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요한, 하나님께로 가는 길(생명의 말씀, 1997) 읽다.

  

성경의 알레고리적 해석을 경계하며


 

변태오징어가 숙제를 주고 갔다.

내가 처음 교회에 간 것은 국민학교 5학년 때 여름이다. 교회 입문의 계기가 대개 그러하듯 나 역시 여름 성경학교 출신이다. <타이거 마스크>였다. 교회에 오면 보여 준다는 그 날렵한 유혹. 기타 치는 아저씨 따라 와와, 깔깔, 가르릉 하며 동네 녀석들과 교회에 갔다(나중에 알고 보니 그 기타 치는 아저씨는 그 교회 전도사님이셨다). 당도 낮은 사과를 씹으며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철 들며 모든 일이 시큰둥해지는 시기까지 대략 5년 정도 교회를 다녔다. 삶의 비의를 모두 깨달은 듯한 착각을 했던 그 격동의 시기를 견디고 보니 이제 나는 소위 무신론자다.

개독에 대해 하나. 요새 교회가 워낙 인기가 없다 보니 개독교’, ‘개독인이라 욕을 많이 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기독교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상위 개념이다. 그들이 비난하는 것은 대부분 개신교일 테니 가톨릭의 입장에선 부아가 치밀 수도 있는 일이다. 애먼 사람을 화나게 해선 곤란하다. 가톨릭은 빼줘라. 신부님들은 세금내신다. 제안한다. 개신교는 원래 ()’가 있으므로 여기에 접두사 ()’를 붙여 개개신교라고 하는 것은 우습다. ‘개신개교요것도 이상하고. 그러니 그냥 개신교로 통일하자. 비난과 비판은 구분해야 한다.

 

오그라드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은 축자영감설(성경은 하나님의 영을 기록한 것)을 기저로 한다. 이른바 성경에는 단 한 점의 오류도 없다는 성경무오설이 되겠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나오는 모든 진술에는 논리적 모순이 있을 수 없고, 역사적과학적 사실과는 부합한다는 것이다(사실 문자 그대로의 성경은 오류가 많다. 구글신께 조금 자비를 구하면 성경에 나타난 모순된 수치와 언행들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사복음서의 팩트 상 오류는 심각하다. 그래서 성경무오설은 현재 대중적 지지를 잃고 있다고 보는 게 옳을 것 같다). 그 실례로 노아의 방주, 바벨탑,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의 고난과 재건 과정을 든다. 성경에 기록된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산에서 발견되었으므로 성경을 단순히 신화나 상징으로 봐서는 곤란하다는 말씀이시다. 바벨탑이나 이스라엘도 마찬가지.

필자는 말한다. 성경의 기록이 확증 가능한 객관적 역사의 기록이므로 예언서의 기록 역시 곧 증명될 것은 자명한 일이라고. 이스라엘을 둘러싼 전쟁이 예정되어 있으며, 들림(휴거)가 일어날 것이다. 마곡(러시아)의 공습과 열 개의 뿔이 달린 용(EU)이 나타나 이스라엘을 위협할 것이다. ()그리스도(세계연방 정부의 총통으로 추정)가 등장할 것이며, 인간들은 그를 숭배경배하며 3년 반의 불완전한 거짓 평화를 맛보게 되나 결국 심판의 날에 천국의 계단에서 미끄러지게 될 거라는 말씀. 여기에 짐승의 수이자 사람의 수인 666으로 마무리. 666의 단짝인 바코드와 컴퓨터는 별사탕이다.

요약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참된 진리이기 이전에 사실이며 과학이므로 심판의 날에 구원받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는 것.

 


- 구양 성서, 예전엔 라틴어 이외의 문자로는 성경을 기록할 수 없었단다. 그러므로 지성소에 접근하지 못하는 양민들처럼 일반인은 성경을 읽지도 못했을 터.

 

나는 성경을 신화 정도로 이해하는 편이라 필자의 단정적 표현에 대해선 물음표를 그린다. 성경은 인간이 쓴 글이므로 당연히 오류가 있을 수 있고, 오히려 성경에 나온 이야기는 사실로서의 확증이 아니라 메타포를 통해 울림을 준다고 생각한다. 종교적 도그마에 갇힌 관견(管見), 그 성은 견고할지 모르나 고립된다. 사실과 신화는 구분해야 한다.

