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종횡무진 한국경제(오마이북, 2012) 읽다.


한국 경제의 종적횡적 분석

 

먹고 사는 것보다 숭고한 것은 없다.

먹고 사는 것 곧 생존의 문제는 문화와 종교, 그리고 민족을 초월한다. 환언하자면 이 문제의 해법 앞에서 이념 따위가 장벽이나 구속이어서는 안 된다. 인간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정치적경제적사회적 안정망을 구축하는 것, 그것이 새 시대의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좌와 우의 이념은 그 이념의 경직성으로부터 재편되어야 한다. 그들만의 당쟁, 그 정치적 당쟁과 집단적 도그마로부터 탈각해야 한다. 열린 자세로 현재의 환부를, 아프지만, 들춰봐야 한다. 치료 해야 한다. 아니, 치유 이전에 소독을 해야 한다. 직시해야 한다. 알아야 한다.

 

소액주주운동으로 널리 알려진 장하성, 그 뒤를 잇는 김상조 교수의 첫 번째 대중 경제서다. 제목의 종횡무진이란 한국경제를 거침없이 파헤친다는 의미 외에, 한국 경제를 종직횡적으로 분석한다는 함의가 있다.

1장부터 4장까지의 1부에서는 한국 경제를 종적수직적통시적으로 고찰한다. 필자에 의하면 중세 이후 400년의 진화적 발전 단계를 거친 서구 경제사가 한국에서는 50년 만에 압축적으로 비약성장했다. 즉 서구에서 중상주의­-고전적 자유주의-­포드주의­-신자유주의로의 발전 경로가 한국에서는 중상주의(박정희전두환)-신자유주의(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로 선택적 이식되었다. 이는 곧 한국 경제사에서 고전적 자유주의-포드주의의 실종을 의미한다. 한국 경제가 잃어버린 고전적 자유주의는 절차적 민주주의(법치주의), 포드주의는 노동자 계급의 연대 및 노동자-자본가 계급간의 타협 메커니즘을 말한다.

5장부터 8장까지의 2부는 재벌-기업 간 양극화-금융-노동으로 구성되는 한국 경제의 횡적구조적양태적 분석이다. 2부는 재벌 개혁으로 요약할 수 있겠는데, 한국 경제가 재벌에 대한 경제적 의존성이 심하다는 것, 그리고 이른바 갑과 을로 대변되는 중소기업과의 하도급 거래에서 을사(乙死) 조약-을은 반드시 죽는다등의 병폐를 짚으며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을 주장한다. 현재의 법 제도로는 재벌에 대한 외부 통제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우므로 새로운 법제도의 완비를 통해 재벌의 소유권 및 지네발 공룡으로 변종 발전한 한국의 재벌에 대한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것.

 

이에 대해 장하준은 김상조 및 이른바 좌파 개혁론자들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한 적이 있었는데,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재벌의 소유권을 해체해서 어떻게 하겠느냐, 이다. 통쾌할 순 있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한지의 여부는 떠나, 삼성과 같은 거대 재벌이 분산해체되면 필연적으로 삼성은 외국인 자본에 의해 소유권이 침식될 텐데, 이것이 과연 한국에 바람직할까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장하준 교수는 재벌의 경영권을 인정해 주되, 재벌이 바람직한 궤도에서의 경영을 하게끔 빅딜(사회 대타협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어떻게 타협을 할까에 대한 구체적 방법 제시가 없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지만, 장하준의 시각은 독특하며 일견 합리적이다.

한편, 김상조는 이 책에서 현실론을 들었다. 재벌이 타협을 받아들일 만큼 순진할까. 그런 선의를 가진 재벌들이라면 작금의 재벌 개혁론이 나오기 진작부터 재벌은 모종의 액션이라도 했어야 옳다는 것. 사실 장하준의 주장은 합리적타협적으로 보이나 실현 가능성이나 구체적 방법론에서 김상조의 손을 들어 주고 싶다. 절충이나 수정주의로 비난받을 수도 있겠으나,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강력한 법제도의 완비를 통해 재벌에 대한 외부에서의 압력을, 그래서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재벌이 천박한 천민자본주의로부터 환골탈태해 노블리스 오블리주로서의 책무를 다하는 건강한 기업이 되길 희망한다.

 

오랜 시간 책을 읽는다.

대중서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어렵다.

나로선 생소한 경제 용어에 대한 뜻풀이를 가볍게 스킵하는 친절하지 않은 필자의 책을 읽으니, 필자의 해박함을 잘 알겠다. 하지만 그 해박함이 서술로서 용해되지 않았다. 그러니 어렵고, 읽는 내내 읽기가 고역이었다. 역설적으로, 필자가 가장 자신 없다고 말한 8장의 노동 문제가 가장 명확하게 이해되었다는 점에서 이 책의 문제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예견하긴 했었다. 박정희의 맨얼굴(유종일 외)에 실린 필자의 한 꼭지 글은, 나로선 거의 논문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Posted by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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