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 아기 이름 짓기 사연

 

Q. 아이의 이름과 한자를 정하여 출생신고를 하는데 이름에 맞는 인명용 한자가 없다고 합니다. 아이의 한자 이름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인명용 한자로 추가지정이 되는 경우에는 한자를 호적에 올리고 싶은데 그 절차는 어떻게 됩니까?

 

A. 자녀의 출생 신고를 할 때 자녀의 한자 이름이 인명용 한자에 해당하지 아니할 경우에는 해당 한자가 없는 부분은 공란으로 두고 한글로 된 이름만 호적에 기재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한자를 호적에 기재할 수는 없으나, 나중에 인명용 한자로 추가지정되는 경우에는 출생신고에 대한 추완신고를 함으로써 자녀의 호적 성명란에 인명용 한자를 병기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인명용 한자는 법령에 의하여 규정(호적법 제49조 제3항, 호적법시행규칙 제37조 제1항 참조)하고 있기 때문에 인명용 한자를 추가로 지정하기 위하여는 호적법시행규칙을 개정하여야 함을 알려드립니다.

- 대법원 FAQ에서 따옴.

 

수겸이 이름 짓기 때의 일입니다.

작명소에 이름을 맡기는 것은 처음부터 생각지 않았고, 저희 내외끼리 지어보자는 생각으로 수겸이 이름을 지었습니다. 고심 끝에 아내가 [수겸]이란 음을 선택했고, 이후에 제가 이 음에 어울리는 의미를 더했습니다. 옥편을 찾아 음에 뜻을 넣었습니다. 애초에는 이랬죠.

 

수(繡) : 수 놓다. 겸(縑) : 비단.

- 날실과 씨실이 한 폭의 비단을 짜듯, 한 올 한 올 아름답게 직조될 너의 삶을 그리며.

 

그런데 막상, 호적에 올린 출생등록의 한자는 아래와 같습니다.

 

수(繡) : 수 놓다. 겸(兼) : 아우르다.

: 날실과 씨실이 아울러 한 폭의 비단을 짜듯, 한 올 한 올 의미 있게 직조될 너의 삶을 바라며.

 

처음 지었던 한자에서 ‘비단’의 의미를 ‘(함께) 아우름’으로 바꾸었습니다.

따지자면 수(繡)에 ‘비단’의 의미가 있으니 수겸[繡縑]은 의미상 중복됩니다. 날실과 씨실이 함께 아울러야  의미 있는 비단이 될 테니, 고친 수겸[繡兼]이 더 따뜻하며 정겹습니다. 그런데 이름의 의미를 왜 바꾸게 되었느냐, 사연은 이렇습니다.

 

수겸[繡縑]으로 이름을 짓고 나서, 이 이름이면 괜찮을까.

여기저기 검색해보니 아기의 출생 등록시 호적에 기재될 수 있는 한자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대법원에서 제정한 인명용 한자가 있다고 하더군요. 이 인명용 한자 외에는 출생등록 자체가 안 된다고 합니다. 인명용 한자라, 생소했으며 그래서 긴장했습니다. 왜냐하면 [수]는 좋은 의미의 한자가 꽤 있었으나, [겸]에 해당하는 한자는 그 숫자가 적었을 뿐 아니라 그 의미도 이상한 것들이 많았거든요. 예를 들어,

 

겸(兼) : 겸하다, 아우르다

겸(謙) : 겸손하다

겸(縑) : (합사) 비단 을 뺀 나머지 것들은

 

겸(鎌) : 낫

겸(慊) : 찐덥지(흐믓하지) 않다

겸(箝) : 재갈 먹이다

겸(鉗) : 칼을 씌우다

겸(歉) : 흉년들다

겸(鰜) : 넙치

겸(鼸) : 두더지 같은 것들이었으니까요.



 

웃기지 않겠습니까. 이를 수(繡)와 결합해 보면,

비단을 잘 못 짜면 네 비단을 (鎌)으로 벨 테다.

난 네가 짠 비단이 흐믓하지 않구나(慊).

칼을 써도(鉗) 비단을 짜야 한단다.

