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민음사, 윤지관전승희 역, 2003) 읽다.

 

속물, 냉소, 오만, 편견, 그리고 화해

 

지각한 경험이나 판단에 대해 심리적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인간의 심리적 현상은 초두 효과와 마이너스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초두 효과란 취득한 선후의 정보 중에서 나중에 받은 정보보다 첫 번째 정보가 더 인상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개념이다. 이를테면 첫인상으로 그 사람의 지적 수준이나 취미성격 등을 판단하는 것이다. 마이너스 효과란 어떤 정보에 대해 긍정적부정적 기능이 혼재해 있을 때 부정적인 것에 방점을 찍는 것을 말한다. 인간은 이득보다는 손실을 기피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 정보가 가져다 줄 긍정적 효과보다는 그 정보로 인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부정적 영향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얘기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 베넷 양이 다아시 씨에 대한 반응 역시 위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부유한 가문의 다아시는 사분사분한 빙리와 달리 불친절하며, 오만하고, 베넷 가문에 대한 악평도 서슴지 않는다. 때문에 엘리자베스는 다아시를 혐오하게 된다. 엘리자베스는 이후 여러 경로를 통해 다아시에 관한 호의적 정보를 듣지만, 정작 그녀의 평가는 요지부동. 곧 다아시에 대한 엘리자베스의 편견, 그리고 그 편견에 대한 집념, 그것은 초두 효과로서 인간의 심리적 일관성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막대한 재산의 상속자인 다아시와의 결혼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이나 미래의 안정성보다는 불손하고 차가우며 무례한 다아시의 성격과 품성에 대한 부정적 요인에 더 큰 방점을 찍은 엘리자베스의 선택 역시 위 제시한 마이너스 효과에 적절한 사례가 될 것이다.

 

한편

18세기의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이 사교 시장이 나는 잘 이해가 안 되었는데, 소설을 읽고 나서 당시 영국의 상속 및 계급 제도에 대해 공부하고 나니 비로소 소설이 선명해진다. 당시의 풍속을 세밀히 묘사할 것, 그리고 그 안에서 보편성을 획득할 것. 이 두 가지 명제가 소설이 추구해야 할 본령이라고 했을 때, 제인 오스틴의 이 소설은 소설이 가져야 할 가치 명제에 가장 근접한 지점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다.

곳곳에 깨알같이 박힌 속물주의에 대한 냉소, 그 냉소를 뛰어넘는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사랑이 그려진다. 제목인 오만과 편견은 다아시의 오만이며, ‘엘리자베스의 편견이다. 다아시의 오만한 태도가 타인에 대한 신뢰와 자신에 대한 자부심으로 변모할 때, 엘리자베스의 편견이 대화를 통해 대상을 온전히 인식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둘의 사랑은 성취된다는 점에서 인간을 둘러싼 가장 보편적인 오해와 갈등의 측면을 작가는 날카롭게 포착했으며, 이에 대한 치유법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고른 문장

오만은, 내가 보기에는 가장 흔한 결함이야.” 메리가 자신의 깊은 사고력을 뽐내며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바로 미루어 볼 때, 오만이란 실제로 아주 일반적이라는 것, 인간 본성은 오만에 기울어지기 쉽다는 것, 실재건 상상이건 자신이 지닌 이런저런 자질에 대해 자만심을 품고 있지 않은 사람은 우리들 가운데 거의 없다는 것이 확실해. 허영과 오만은 종종 동의어로 쓰이긴 하지만 그 뜻이 달라. 허영심이 강하지 않더라도 오만할 수 있지. 오만은 우리 스스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더 관련이 있고, 허영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것과 더 관계되거든.” (31)


Posted by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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