 

가령, 노아가 600(맞나?) 때 만들었다는 방주의 형체를 터키에서 발견했으므로 성경은 사실(fact)이라고 필자는 말한다. 길이가 137m, 너비 45m, 높이 22m의 방주가 얼음 속에서 발견되었고, 이것으로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신화가 아니라 역사 속으로 편입돼야 한다는 주장은 좀 황당무계하다. 발견된 방주는 딜레마다. 방주를 신화적 상징이 아닌, 역사적 사건으로 끌어내렸으므로 상식적으로 묻자.

지구 상에 있는 모든 금수(날짐승, 길짐승을 제외한 곤충은 자체적으로 살았다 가정하자) 고작 저 정도 크기의 방주에 태우는 게 가능한가. 노아 시대 이후 현재까지 멸종된 동물군이 하나도 없다고 가정한다 하더라도 그 엄청난 수의 암수 한쌍 씩을 포획수집하는 과정, 7일간 배에 태우는 과정, 1년 여의 사육이 가능한가(노아 가족은 고작 8명으로 이뤄졌고, 게다가 당시 노아의 나이는 무려 600세였다).

필자는 진화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지금 우리가 보는 모든 생물종은 당시 노아에 의해 구출된 생물이다. 방주에 들어간 동물들의 새끼로만 그 수를 구성한다 해도, 그 어마어마한 양의 동물을 노아 가족이 찾고, 방주에 넣고, 돌봤으리라고 나는 믿을 수 없다. 저 방주엔 코끼리, 기린, 진돗개, 삽살개, 하이에나, , 북극곰, 사자, 호랑이, 요크셔테리어, 앵무새, 자칼, 물소, 원앙새, 수리부엉이, , 치타, 하마, 미어캣, 불독, 송골매, 비둘기, 포인터, 다리 짧은 바셋 하운드, 고슴도치, 고양이, 시라소니, 돼지, 멧돼지, , 제주도 똥돼지, 사슴, 황구, 백구, 영양, 사막여우, 긴팔원숭이, 캥거루가 모두 탔고, 그 동물들을 먹이기 위한 음식을 채웠으며, 개미핥기를 이한 음식 개미’ 1년치, 사자가 좋아하는 톰슨 가젤’ 1년 치, 소를 먹이기 위한 1년 치 건초와 습한 곳에선 곧 죽고 마는 토끼를 위해 마련된 건조한 특실방과 무엇과 무엇과 무엇과 무엇이 있었어야 하는데, 저 정도의 방주로 그 모든 일이 가능하리라는 설명, 그것은 설명이 아니라 신앙이다.

이는 상식적 인간이 설명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다. 믿음의 영역을 사실의 영역으로 환원한 오류다. 신화는 비유며 상징이다. 사실은 관찰과 경험이다. 반증 가능성을 필요하지 않는 신화와 달리 사실의 영역은 실험적 오류가 있어선 안 된다. 사실과 신화는 구분해야 한다. 그래서 말하는 것이다. 신화는 신화에 남아 있으라.

그보다는 차라리 범위를 재획정한 후 논의를 잇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상술하자면 구약의 여호와는 유대인의 신이었으므로 노아의 홍수에서 말하는 대범람의 지역적 범위를 세계가 아닌,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하는 중동 지역으로 제한하는 것이 일견 타당하다. 이것을 인정한다면 방주의 크기 문제나 실현 가능성에 관한 비판의 예공도 피할 수 있을 것이며, 구약 성서에서 한결같이 강조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란 설정에도 적확하다.내가 이해한 구약의 여호와는 코스모폴리탄으로서의 창조자 이전의 중동을 지역적 기반으로 하는 부족신이다.

 


내가 만지고 있는 이 물체는 대체 무엇인가.

 

논의를 확장해 보자.

