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핌픽 독점 중계, 씁쓸히 환영하는 이유.

 

- 개막식 사진인가 보다.

 

벤쿠버 동계 올림픽, sbs의 독점 중계가 논란이 되는가 보다.

주지하다시피 MBC, KBS, sbs는 그동안 국민적 충성도가 높은 운동 경기의 중계권을 공동방송[코리아 풀] 해 왔으나, 이번 벤쿠버 동계 올림픽의 TV 시청은 sbs 및 sbs 산하 네트워크에서만 가능하다. sbs가 올림픽 중계권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단독 계약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에 앞선 지난 2일, 법원은 sbs의 날치기에 면죄부를 줬고(법은 날치기에 관대하다), 이에 기승한 sbs는 KBS․MBC에 뉴스 보도를 위한 자료 화면[2분씩이나!]를 제공하는, 하해와 같은 아량을 보여주었다. 고로 현재 캐나다에서 진행중인 동계 올림픽은 sbs에서만 시청이 가능한 것이다.

 

이에 많은 블로거들은 sbs의 중계권 독점에 항의를 하고 나섰다.

sbs의 저질 해설을 듣느니 무음으로 방송을 시청하겠다느니, sbs 화면에서 트리플 악셀을 하는 김연아[문제의 핵심은 김연아 경기의 광고료다]를 보느니 차라리 아파트 옥상에서 스키점프를 하겠다느니, 동네 뒷산에서 쌀 포대로 봅슬레이를 하겠다느니, 카라보다는 소녀시대가 좋다느니, TV 수신료 거부 운동을 해서 KBS에 간접 압력을 넣겠다느니, 격분한 블로거들의 글을 읽다 보면 그들의 진심어린 충심에 눈물과 탄식이 난다. 물론 이번 사태는 상도 아닌, 방송도를 어긴 sbs에게 잘못이 있다. 또한 시청자는 자신이 보고 싶은 최고의 화질과 해설로 김연아 경기를 관람할 권리가 있는 것도, 일견, 사실이다. 그러나,

   

- 마녀 사냥 좀 그만하자. 제발. 진심으로 싫다, 사냥질.

 

나는 정말 궁금하다. 대체 김연아의 트리플 악셀이 얼마나 중하고 대단한 것이길래, 모든 방송이 천편일률적인 똑같은 화면을 송출 한단 말인가.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대한민국 국가 대표 선수가 멋진 경기를 하기를, 좋은 결실을 맺길, 나 역시 바란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지상파 방송국에서 이구동성의, 같은 화면으로 “대~한민국! 대~한민국!” 흥분해야 우리 선수들이 더 열심히 뛰고 더 좋은 성적을 얻을 것이란 말인가.

앞으로 있을 남아공 월드컵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축구팀의 선전을 바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한민국의 월드컵 경기가 모든 지상파[EBS는 빼고] 방송국에서 똑같은 화면을 전국의 가정에 강제할 만큼 시급하고 중차대한 것인가.

아니라면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난시청 지역민을 위한 섬세하고 아름다운 배려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위기의 4대강, 미디어법, 세종시로 분열 위기를 맞고 있는, ‘대한민국 호’가 획일화된 스포츠 시청을 통해서라도 한 마음이 되어 국난을 극복하길 바라는 방송사들의 올곧은 애국과 우국인가.

아니다.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스포츠 중계를 수단으로 하는 광고 수익의 극대화 아닌가. (예상 반론을 생각했으나, 가장 비열한 반론은 “채널마다 나오는 같은 화면이 보기 싫다고? 그럼 TV를 보지 말든가.”가 아닐까.)

   

- 김연아 선수 경기, 한번도 못봤다. 이번엔 꼭 봐야지.

 

현대 사회에서 스포츠는 사회적 연대감의 계기나 스트레스 해소의 오락적 기능을 갖는다. 스포츠[여과 활동이 운동이 아닌, 경기로서의 스포츠를 말한다]의 속성을 살피면, 단 한명의 승자만 존재한다는 점에서 스포츠는 ‘생존’과 닮았고, 생존을 위해 다양한 전략․전술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전쟁’과 닮았다. 삶이라는 생존경쟁의 한 가운데에 방치된 현대인과 스포츠의 속성은 이처럼 닮았다. 치열한 경쟁의 다툼에서 늘 패배하는 현대인들은 스포츠의 ‘영웅’에게 자신을 투사하기도 하며 대리 만족의 충족감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허상과 실제는 다르다.

한편 자본주의 사회에서 스포츠는 고부가가치의 산업이다. 자본은 높은 수익을 위해 ‘영웅 만들기’라는 신화를 창조한다. 스포츠에는 단 한명의 영웅과 그 영웅을 위해 판을 짜주는 다수의 들러리가 존재한다. 이는 스포츠의 영웅이자 동시에 자본의 영웅, 그리고 소비의 영웅이다. 단 한명의 스포츠 스타는 절대 다수의, 평범한 스포츠 선수 위에 군림한다. 우민화 정책의 표본으로서 스포츠는 그만두고서라도 내가 스포츠를 불편해 하는 이유이다.

 

이 글의 논지는 스포츠를 보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오락․유희로서의 스포츠 시청권이 있는 것처럼,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스포츠 외의 것을 시청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다양성이 담보되지 않는 문화는 스스로의 경도된 경직성에 절름발이 공룡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날치기 독점 계약한 sbs의 ‘시청자의 채널 선택권’ 운운은 궁색한 변명임과 동시에 시청자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배려라 생각한다. 차제에 부탁한다. 각 방송사는 시청자를 볼모로 한 밥그릇 : 광고수익 싸움은 그만하고, 방송 문화의 다양성에 좀더 매진해 주기를.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은 애국주의로 포장된 방송의 포퓰리즘이 아니다.

 

Posted by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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