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C. 윌리엄스, 진화의 미스테리(이명희 역, 두산동아, 1997) 읽다.

 

 불합리한 결과물, 진화의 선택.

 


고등학교 때 배웠던 진화론의 증거 시조새와 말이 교과서에서 사라질지 모른다고 한다(<시사in> 247호 특집 기사 참조). 교진추(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회)의 청원 때문이다. 교진추의 청원 내용은 시조새와 말이 진화의 근거라는 주장은 진화론자 사이에서도 비판받는 가설이므로 이를 교과서에 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교진추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창조과학회와 직간접으로 관계 있다(창조과학회는 소망온누리교회 등 대형 교회의 지원을 받는다). 이는 지적인 존재가 세계를 설계했다는 지적설계론과 궤를 같이 하며 이들의 주장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진화론따위를 과학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의 궁극적 목표는 과학 영역에서 창조론이 승리하도록 하는 것.

진화론에 여러 모순과 문제점이 있는 것은 사실일 테지만, 그렇다고 추측이나 신념을 과학의 차원으로 치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과학은 검증 가능한 영역을 대상으로 한다. 반증의 가능성이 없는 것은 과학적 진술일 수 없다. 신앙과 믿음은 검증도 반증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신앙은 연역적 사고로 세계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세계의 질서를 통과하는 가장 큰 전제 하나님이 세상을 만들었다는 전제를 참이라고 가정하고 세계를 제단하고 판단한다. 그러나 이 전제는 검증할 수 없는 진술이므로 이 연역적 명제 역시 과학의 범주에 귀속할 수 없다. 한편 과학은 귀납적 방법으로 세계를 증명한다. 경험과 관찰 가능한 전제들의 합으로 가설의 타당함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의 이론은 어느 때고 좀더 타당한 이론에게 그 영광의 자리를 내 줄 수 있다. 토마스 쿤은 이를 패러다임의 변화라 명명했다.

 

책의 저자인 조지 윌리엄스의 말을 원용하자.

만약 인간이 어떤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피조물이라면, 즉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완벽한 형태로 주조된 것이라면, 인간 신체 구조의 모순성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인간의 기도[호흡 기관]와 식도[소화 기관]는 하나로 교차되는 구조다. 즉 호흡의 기능을 하는 코와 입, 그리고 음식물을 섭취하는 입의 통로가 목구멍에서 하나로 만난다. 이런 구조적 모순 때문에 십만 명당 한 명 꼴로 음식물이 목에 걸려 질식사 한다. 곤충이나 연체 동물 같은 무척추동물에게 없는 이런 불합리한 구조를 만든 것도 과연 하나님의 섭리라고 할 수 있을까.

남자 인간의 고환도 마찬가지다. 남성의 고환은 신장과 방광을 잇는 수뇨관에 걸쳐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고환의 유일한 목적은 정자의 생성과 배출이다. 남성이 성교 후 사정을 할 때 정자는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여성의 자궁으로 들어가 난자와 결합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고환의 위치는 남성 성기와 가까운 가장 바로 아래 쪽에 있다. 하지만 고환과 성기를 잇는 관은 수뇨관에 걸쳐 있다. 굉장히 비합리적인 소모다.

위에서 언급한 기도와 식도의 교차 구조나 고환의 위치는 불합리한 진화의 결과물인 셈이다. 말하자면 인간은 최적의 상태, 그 자체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순간순간의 최선(最善)의 선택의 합은 최고(最高)의 결과값과 같지 않다. 불가피한 선택의 결과, 그것이 현재 우리가 보는 진화의 단면이다.

 

- 열쇠 구멍. 여자. . 사유.

 

한편, 현대진화론은 다윈의 초기 진화론(1858)과 차이가 있다. 라마르크의 획득형질 유전(1809)은 이미 예전에 바이스만에 의해 혁파(1883)됐다. 라마르크의 주장은 기능이 기관을 만든다는 것으로 생물체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 기관을 만들고, 이 기관(획득형질)은 유전된다는 것이다. 그는 기린의 목을 예로 든다. 이것이 이른바 용불용설이다. 하지만 위대한 바이스만 옹께서 실험용 생쥐의 꼬리 자르기 시전을 몸소 행하심으로 획득형질은 유전될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바이스만은 이를 토대로 성세포 속의 유전자만이 다음 세대의 형성에 기여한다는 신다윈주의를 제창했다. 현대진화론은 신다윈주의를 기반으로 한다.

 

현대 전통 진화이론은 일상에서 눈에 보이는 가장 큰 자연선택의 효과는 표현형을 안정시키고 현상을 유지시키는 것이다. 진화라는 거대한 파노라마는 극소수의 색다른 개체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한편 다윈의 자연선택개념 역시 약간의 변이를 갖는다. 다윈은 자연선택을 변이의 추동력으로써, 종은 변이를 통해 자연에 선택된다(적자생존)는 개념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현대진화론은 여기에 최적화의 개념을 추가했으며, 현대 진화론에서의 자연선택은 최적화로서의 기작(즉 돌연변이를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안정화하는 것, 리차드 도킨스는 이를 ESS로 표현했다)을 말한다. 즉 진화론은 진화 과정에 있다.

 

이로서 진화론 책을 세 권 읽는 셈인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번역서만 봐서 그런지 잘 읽히지도 않고, 특히 분자생물학 쪽의 개념과 그 역학 관계는 어렵다. 우리나라 책으로 진화론에 대해 쉽게 설명해준 책이 있으면 하나 읽고 싶다.

성선택과 인간의 짝짓기 과정은 재밌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교제와 성 모두 포함)는 확실히 유전자의 존속과 번영이라는 기준으로 보는 게 옳은 것 같다.

페일리의 시계, 시계공에 관한 비유는 생각거리를 준다. 왜 리차드 도킨스가 눈 먼 시계공을 썼는지 알 것 같다.


Posted by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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