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드릭 그리무, 『진화론 300년 탐험』(이병훈․이수지 역, 다른 세상, 2004) 읽다.
알고리즘으로 푸는 진화
이기적 유전자란 유전자는 자가 복제의 유해성은 고려하지 않고 무한정 자기 복제를 확산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생물학적 진화의 메커니즘임과 동시에 정치․사회적 환경에서 살아가는 개별적 인간(사회 집단 내의 개별체들을 한 개체의 유전자로 유추한다면)들의 행동 양식을 은유하기도 한다. 몇 년 전,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을유문화사, 2006)가 출간되었을 때의 그 흥분과 들썩임 속에서도 나는 무심했다. 과문한 나는 진화도, 유전의 메커니즘도 모른다. 모르면 무심할 수 있다. 그.런.데.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해야 옳은데, 나는 모르는 것을 싫어한다 했다. 내가 싫어했던 많은 것들. 실은 알지 못했고, 몰랐던 것들. 반성하며 진화론 교양 입문서를 읽는다.
이 책의 프레임은 독특하다. 각 파트(소재)별로 번호가 매겨져 있고, 각 번호의 마지막 부분에 독자는 두 가지(혹은 세 가지) 중 하나의 경로를 선택해 다음 번호로 이동할 수 있다. 어릴 적, 심심풀이로 읽던 심리 테스트처럼. 이런 식이다. “당신은 Ⓐ의 상황에 있다. ㉠을 선택 하겠는가, ㉡을 선택하겠는가. ㉠이라면 Ⓑ로 가시오, ㉡이라면 Ⓒ로 가시오.”
이와 같은 경로 선택 모델은 일반적 책 : 줄글의 형식과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대개의 책에서 작가는 전지적 서술자로서 책의 처음과 끝을 예비한다. 이 경우 독자는 작가가 마련해 놓은 사고의 흐름에 시선을 맡긴다. 책을 펴는 순간, 독자는 싫든 좋든 작가가 조형한 세계를 항해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대개의 책읽기란 전능한 작가가 구획하고 건축한 사유의 계단을 묵묵히 밟는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그 단선적 항해가 싫다면, 구명 조끼 입고 비상 탈출하는 수밖에. 여기서 독자의 역할은 극히 수동적이며, 축소적이다. 물론 독서된 텍스트에 대한 독자의 비판․평가는 별개로 한다.
반면 『진화론 300년 탐험』은 독자 스스로 사고의 방향을 정한다는 점에서 작가의 전능한 힘이 축소되며, 독자의 역할은 확대된다. 독자는 매 선택의 순간마다 주체적 의지로 다음의 행마를 선택하므로 글의 진행 방향은 단선이 아닌 복선이며, 텍스트는 닫힌:고정된 구조가 아니라 열린:가변적 얼개를 이룬다. 그렇다. 이 경로 선택 모델의 가장 유효한 효용은 독서 과정에서 위축되었던 독자의 능동적 참여를 재촉한다는 것일 게다. 일등 항해사에게 키를 맡긴 안락한 여행이 아닌, 스스로 닻을 올리고 방향타를 잡아야 하는 피곤한 탐험이다. (그러나, 김 빠지는 소리 같지만, 독자의 역할이 제 아무리 확장된다 할지라도 모든 글은 결국 작가의 의도대로 마무리된다는.)
