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리호의 노스쇼어에 덯을 놓으러 간 동안 여자는 아주 작은 동물을 잡아 왔다. 우리는 이것을 ‘카인’이라고 불렀다.

여자는 카인을 우리 움막에서 3킬로미터 떨어진 숲에서 잡았는지, 아니면 6킬러미터 떨어진 곳에서 잡았는지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를 닮은 것을 보면 어쩌면 카인은 우리 친척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여자의 생각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크기가 우리와 다른 것만 봐도 카인은 처음 보는 특이한 동물임에 틀림없다. 나는 카인이 어떻게 하나 볼 생각으로 카인을 물 속에 집어넣어 보았다. 카인은 금세 가라앉았다. 그러자 여자가 재빨리 물 속에 뛰어들어 카인을 데리고 나오는 거였다. 그 바람에 카인의 정체를 확실히 알아내기 위한 실험을 망치고 말았지만, 나는 이날 일을 계기로 카인을 물고기로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여자가 좀 이상해졌다. 모든 면에서 다 그렇게 보인다. 가끔 카인 물고기가 칭얼대면서 물 가까이 가려고 하면 못 가게 하고, 기어이 카인 물고기가 울음을 터뜨리면 여자는 밤새 물고기를 안고 다독거려준다. 그럴 때면 여자의 얼굴에 있는 주위를 볼 수 있는 두 개의 구멍에서 물이 흘러내리고, 물고기를 달래느라 등을 토닥이며 다정한 소리로 뭐라고 말하는 등 안간힘을 쓴다.

- M. 트웨인, 『이브의 사랑 일기』 중

 

한 달 전, 우리집에 식구가 하나 늘었습니다.

생판 일면식도 없는 녀석이 나타나서는 하는 일 없이 잠만 자고, 먹고, 쌉니다. 걸핏하면 울어 제치고, 그러다 자고, 그러다 먹고, 결국 쌉니다. 순환적 원운동입니다. 녀석은 먼저 제 잠을 뺏고, 제 침대를 뺏더니, 심지어 제 아내를 뺏었습니다. 모든 걸 독차지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아기가 태어난거죠. 제가 아기 아빠가 되었다고 하네요.

 

아기와 보낸 지난 한 달은, 뭐랄까, 음,

말하자면, 감미로운 카페모카에 아스피린 시럽을 타서 먹은 듯한 느낌입니다.

 몽환적 달콤함이라 할까요. 크림 스파게티에 빠져 헤엄치는 파리의 절박함이라 해야 할까요.

달달한 겔포스에 찍어 먹는 식빵맛처럼 색다른 느낌과도 비슷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스피린 스파게티에 겔포스를 적신 식빵을 곁들인 브런치 같다고 할까요. 아무튼 매우 오묘한 기분입니다.

 

 

                                                                                                    - 인증샷, 발가락이 닮았다.

 

관찰 일지 1. 2010.01.

07.10:43. 출생. 체중 2.9kg. 신장 49cm. 두위 32cm. 흉위 31cm. 혈액형 O. 머리가 외계인처럼 김. 조금 두려움.

08. 보통의 지구인 머리가 됨. 아기가 바뀐 게 아닐까, 잠시 딴 생각. 아기 양 눈 뜸.

09. 퇴원. B형 간염 1차 주사. 수유 시작과 황달. 첫 태변, 나는 보지 못함.

11. 가만 보니, 나와 닮은 부분이 발가락밖에?

12. 수유 자세 불편함 호소. 젖을 먹지 못하고 밤에 울어댐.

13. 밤에 계속 움. 자지러지게. 어찌할 바를 모름.

14. 기저귀를 갈아주자마자 응가함. 이런 일이 자주 반복. 혹시 이 녀석, 기저귀 회사에 리베이트를 받는 것이 아닐까, 의심.

15. 황달 증세 사라짐. 체중 3.3kg. BCG 주사. 의사 왈, 아기 배에 가스가 찼네요. 그래서?

