세우기는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간디의 경우는 어떨까. 간디는 대영제국을 위해 종군을 한다. 그것도 간디 혼자서만이 아니라 많은 인도인들에게 영국을 위해 전쟁에 참전하라고 설득한다. 간디는 영국에 복종하는 것이 인도와 인도인에게 유리하다고 본 것이다. 간디를 대한민국에 대입하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다.

Posted by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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