글쓴이의 명민함은 알고리즘을 통한, 독자의 역할 확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글쓴이가 ‘명민’한 까닭은 이 책의 형식[알고리즘]과 주제[진화론]의 적확한 유기성 때문이다. 천지 창조가 전지전능한 신의 계획과 말씀에 의해 이루어진 공시적 완벽성이라면, 진화는 (자연) 선택과 적응의 통시적 투쟁이다. 곧 창조는 단선적이며 완결하지만, 진화는 가변적이며 선택적이다. 결국 작가는 진화의 메커니즘[내용]을 프레임[형식과 틀]에 일치시키는 작업을 통해 독자의 가능성을 확장시킨다. 이 가능성의 확장이란 자연 과학과 생물학에 대한 독자의 인식 진화에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재밌게 읽지는 못했다. 나는 책을 읽으며 몇 번씩이나 1번으로 되돌아가는 수모를 당했는데, 학습 능력이 부족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실은 진화론에 대해 삐딱한 의문을 제기해서였다. 삐딱하게 물어보면 늘 1번으로 곤두박질 당한다. 창조론자의 입장에선 도무지 답답할 노릇일게다. 생각하기에, 진화론이 유효하기 위해선 진화의 기초 전제가 성립해야 한다. 진화의 과정을 역으로 재구한다면 생명의 기원부터 풀이해야 옳다. 곧 진화론은 먼저 비활성물질[무생물]이 활성물질[생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입증해야 한다. 이 전제 조건을 충족하지 않은 진화론은 창조론자도, 나 같은 회색분자도 설득할 수 없을 것이다.
심심풀이 성격 테스트 중 비교적 정확한 것을 알고 있다. 한번 해보시라. 심심풀이라는 단서를 라벨로 붙였지만, 이 테스트는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다. 아래를 읽어보자.
당신은 지금 막 집으로 들어왔다. 당신은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느라 예민해져 있으며, 피로하다. 신을 벗고 거실에 들어선 당신은 겉옷을 소파 위에 아무렇게나 내던지고 우두망찰 서 있다. 아마도 당신이 뭘 해야 할지 몰라 생각을 정리하는 중일 것이다. 당신은 우선 시원한 음료를 한잔 마시고 생각을 생각해 보기로 생각한다. 냉장고로 간다. 냉장고에는 우유와 오렌지 쥬스, 그리고 사이다가 있다. 실은 냉수를 마시고 싶었으나 냉장고에는 우유와 오렌지 쥬스, 그리고 사이다밖에 없는 것이다. 당신은 그냥 냉장고 문을 닫을까 하다, 생각을 바꿔 무얼 좀 마시기로 한다.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우유인가, 오렌지 쥬스인가, 아니면 사이다인가. 다른 음료는 없으며, 당신은 셋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자, 가장 마음에 드는 하나의 음료를 선택하라.
선택이 끝났는가. 만약 우유를 선택했다면 당신은 A 타입이고, 오렌지 쥬스를 선택했다면 B 타입이다. 사이다는 물론 C 타입이 된다. 그럼 해당 음료를 선택한 당신의 성향을 분석해 보겠다. 너무 놀라지 마시라. 이 테스트는 상당히 정확하다.
우유를 선택한 당신은? A 타입
[#M_A 타입|접기|
A 타입 : A 타입의 당신은 우유를 좋아하는 타입이다.
오렌지 쥬스를 선택한 당신은? B 타입
B 타입 : B 타입의 당신은 오렌지 쥬스를 좋아하는 타입이다.
사이다를 선택한 당신은? C 타입
C 타입 : C 타입의 당신은 사이다를 좋아하는 타입이다. ^^;;;
_M#]
아래는 공부의 차원에서 책을 요약한 것.
비교적 꼼꼼히 타이핑 했는데, 길고 재미없으므로, 시간이 널널하신 분께만 일독을 권한다.
과학적 방법론
진화론은 인식론이나 과학철학 측면에서 몇 가지 방법론상의 문제들을 제시한다. 첫째, 모든 과학적 방법은 이성적이고 비판적이어야 한다. 과학은 독단적인 활동이 아니며 상대적이고 반증 가능한 활동이다. 창조론은 과학적 이론이 아닌 교리다. 반면 다윈주의는 사실을 통해 검증과 반증이 가능하므로 하나의 과학적 이론이다. 둘째, 연구의 발전 단계에 관한 사항이다. 모든 과학적 연구는 구체적 사실에 기초해야 하며, 논리적 추리 역시 구체적 사실만큼 중요하다.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주장들은 모두 기각되어야 한다. 셋째, 모든 과학적 연구는 동일한 사실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할지라도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특히 이론들은 확정되는 경우가 드물다.