16. 탯줄 떨어짐. 배꼽에서 진물 나옴. 육아종 의심. 잘 말려주고 지켜 보기로.

19. 밤에 심하게 움. 울음 소리가 시끄러워 MP3를 귀에 꽂고 아기를 안아 주었더니 아내가 화를 냄. 영아 산통 아닌가, 의심.

20. 운동 시작. 자전거 운동 등. 손 탔음. 안아 주기만을 바람.

21. 손 제대로 탔음.

23. 소리에 민감한 반응. 울다가도 특이한 소리가 나면 울음 멈춤. 싱크대에 물 틀어놓고 한참 서 있어 봄. 효과 있음.

26. 눈물을 흘림. 이슬. 지금까지의 눈물은 가짜였음.

27. 영아 산통 아님.

28. 배꼽 깨끗해짐. 밤에 세 시간 숙면(!) 취하기도. 얼굴이며 허벅지 젖살 오름. 얼굴이 넙데데함. 나와 닮은 부분이 어딜까 계속 탐구 중.

29. 바운서에 잠시 적응. 휴….

30. 모빌에 관심을 보임. 돌아가는 모빌에 맞춰 눈을 움직임. 발가락 인증샷 찍음.

31. 소리내며 웃는 것을 아내가 보았다고 함. 나는 보지 못함. 이름 결정. 음은 아내가, 뜻은 내가. 수겸.

 

- 첫 쪽쪽이[공갈 젖꼭지] 물린 날. 한 인상파함.

 

아기 이름은 수겸입니다. 성을 붙이면 이수겸이네요. 수겸. 어디서 들어본 것 같나요?

맞습니다. [슬램덩크]죠. 아내가 처음 ‘수겸’이란 이름을 말했을 때, 저도 [슬램덩크]가 생각났습니다.

[슬램덩크]라면 강백호지만, 돌연변이[백호, 네잎클로버, 스머프 등]를 싫어하니 No.

서태웅도 괜찮은 캐릭터지만 이름때문에 삶이 눌릴까봐 No.

<북산고>의 상대편이긴 하나, 김수겸[선수겸 감독]의 단정함과 야무짐이 맘에 들어서 ok 했습니다. 정작 아내는, [슬램덩크]를 모르더군요.

 

 

수겸.

음성 모음[­-]이 겹쳐 걱정했지만 아기가 워낙 드세니[+] 괜찮을 것 같구요.

초성의 자음은 예사소리로 무난하며, 앞자가 모음으로 끝나니 발음이 답답하지 않습니다.

유성음으로 마무리했는데, 유성음 중 ㅁ은 단정하게 입을 모아주는 순음입니다. 대체로 단아한 느낌입니다.

 

수겸[繡兼]. 이번엔 뜻풀이요.

수[繡]는 ‘수놓다, 비단’의 의미이며, 겸[兼]은 ‘겸하다, 아우르다’ 정도입니다. 이를 엮으면

날실과 씨실이 아울러 한 폭의 비단을 짜듯, 한 올 한 올 의미 있게 직조될 너의 삶을 바라며.

뭐 이 정도가 되겠죠. 은유적인 이름이라 좋습니다.

참, 아기가 태어나면 이름시를 줘야지, 생각했더랬죠. 아래는 아기 이름시.

 

 

이름 짓는데 몇 개의 일화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 이름 공모.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맘에 드는 이름이 하도 생각나지 않아 주변 분들께 SOS를 청했습니다. 아기 이름을 공모전을 한거죠. 다양한 이름이 나왔습니다.

‘명박’, ‘라크’, ‘스라엘’, ‘리듐’, ‘가탄’, ‘모부’. 뭐 요딴 것들이네요. 제 성은 이[李]인데요. 어떤 이는 외자로 하자며

‘란’, ‘름’, ‘특’, ‘ㅂ’ 등 따위를 말씀해 주시더군요.

감사의 의미로 수겸이 녀석이 사용한 기저귀를 조용히 줄 건네줄 생각입니다.

 

- 제법 귀여운, 십지화[十指花].

 

Posted by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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