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 『파우스트』(박석일 역, 하서, 1993) 읽다.

   

과시적 글 읽기의 말로

 

괴테의 『파우스트』는 애벌읽기다.

한창 세계문학에 맛을 들이던 더벅머리 시절. 헤밍웨이며 도스트예프스키, 헤르만 헤세를 탐닉했다. 돌이키면 미적 허영심에 불과했던 것이었겠지만 그 이름만으로도 왠지 달착지근하고 과시적인 고유 명사들. 적당히 현학적인 ‘골드문트’나 ‘나르치스’, 그리고 ‘라스콜리니코프’를 옹알이하듯 외웠다. 소설에 대한 애착은 한때 지나치다 싶을 정도였다. 밥알을 씹으며 물을 마시며 길을 걸으며 매를 맞으며 읽었다.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을 읽기 전까지는. 내 다시는 번역서 소설 따윈 읽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책이다. 지금 생각하면 영세 출판사에서 조잡하게 번역한 허섭쓰레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소경이 개천 나무라는 격이다. 막스 뮐러를 탓할 것이 아니라, 내 저급한 이해력이나 엉터리 번역을 원망하는 것이 옳았다.

 

새삼스레 더벅머리 시절을 더듬은 것은 순전히 내 ‘곤혹스러움’ 때문이다. 곤혹스럽다. 막스 뮐러와 닮았다. 예전보다 조금 더 머리가 굵어진 나는 일천한 이해력을 원망하기보다 자꾸만 번역의 문제를 탓하고 싶다. 내 독법의 관성은 완전히 패배했다. 수많은 성경적․고전적 비유, 그리고 서사를 무시하고 등장하는 인물의 입․퇴장.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무력했고, 열패감에 고개를 숙였다. 쟁그럽다.

지금의 나는 실패했으나 다음의 나는 성공하기를 바라며 하나, 괴테의 『파우스트』는 독일의 전설을 극화한 것. 둘, 비유와 상징은 매우 난해하므로 여러 해설을 정독한 후 감상하는 것도 방법. 셋, 하루에 독파하려 하지 말고 공부하듯 조금씩 나눠 읽어 호흡을 천천히. 넷, 활자가 크고 분권으로 된 출판사의 것을 준비.

 


Posted by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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