계몽시대
18세기에는 생명과 지구에 관한 지식이 급속도로 발전한다. 많은 학자들이 지형 연구, 생물종 분류법, 생식 메커니즘 등에 몰두한다. 그러나 그들이 부딪힌 장애[특히 종교 문헌]는 많았다.
뷔퐁
뷔퐁은 1744년 『지구론』을 발표하여 당시 교회가 5천 년으로 규정한 지구의 나이를 약 7만 4천 년으로 추정했다. 파리의 신학대학이 그에게 공식적인 철회를 요구하자 그때부터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뷔퐁은 신종이 비활성물질로부터 자연발생적으로 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기후나 먹이로 인한 사소한 변화들이 오랫동안 여러 세대에 걸쳐 지속되면 종이 변할 수 있다고 믿었다.
격변설
격변설은 지구의 역사는 한 번 또는 수차례에 걸친 대규모 파괴 사건으로 점철되었다는 이론이다[예) 노아의 홍수]. 퀴비에는 일련의 격변들을 ‘지구의 혁명’이라고 명명했다. 과연 격변들이 각 시대마다 일어난 멸종의 원인일까. 퀴비에의 계승자들은 격변설과 연속창조론[지구에 급격한 변화가 올 때마다 신이 새로운 종을 창조하기 위해 수차례 지구로 내려와 창조를 계속했다는 가설]을 접합시키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뷔퐁 등은 지구 표면의 점진적인 변화만 인정했다. 사실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지형들을 설명하려면 소규모의 작용들이 느린 속도로 축적되어 일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라마르크와 퀴비에
라마르크는 1809년 『동물철학』에서 혁신적인 생물학 개념들을 발표한다. 그는 어떤 생물종들은 불활성물질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다고 주장했다. 이 생물체들은 세대가 바뀌면서 환경의 영향을 받아 형태가 변할 수 있고 결국 새로운 형태의 후손을 낳게 되는데 이들 후손들은 대개가 이전 세대보다 완벽한 구조와 형태를 지니게 된다고 한다. 라마르크는 두 가지 기본 법칙을 제창했다. 첫 번째 법칙은 “기능이 기관을 만든다.”는 것. 즉 생물체가 자기 신체 부위의 발생을 지휘, 조정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법칙은 그렇게 해서 생긴 변화는 후손에게 전달된다는 획득형질유전[외부 세계의 영향으로 생긴 후천적 형질(획득형질)은 유전된다는 학설]이다.
퀴비에는 지질학적 격변설을 주장했다. 각 지질학 시대를 살았던 생물종들은 주요 격변으로 멸종되고 서로 분리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창조론에 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지만 불변론[모든 생명체는 세대 교체를 거듭하여도,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존재한다는 이론. 변형론과 대립]에 관해서는 완고한 태도를 고수했다. 모든 종들은 복잡하면서도 체계가 안정적이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도 절대 변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19세기 교회와 국가
19세기에는 거의 모든 서양 국가들이 그리스도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것은 구약성서의 창세기 교리와 대립되는 진화론의 비약적 발전에 커다란 장애가 되었다.
