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나쁜 사마리아인들(이순희 역, 부키, 2007) 읽다.


참 나쁜 이중잣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성경에서 유래한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길에서 강도를 당한 한 남자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이야기. 보통 교회에서는 이를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 율법에 있지 않고, 선한 행실로 말미암는다는 의미로 인용한다.

장하준이 풍유한 나쁜 사마리아인은 당연히 선한 사마리아인의 반대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노상강도 당한 약자에게 친절과 봉사를 베풀었다면, 나쁜 사마리아인은 약탈당한 그 자의 나머지 옷가지마저 훔쳐가는 사악한 존재라는 것. 장하준이 지목한 나쁜 사마리아인은 세계은행, WTO, IMF 삼총사와 소위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경제 강대국들이다. 범위를 더 좁히자면 신자유주의그것이다.

 

 

신자유주의는 경제 영역에서의 자율 경쟁과 정부 간섭의 최소화를 모토로 삼는다는 점에서 고전 자유주의와 닮았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손의 애덤 스미스는 신자유주의에 아직도 살아 있다. 대한민국은 1997년 말, IMF 금융 위기를 맞으며 신자유주의의 강령이 유입됐다. 금융 시장의 개방과 노동 시장의 유연화가 그것이다.

사실 현재의 각하 치세, 일련의 사태는 신자유주의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가깝게는 2012년 현재 발효 중인 한미 FTA부터, 의혹에 의혹에 의혹이 더해 가는 지하철 9호선-매쿼리 자산 운용, 벌써 22번째 희생자가 나온 아, 쌍용차 해고자 문제까지. 이것들은 각각 자유 무역, 민영화, 노동 유연화 정책이라는 신자유주의가 낳은 사생아들이다.

 

궁금증. 경제 활동에서의 불필요한 규제 완화 및 자율 경쟁이 어째서 해로운 것일까. 이 물음에 답은 시장의 성격과 관련 있다.

시장은 현재의 상태를 관성화 하려는 경향이 짙다. 말하자면 선진국은 현재의 경제 환경을 고착화하는 것이 자국 경제에 이득이 되므로 현 시장의 체제를 보수유지하려 한다. 이들 선진국들은 신자유주의라는 이념으로, 나쁜 삼총사(세계은행, WTO, IMF : 이들 셋은 모두 선진국의 지배 체제 아래 있다)를 이용하여 시장의 현재 상태를 강화한다. 다시 말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들의 기득권 수호에 도움이 되리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들은 자국의 이득을 위해서신자유주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할 만큼 뻔뻔스럽지는 않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국가 간의 자유로운 경쟁과 정부의 간섭 철폐가 궁극적으로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즉 경제 발전을 위해선 보호 무역이 아니라 자유 무역 정책을 취하는 게 최선일까. 필자의 입을 빌려보자.

 

월풀(영국의 수상-인용자)1721년에 제정한 법률의 기본적인 목적은 외국의 경쟁으로부터 영국 제조업을 보호하고 수출을 장려하는 데 있었다. 그에 따라 수입된 외국 공산품에 대한 관세는 크게 올랐고, 제조업에 사용되는 원자재에 대한 관세는 크게 낮아지거나 아예 폐지되었으며, 공산품 수출은 수출 보조금을 비롯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장려되었다. 또 마지막에는 파렴치한 제조업자들이 해외 시장에서 영국산 상품의 명성에 먹칠하는 것을 막을 수 있도록 공산품들, 그중에서도 특히 작품 제품의 품질을 관리하기 위한 규제까지 도입되었다. (76- 밑줄 : 인용자)

1791년 해밀턴(미국 초대 재무 장관-인용자)은 미국 의회에 <제조업에 관한 보고>를 제출했다. 그는 <보고>를 통해 미국이 산업 발전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의 견해의 핵심은 미국과 같은 후진적인 나라는 외국의 경쟁으로부터 유치산업을 보호하고, 그 산업들이 자기 발로 설 수 있을 때까지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83- 밑줄 : 인용자)

어쨌거나 해밀턴의 <보고>가 제출된 이후 외국 공산품에 대한 평균 관세는 5% 정도에서 12.5% 남짓으로 올랐다. (85- 밑줄 : 인용자)

 

지금의 선진국들이 경제적 부흥기에 썼던 전략은 보호주의 정책이다. 영국이나 미국 등의 선진국은 자유 무역이 자국의 핵심 산업 발전에 위협이 될 것을 알고 보호주의 정책을 사용했다. 나쁜 사마리아인인 선진국들은 유치 산업을 장려발전하기 위한 정책으로 수입되는 상품에 대한 관세를 높이는 보호 관세를 사용하기도 했으며, 정부가 직접 유치 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외국인의 투자를 규제하기도 했다. 이러한 정책은 그들이 지금 외치는 신자유주의와 정확히 반대 지점에 위치한다. 즉 보호주의가 지금의 선진국을 지금의 선진국이게끔 했던 가장 유력한 동기인 것이다.

