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한, 수필로 배우는 글읽기(문학과 지성사, 2001) 읽다.


올바로 읽는 방법이 필요해

 

언어가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임을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다.

인간은 언어가 노출하고 분절한 세계를 읽고 체험하고 그래서 산다. 언어는 무의미하게 나열된 세계를 변별하며 구분 지으며 구획한다. 언어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결국 대상과 대상의 차이점을 잘 구별한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또한 특별한 언어 능력이란 (언어에 의해 경계 지워진) 세계를 잘 이해한다는 뜻과도 같다. 언어는 삶이라는 행위의 파수꾼이며 탐사대다.

 

언어는 이처럼 중요하지만 우리가 언어 능력을 배양하는 데 얼마나 공을 들였나 생각하면, 부끄러워진다. 잘못 배운 독해의 방법은 세계를 오독하게 한다. 제대로 읽는 방법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해본 적이 드물다. 또한 반성한다. 많은 독서를 통해 읽는 방법을 깨우치는 것도 좋지만, 유한한 삶과 관성화된 귀차니즘을 생각하면 올바로 읽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더 시급할 지도 모른다. 읽는 힘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읽었다. 수필로 배우는 글읽기.

 

수필(隨筆)은 문자 그대로 붓 가는 대로 쓴 글이므로 읽기 쉬운 글이다. 비유와 함축을 최소화했으므로 주제가 뚜렷하며 명료하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수필을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

이 책엔 엄선된 총 26편의 수필이 엮여 있다. 수록된 수필은 교육용으로 출판된 책이므로 교과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설해목, 호민론, 슬견설, 나무등을 읽어 내려가면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고, 여드름꽃이 피었던 고등학생으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도 든다. 쉬엄쉬엄 재밌게 읽지만, 텍스트의 끝에는 시험이라는 통과의례가 있다. 호락호락 풀리지 않는 연습 문제를 푸느라 고심도 한다. 답지를 맞춰보며 은근 어깨를 으쓱거리기도 한다. 재밌다.

 

텍스트는 단어와 구절, 문장, 그리고 글로 건축된 것이다.

여기서 건축되었다는 표현의 뜻은 텍스트를 설계하고 시공한 주체가 있다는 의미이며, 설계 및 시공의 과정을 거쳤다는 뜻은 그 건축물이 기단하층부바닥지붕테라스정원대문 등의 위계적 세부 단위로서 조직되었다는 의미이다. 즉 텍스트는 계층화, 서열화된 구성 단위들의 통일된 조직체라는 말씀.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한 편의 글을 읽는다는 행위는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단락과 단락 사이의 위계적 질서와 구조를 이해해야 하며,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편의 글읽기는 완성된다는 얘기.

 

한마디로

..하며 읽자!

Posted by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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