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택, 『태아의 잠』(문학과 지성사, 1991) 읽다.
날것의 상상력, 이 시대의 우화
세계는 우화가 아닐까.
듣자하니 선승들은 면벽수행을 하며 선(禪)을 찾았다 하던데, 어쩌면 그 벽 속에 돈오점수의 비의가 숨겨져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싱크대 개수대에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건조한 공기에 말라가고 있는, 아직 설거지되지 않은 접시와 그릇들의 변죽, 하나의 초점으로 수렴되어질 그 날렵한 유선형의 포물선 각도는 어쩌면 상징이 아닐까. 은유가 아닐까.
김기택의 첫 시집은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1부는 동물을 제재로 한 시들이 엮였다.
과연 두고두고 읽을 법 했다.
집요하고 날렵하게 직조된 상상력의 덩어리들,
베어 물면 핏물이 뚝뚝 떨어질 듯한 날것들의 호흡과 움직임.
무엇보다 이 날것의 우화는 자연과 대척점에 있는 도시 문명 속 우리들의 그림자를 투사하기 때문에 그 떨림은 솔직하다.
간만에 떨리게 하는 시집을 읽는다.
고른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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