성경의 문자적 해석을 나는 반대한다. 하나님이 있다고 믿든, 안 믿든 그것은 자유다. 하지만 성경에 기록된 그 모든 언어들을 축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 성경무오설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단 하나의 오류도 없고, 그 기록은 항구적이며 보편적인 생명성을 갖는다고 본다. 하지만 기록 당시의 시대문화관습사회환경적 여건을 무시한 이 해석을 오늘에 적용한다면, 글쎄, 재밌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예를 들어, 레위기(맞나?)에서 언급한 계명들은 어떤가. 월경에 동침하는 남녀는 모두 죽여야 하며, 동성애를 하는 인간들을 모두 죽여야 한다는 그 계명은 과연 구약에만 적용되는 것인가. 딸을 낳은 여자는 부정하므로 아들을 낳았을 때보다 더 꺼려야 한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페미니스트는 뭐라고 말할지 궁금하다. 우상을 파괴해야 한다며 절에 침입하여 불상을 훼손하는 자를 과연 하나님은 기꺼이 여기실지 궁금하다. 생리중인 여성과의 잠자리가 영적 타락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선천적 요인으로 규정되는) 동성애자는 저주받은 사생아인가. 간통 후 낳은 아이는 연좌제다. 무려 10세대 동안. 그 아이는 무슨 잘못을 했는가. 간통한 부모를 두었을 뿐이나, 그들에게 예비된 것은 지옥의 유황불밖에 없다. 억울할 일이다. 그리고 다행이다. 내가 이 무서운 신을 믿지 않아서.

유일신을 믿는 종교는 필연적으로 배타적이다. 다른 종교와의 화합과 소통을 하는 목사는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나님 안에서만 가족인 크리스찬은 타종교와 호혜적 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것인가. 모세의 십계명은 현재 진행형의 규율이고, 동성애는 과거 한정형의 규율인가. 예수는 율법을 깨기 위해서가 아니라 완성하기 위해 왔다고 한다. 그 율법은 무엇인가. ‘여자의 후손으로 친히 여호와가 육화해 온다는 그 예정의 실현인가. 구약의 율법을 완성형의 화석이 아닌, 진행형의 미래로 만들기 위해서인가.

나는 잘 모르겠다. 이슬람이든, 유대교든,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모두 하나의 뿌리로부터 나왔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자기들의 신에게만 영생과 진리가 있다고 믿는다. 개신교의 그 수많은 종파들. 서로 이단이라 싸우고 논쟁하고,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극단적 독선은 대체 무엇으로부터 파생되었나. 나 이외의 신을 섬기지 말라는, 여호와를 담지는 않았나.

 


화성 생명체의 근거. 위성에서 찍은 인면상. 믿으면 보이나니.

 

필자는 모두에서 성경이 예언은 사사로이 풀어서는 안된다(27)’고 말했다. 전적으로 맞는 말씀이다. 다만 이 잠언은 필자에게 먼저 적용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책의 전반에 걸친 화려한 인용술에 깜짝 놀란다. 그 수고로움에 놀랐고, 그 지식의 방대함에 놀랐고, 그 도식적 알레고리에 놀랐다. 이런 식의 인용은 비약이 너무 많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회복에 대한 예언 편만 해도 그렇다.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 저 구름 같이, 비둘기가 그 보금자리로 날아오는 것 같이 날아오는 자들이 누구뇨.”(이사야 60:4,8)을 필자는 아래와 같이 해석한다. “1948년에 740대의 비행기가 이스라엘 자손을 가득 싣고 그들의 땅으로 날아 들어 왔다. 지금부터 2,700년 전에는 비행기라는 어휘가 없었기 때문에, 비둘기가 그 보금자리로 날아오는 것 같이 날아올 것이라는 표현을 썼던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예언인가!(241)”. 나는 이 해석에 경외심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낀다. 비행기가 날아오는 것 같이,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날틀(비행기)를 타고 올 것이라는 이 도상적 해석에 놀랐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럼 이것은 어떤가. “어서 너는 오너라 비둘기와 꽃다발과 푸른 빛 깃발을 날리며 너는 오너라”(박두진, 어서 너는 오너라)에서 너가 오기를 바라는 화자의 간절함 마음은 너가 꽃다발(영광의 상징)’을 들고 푸른 빛 깃발(승리의 비유)’을 날리며 비둘기’(비행기, 최신 날틀, 성공과 승리의 단 열매)’를 타고 오라는 상징일까. 그보다는 차라리 귀소본능을 가진 비둘기처럼 막막한 광야를 떠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귀소점을 찾아 회귀하기를 바라는 의미가 훨씬 상징적 해석에 가깝지 않을까.

 

- 유토피아?

