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현,『우리 문화의 수수께끼』전 2권 (한겨레, 2004 컬러 개정판) 읽다.

“씨팔 새끼”에서 ‘씨팔’은 ‘씹+할’로 분석할 수 있다. 여기서 ‘씹’이란 단어는 여자의 성기를 의미한다. 가끔 위 욕을 강조하기 위해 “니미 씨팔 놈”이란 말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니미’란 ‘니 에미(母)’의 준말 정도이다. 그렇다면 “니미 씨팔 놈”은 “니 엄마와 씹 할 (성교할 정도로 나쁜) 놈”이란 뜻이다. “졸라 열받아”의 ‘졸라’ 역시 ‘좆+나’가 활음화된 것이고, 여기서의 ‘좆’은 응당 남자의 성기다. 어원을 알고 나니, 친숙했던 이 욕이 참 머쓱해진다. 원래 욕이란 듣는 이에게 불쾌감 ․ 치욕스러움을 느끼게끔 하는 것이고,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우리의 욕에는 성(性)과 관련된 어휘가 많다. 여기까진, 내공 높은 욕쟁이라면 알고 있을 만한 상식.

반면 성적 표현이 배제된 비교적 건전한 욕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 “엿 먹어라”. 그런데 재미난 것은 여기서의 ‘엿’은 그 ‘엿’이 아니다. “엿 먹어라”의 ‘엿’은 조선 후기 유량예인잡단이었던 남사당패에서 여자의 ‘음부’를 가리킬 때 쓰던 은어였다. 대개의 천민 집단들이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기호를 지녔듯 남사당패도 사람 몸에 빗댄 다양한 은어를 사용했고 그 중 여성의 성기를 암호화한 “엿 먹어라”가 특히 욕으로 ‘발탁’(?)된 것이다. (이에 비해 최근 유행하는 ‘루저 loser’는 양반이다. 강도가 낮다. 그 여학생께 너무 뭐라 하지 말자.)

주강현의『우리 문화의 수수께끼』는 우리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혹은 알지 못했던 ‘우리 문화’에 대해 말한다. 원초적이고 토속적인 우리 문화의 비밀. 예를 들어, 우리 선조들은 아기를 낳고 집 밖에 ‘금줄(검줄)’을 쳤다. 그런데 궁금증이 생긴다. 이 금줄은 우리 문화에만 나타나는 특수한 현상인가. 왜 금줄만은 유독 왼새끼로 꼬았지. 그렇다면 금줄의 제의적 상징은 무엇인가. 대답 곤란한 이 물음에 주강현은 상세히 각주를 달아 알기 쉽게 설명해 준다. 글쓴이 본인이 손수 발품을 팔아가며 찍은 400여장의 사진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거니와 (사진이 많기 때문에 2004 컬러 개정판으로 읽으면 더욱 좋다) 해박 ․ 순박 ․ 질박한 글쓴이와 함께 문화의 보고를 답사하듯 읽는 즐거움도 기대 이상이다.

한편 우리 문화에 대한 글쓴이의 자부심을 읽으면서 묘한 동류의식을 느낀다. 일례로 이 책의 내용 전개는 다분히 비교 문화사적인데, 글쓴이의 문화 비교는 역설적으로 우리 문화의 고유한 특수성을 알기 위한 장치로서 효과적이다. 우리의 도깨비 문화와 중국의 청동기 문양이 비슷할 때 대개의 학자들은 (중국에서의) 문화유입설을 주장하지만, 주강현은 이를 또 다른 모화주의(慕華主義)로 비판한다. 제주도의 돌하르방과 몽고의 훈촐로(몽고의 석인상)가 비슷하다고 해서, 즉 문화적 친연성이 있다고 해서 이를 문화유입의 증거로 볼 수 없다는 거다. 왜냐. 상호간에 문화적 교섭이 없이 독자적으로 발전한 문화간에도 문화적 공통성이 나타나는 예는 얼마든지 많으니까.

법고창신(法古創新) :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創造)한다는 뜻으로, 옛것에 토대(土臺)를 두되 그것을 변화(變化)시킬 줄 알고 새 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根本)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뜻.


주강현의 꼼꼼한 고증을 통해 복원되는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란 결국 선조들 삶의 원형질이다. 실상 현재의 우리 문화란 서구인들의 시각으로 굴절되고 변질된 것이 태반이다. 주강현의 말대로 우리 문화는 손님이 안방을 차지하고 주인이 윗목으로 내몰린 ‘객반위주(客反爲主)’의 처지다. 동도서기(東道西器)도 아닌, 서도서기(西道西器)로 방향을 급선회한 우리 문화의 현주소. 문화 식민주의로 전락한, 슬픈 시대에서 작가는 이제 동도동기(東道東器)가 필요한 때라고 말한다. 이를 문화적 종 다원성의 확립을 위해서라고 말해도 좋고, 함부로 왜곡․절취된 우리 문화의 날줄과 씨줄을 바로 잡기 위해서라고 주장해도 괜찮다. 좋고, 좋다.


+ 책의 제목은 마빈 해리스의『문화의 수수께끼』에서 따 왔겟지만, 책의 전개는 문화 유물주의가 결코 아니다.

덧. 포스팅을 올리고 다시 읽어 보니, 뭔가가 이상하다. 갸웃갸웃. 아! 내 포스팅에 저자가 주경철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바보. 주경철은 서울대 사학과 교수이고, 서양 역사 전공이다. 옹리혜계님이 쓰신 리뷰에서 보았다. 왜 주강현이 아닌, 주경철로 저자를 기억한 걸까. 골똘히 생각해 보니... 그저께 미용실에서 읽은 신문이 문제였다. 조선일보를 읽고 있었는데, 사설란 한 구석에 주경철의 <히스토리아>라는 연재 코너가 있는 것이다. 주경철? 어디서 들어봤었는데.. 하며 주경철이 머릿속에 박힌 거다. 해프닝.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는 주경철이 아니라 주강현이다. ^^
 

Posted by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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