흉년 들어도(歉) 비단 짜면 살 수 있단다, 비단은 만능 열쇠다.

아무리 네가 두더지라도(鼸) 쥐가 아니니 안심해라, 게다가 비단을 열심히 짜면 사람이 될 수 있단다, 대신 마늘과 쑥은 내가 사줄게, 사랑하는 아가야….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 두더지 싫어, 난 두더지가 싫어, 난 사람이 좋아, 절규의 시각(실은 청각의 시각화, 공감각)적 형상화.

 

인명용 한자를 구해봤습니다.

같은 불안은 저를 재갈 먹이고, 이내 칼을 씌웠습니다.

저는 결코 찐덥(흐믓하)지 않았습니다.

네. 아래는 인명용 한자 있는 [겸]에 해당하는 한자들입니다.

 

겸(兼) : 겸하다, 아우르다

겸(謙) : 겸손하다

겸(鎌) : 낫

겸(慊) : 찐덥지(흐믓하지) 않다

겸(箝) : 재갈 먹이다

겸(鉗) : 칼을 씌우다



 

인명용 한자 제정의 애초 취지는 행정의 효율․편이성을 추구하며 벽자[흔히 쓰이지 않는 글자]의 오기․오독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서입니다. 인명용 한자 등록은 호적법시행규칙 제 37조에 의거, 행정 업무를 전산화하며 호적정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1991년부터 시행되었다는군요. 처음 예시했던 한자의 수가 적었던 관계로 94년, 98년, 00년, 01년, 03년, 05년, 07년의 한자 추가 지정을 통해 현재는 한자 교육용 기초한자 1,800자를 포함한, 총 5,151자가 지정돼 있습니다. 그런데 여과되지 않은 1,800자를 면면이 살펴 보니,

 

가(假) : 거짓

각(角) : 뿔

간(姦) : 간사하다

기초 교육용 한자가 들어 있으므로 당연히,

사(死) : 죽다

악(惡) : 악하다. 미워하다

견(犬) : 개

구(狗) : 개

서(鼠) : 쥐

심지어는

랑(狼) : 이리

마(魔) : 마귀

고(睾) : 불알, 고환

분(糞) : 똥



 

이런 글자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자어의 피휘는 고사하고, 문화적 금기어에 해당하는 글자들이 즐비해 있더군요.

생떼 같은 아기의 이름에 누가 이런 한자어를 넣을까요.

혹시 사마[死魔]라고 이름 지어 귀여운 내 아가, 장래 일본 아줌마들에게 인기 있을걸, 고맙지? 이런 뜻으로 이름을 짓겠습니까. 아니라면 마귀를 죽이는 주술사로 키우겠다는 아비의 주술적 바람을 넣겠습니까.

거짓말 하면 머리에 뿔 날 테니(가각[假角]) 바른 사람이 되어라,

하찮은 개똥(구분[狗糞])도 필요할 땐 없으니 소중히 간직해라,

쥐는 무조건 미워해라(오서[惡鼠]), 그러니 쥐상을 조심해라,

이리 고환이 정력에 좋을 지도 모르니(랑고[狼睾]) 미리부터 사재기를 해 두어라,

이런 깊은 뜻을 함축해 놓을까요. 설마 하니 아무리 장난기가 많은 부모라 해도 아기 이름 갖고 장난하지는 않겠지요.

 

말하자면 현재 대법원에서 고시한 인명용 한자 5,151자는 국민들의 실제 사용과는 거리가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인명용 한자 중 일부를 유명무실한 구색 맞추기 식으로 포진해 놓은 대법원의 고충도, 물론, 이해할 만합니다. 국민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초 교육용 한자 1,800자 중 작명에 사용할 특정 한자를 고르는 것이 주관적이며, 임의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지요.

그러나 대법원의 행정 편이를 위해 만들어진 법 시행 규칙[인명용 한자]이 시민과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름 선택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폐해도 한번쯤 생각해 볼 만 합니다. 법은 국민을 제한하는 데 있지 아니하고, 국민의 권리를 신장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 객쩍은 소리였습니다. 호힝호힝~

 
Posted by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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