가령, 대한민국의 경우도 그렇다. 1960년대의 대한민국은 가발이나 생선 따위를 수출하는, 가난한 개발도상국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중화학공업을 국가 경쟁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포항제철(현 포스코-일본에게 전후 보상금으로 받은 자금, 즉 전쟁의 실질적 피해자인 국민-가령 위안부 할머니들-이 아니라 국가가 수령횡령한 돈으로 만들어짐)을 설립한다. 대한민국은 이를 국가적 규모의 보호 산업으로 기획개발보호육성했다. 만약 신자유주의가 1960년대의 대한민국에 강요되었다면, 대한민국은 가발 산업이 전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나라가 됐을 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삼성 휴대폰이나 현대 자동차는 백일몽일테다. 까닭은 자유 무역의 내재된 원리 때문이다. 자유 무역은 현재의 무역 교역에서 비교 우위에 있는 상품을 매매함으로써 이익을 창출하도록 강제되기 때문에 개발도상국은 저효율 및 생산성 낮은 산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상의 예에서 알 수 있듯,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경제 교역에 이중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 자신들은 자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 국가 보조금 지원이나 관세 인상을 통해 유치 산업을 육성했으나, 개발도상국들의 그것에는 선진화세계화라는 미명으로 자유무역을 강제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은 외환 위기를 맞은 199712월에 IMF와의 협정에 서명했을 때, 국내총샌산 대비 1% 수준으로 예산 흑자를 유지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중략) 부자 나라의 재무 장관이라면 어느 누구도 경제 침체기에 이자율을 높인다든가, 예산 흑자를 운용하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중략) 21세기 초에 미국 경제가 이른바 닷컴의 거품 경제 붕괴와 9.11 세계무역센터 폭파 사건의 여파로 휘청거리고 있을 때, 2003년과 2004년의 미국 예산 적자는 국내총생산의 4% 수준에 달하게 되었다. 다른 부자 나라들도 마찬가지였는데, 이 나라들으 경기가 좋지 않았던 1991년부터 1995년까지 국내총생산 대비 재정 적자 비율은 스웨덴 8%, 영국 5.6%, 네델란드 3.3%, 독일 3%였다. (240~242)

부자 나라는 경제 후퇴기에 들어서면 대개 통화 정책을 완화하고 예산 적자를 늘린다. 개발도상국에 같은 일이 발생하면,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실업이 세 배로 늘어나고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IMF를 통해 이자율을 불합리한 수준으로 올리고, 예산 균형을 유지하거나 아니면 거기서 더 나아가 예산 흑자를 이루라고 강요한다. (243)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이중 잣대는 국가의 예산에도 관여한다.

경제 불황기에 예산을 흑자로 강제한다는 것은 언뜻 보면 국가 재무의 건전성 증대를 위한 합리적 처방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가 흑자 또는 낮은 수준의 적자 수준으로 예산을 집행한다는 것은 그만큼 정부 지출의 감소를 의미한다. 경기 침체기에 정부 지출이 감소(혹은 이자율 증가)되면 그만큼 시중 통화량은 줄어들고, 경기 침체는 가속화된다. 경기가 침체되면 기업은 부실화되고, 실업자는 는다. 즉 경제 불황기에 흑자 예산을 강요하는 것은 단기적인 처방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국가 전체 경제 활성화를 스스로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미봉책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제 후퇴기에 국가는 이자율을 낮추고, 통화량을 늘리며, 적자 예산을 집행해야만 경제의 그래프는 상승기 방향으로 변곡점을 옮길 수 있다. 하지만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경제 활성화의 역방향으로 개발도상국의 국가 예산을 강제한다. 이는 개발도상국의 경제 발전을 방해하는 사다리 걷어차기신공 중 하나에 불과하다.

 

꽤 많은 실례와 적절한 비유로 속이 꽉 찬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라는 물음표를 그리게 된다. 필자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기를 희망한다며 글을 맺었으나,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그림자를 언뜻 본 나조차도 필자의 바람이 너무 순진무구하며 요원한 것임을 잘 안다. 왜냐하면 나쁜 사마리아인의 행위가 무목적의 결과인가, 아니면 계획적 범법인가에 대한 답을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답은 간....

Posted by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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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risewise.tistory.com BlogIcon r!sew!se 2012.07.12 11: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용뿐만 아니라 제목도 참 좋습니다. '나쁜 이중잣대!' 글 잘 읽었습니다.

    • Favicon of https://garimtos.tistory.com BlogIcon 가림토.. 2012.07.13 18: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참 나쁜 넘들이죠.
      그런 면에서 우린 불나방인가요? 알고도 스스로 불로 뛰어들어 산화하는, 우린, 뭐죠?
      좋은 주말 보내세요. ^^

  2. 2012.07.17 16: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