 

누구나 <이솝 우화>의 두 가지 이야기를 섞어서 하나의 알레고리를 만들 수도 있다. 가령, <해님과 바람>의 위너 해님. 포도를 먹지 못하자 저 포도는 신 것일 거야라고 <자위하는 늑대(여우?) 이야기>를 연결해 볼까. “세상에 두 개의 신이 있었으니 하나는 풍신(風神)이오, 다른 하나는 태양(太陽)신이다. 풍신은 나그네를 바람으로 위협한다. 여기서 길을 걷는 나그네는 삶의 여정을 걷는 인간을 비유한다. 두려움과 공포를 상징하는 풍신은 결국 인간의 마음을 열 수 없었다. 이때 사랑과 포용의 신 태양신이 등장한다. 그는 스스로를 더욱 뜨겁게 희생하여 나그네와의 교감을 이끈다. 한편 늑대는 포도를 먹고 싶어 한다. 늑대의 원형 상징은 교활함과 사악함이다. 늑대는 사탄을 비유한다. 늑대가 먹고 싶은 포도는 태양신이 만든, 나그네를 위한 단 열매요, 생명의 기운이다. 나그네의 긴 여정은 결국 여행의 보답을 의미하는 포도를 통해 완성된다. 그것은 영생의 열매다. 늑대가 육식동물인데 어찌 포도를 먹겠느냐고 반문하지 마라. 스포츠 ○○ 신문(1997.6.9.일자)에 육식 동물도 극단적 허기의 상황에서 열매의 과실을 먹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솝의 우화는 위대한 말씀이므로 과학이 발전할수록 그 정밀함은 더욱 단련될 것이요, 그 선후는 더욱 명징해 질 것이다. 아무튼 늑대는 사탄이고, 이 녀석은 인간의 과실을 훔치려 한다. 스스로를 인간으로 위장해 우리들 곁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조심해야 한다. 자비를.” 급조한 알레고리라 엉성하고 조악하나, 일견 그럴 듯 하지 않는가. 만약 이솝 우화가 성경의 1/10 정도의 분량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나는 세상의 처음과 끝을 완벽하게 완성할 수 있다. 시간만 남는다면.

 

임의적이며 자의적인 인용의 방식을 경계한다. 필요할 때는 신약의 어느 부분에서, 또는 구약의 어느 부분에서 발췌해 성경을 도식화하는 알레고리를 경계한다. 선민(選民)인 이스라엘의 부족신이었던 여호와는 예수 탄생 이후로 세계의 창조주가 되었다. 구약의 여호와는 이스라엘만의 신이었다. 그러므로 다른 종족, 다른 신(우상)과는 적대적일 수밖에 없다. 분노와 질투와 삐침의 신이다. 그랬던 여호와는 예수 탄생 이후 사랑의 하나님으로 바뀌었다. 어느 쪽이든 코스프레로 보인다. 정리하자. 구약은 이스라엘(민족만)을 대상으로 한다. 신약은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다. 자의적 인용을 반대한다. 적용에는 기준이 있어야 하며 그 기준은 이중적이어서는 안 된다.

 

비교 1.

영희에게 데이트 거절당한 철수는 화가 나서 볼펜을 하늘로 던졌다. 길을 걷던 영수가 떨어지는 볼펜을 맞고 죽었다. 그러므로 철수는 영수를 죽이기 위해 볼펜을 던졌다. 또는 볼펜은 살인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 인과의 오류(의도 확대의 오류)

공산주의는 인간의 본성을 무시하는 이론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만든 이론이다.

진화론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모르도록 해서 인간성을 말살시키기 죄악의 구렁텅이이에 빠뜨렸다가 지옥으로 끌고 가려는 마귀의 시나리오다.

 

비교 2.

이 약은 감기에 매우 효용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약 설명서에 그렇게 써 있습니다. - 순환논증의 오류

하나님이 계신가? 성경은 과연 진실인가? 그 답은 성경에 있다.

 

비교 3.

외계인이 없다는 주장은 틀렸습니다. 왜냐하면 외계인이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으니까요. - 무지(無知)에의 호소.

생명은 자연발생이 아닌 생명으로부터 나오고 그렇다고 소진화가 곧 대진화를 설명하는 것도 아니다. 결론은 대진화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진화론의 존립근거는 도대체 무엇인가? 진화론이 거짓이면 남은 것은 창조밖에 없다.

 



Posted by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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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k.Lim 2017.12.26 1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닭이 먼저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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