다윈
다윈은 사육 실험 결과와 탐사 기록을 바탕으로 진화론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차근차근 정리한다. 그러던 중 자연학자 윌리스가 자신과 비슷한 연구 결과를 알려오자 그와 함께 1858년 공동으로 논문을 발표한다. 이듬해 다윈은 『종의 기원』을 발표한다. 『종의 기원』은 자연과학의 모든 분야에 걸쳐 다양한 논증을 하면서 진화론을 옹호한다. 종내 개체형질의 다양성(즉 변이성), 모든 지질 시대에 걸쳐 드러나는 동물상들의 연속성, 동식물의 지리상 분포, 분류상 같은 그룹에 속하는 종들 사이의 형태적, 발생학적 근연성 등이 결정적 요인들이다. 다윈은 독창적인 진화 메커니즘을 제안한다. 자연적 변이성의 역할을 강조하며, 생물체는 생존 가능한 수보다 더 많이 태어난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주장은 멜서스의 이론[인구론]에 기초한 것으로 오늘날 널리 검증되었다. 생존할 개체보다 더 많은 개체들이 태어나므로 동종 개체들, 더 나아가 이종 개체들 사이에 경쟁이 일어난다. ‘생존을 위한 투쟁’에서 이점이 있으면 그런 특징을 지닌 개체들은 생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자손 번식의 기회가 더욱 많아진다.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형질이 후손에게 전달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다윈은 이런 메커니즘을 ‘자연선택’이라고 명명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생물학적 주요 원인으로 간주된다. 저서 『인류의 유래와 성선택』에서는 인류를 비롯한 모든 생물종의 암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성선택’이라는 개념을 선보였다. 수컷들만의 특징인 공격성과 육중한 덩치의 원인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수컷간의 경쟁과 암컷들이 가장 활력 넘치는 수컷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간의 진화는 사회적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바이스만
바이스만은 1883년 획득형질유전설을 반증하여 유명해진다. 그가 실험으로 획득형질유전설을 반증하기까지 사람들은 여러 세대에 걸쳐 이루어진 신체적 변형은 후손에게 유전[예) 기린의 목]된다고 믿었다. 바이스만은 실험용 생쥐의 꼬리를 여러 세대에 걸쳐 자르는 실험을 했는데 생쥐의 꼬리가 전혀 줄어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범생설[유전적 특성을 지닌 비가시적인 미립자(제뮬)가 생식기로 모여 들고, 생식 세포를 통해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이로써 전대의 각 부분에서 획득한 형질은 유전된다는 학설]과 획득형질유전설을 부정했다. 이렇게 해서 그는 다윈주의에서 획득형질유전설을 없애고 스스로 신다윈주의를 창설한다. 이 이론은 상보 관계에 있는 우발적(불특정) 변이[기원이 같은 후손 개체들 사이에서 형질이 다른 것을 말함. 같은 부모에서 태어난 자손들의 차이]와 자연선택이라는 두 가지 메커니즘에 기초한다. 또한 바이스만은 유전자 풀[도브잔스키가 제창. 번식이 가능한 어떤 생물 집단이 지니고 있는 유전 정보의 총량]이 특수한 화학 성분으로 구성되어 성세포의 핵 속에 들어 있다는 혁신적 가설을 강조했다. 이후 모든 체세포는 염색체를 가지고 있으며 염색체는 유전자 DNA를 지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오직 성세포 속의 유전자만이 다음 세대의 형성에 기여한다는 그의 주장은 옳았다. 그래서 획득형질이 유전되지 않는 것이다.
멘델과 드 브리스
멘델은 유전 요인들(훗날 ‘유전자’라고 명명됨)은 여러 세대에 걸쳐, 연속적인 잡종 교배에서조차 독립적으로, 늘 변함없이 전달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드 브리스는 식물의 신종이 급작스럽게 출현하는 것을 목격해 신돌연변이설[유전적 요소들의 임의적인 변형인 돌연변이들이 진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학설]이라는 진화론을 제창한다. 새로운 유전형질들은 자연발생적으로 자연에서 나타날 수 있다. 바로 유전적 돌연변이들이다. 그러나 드 브리스의 생각과는 달리 유일무이한 돌연변이는 대부분의 경우 신종을 만들지 못한다. 도약에 의한 종분화는 극히 드문 현상이다. 왜냐하면 자연에서는 서로 분리된 종들, 즉 교배 결과 생식 능력이 있는 후손을 생산할 수 없을 만큼 서로 다른 종들은 대개의 경우 다수의 돌연변이 때문에 차이가 난다.
우연론과 결정론
생명과 지구에 대한 지식은 뉴턴의 물리학 모델처럼 처음부터 인과 관계를 바탕으로 발전되었다. 진화론의 초기 가설들은 결정론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다시 말해 모든 생물학적 현상은 명확히 규정된 직접적인 원인을 가져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라마르크는 생물의 적응은 생활 방식에 따른 필요성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한 예로 기린의 긴 목은 여러 세대에 걸쳐 나무 꼭대기에 붙은 잎을 먹기 위해 노력한 결과이다.
그러나 다윈에 이르러서 생물학적 결정론은 덜 직접적이게 된다. 영국의 자연주의가 우연을 진화의 메커니즘에 도입하기 때문이다. 다윈은 동종 개체들은 불과 몇 가지 형질에서 서로 다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동종 내의 변이는 불규칙하고 우발적이며 최상의 적응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봤다. 그는 그런 변이들을 ‘막연한 변이’라고 명명하여 예측 불허성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기린들은 목이 다소 길었는데 수천 년 전부터 목이 긴 기린들이 다른 기린들보다 먹이를 많이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생존경쟁에서 유리했다는 것이다. 유전학자들은 유전자 풀[진화의 기본 물질]에서 일어나는 돌연변이가 종의 적응과 관계없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증명하여 다윈의 가설을 입증했다. 그래서 돌연변이는 임의적으로 발생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생물체의 변화는 예측할 수 없는 변화에서 온다.
오늘날 진화에 있어서 우연의 역할은 한층 더 미묘하게 해석된다. 이른바 도구적 우연이라는 것이다. 생물학자들은 종들의 운명은 예측 불허성으로 가득하며 진화의 방향도 우연에 의해 이쪽 또는 저쪽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따라서 어느 특정한 변이를 지니고 있다고 해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은 아니다. 오직 확률에 따라 유리한 것이다. 다만 그 확률은 경우에 따라 다소 정확하게 예측될 수 있을 뿐이다. 진화는 우연과 결정론이 결합된 매우 복잡한 통계학적 현상인 것이다.
모건학파
모건 학파는 초파리를 X선에 노출시켜 인위적인 돌연변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모건의 제자 도브잔스키는 진화의 종합설[다윈주의를 일부 수정하고 유전학, 생물지리학, 고생물학 등 다양한 과학 분야의 연구 성과를 종합하여 이뤄진 진화에 관한 이론]을 세우는 데 공헌한다.
스탈린 정권과 소련
1920년대 말 소련은 스탈린에 의해 전체주의 정권체제가 되었다. 소련의 농업학자 리센코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부합한다는 이유 때문에 진화론을 지지했고, 유전적 돌연변이의 우연성을 반대하고 유전적인 결정론을 옹호했다. 무효한 가설로 판명된 획득형질유전론을 부활시키고 엥겔스의 ‘도약의 법칙’을 수용하여 밀이 호밀로 변할 수 있고 연맥이 귀리로 바뀔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모두 거짓이다.
점진설과 도약진화설
점진설[다윈, 헉슬리, 메이어]은 신종은 본래 형태로부터 느리고 지속적인 절차에 따라 점진적으로 서로 달라지면서 탄생한다고 가정한다. 반면 도약진화설[드 브리스, 르죈느, 굴드]은 신종은 본래 형태로부터 상대적으로 빠르고 급작스런, 즉 ‘도약’적으로 출현한다고 가정한다.
배(胚) 발생 과정 중 변화가 일어난 시기가 이르면 이를수록 부모 개체와 차이가 많이 나는 돌연변이체들이 새로 발생한다. 그러나 이런 변형이 유전되기 위해서는 돌연변이들끼리 종 내부에서 연대해야 된다. 즉 한 세대를 통해 신종이 형성되는 급진적인 도약진화는 불가능해진 것이다. 도약진화의 온건한 형태가 주변성 종분화 모델[소수의 개체들로부터 발생하는 종분화 모델. 종의 서식지 주변에 격리된 소수의 동종 개체들에서 신종이 발생하는 종분화 모델]이다. 대규모 돌연변이는 개체 수가 적은 내부에 고정될 확률이 높다는 원리에서 온 것이다. 이런 조건에선 종분화는 거의 즉각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결국 진화의 방식은 다양하고 종마다 다른 것 같다. 점진설은 오늘날 사실을 근거로 하여 합당성이 인정되는 반면에 도약진화설은 가설에 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