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갑,『그 섬에 내가 있었네』(Human & Books, 2004) 읽다.

때로 시보다 더 시다운 삶을 사는 작가가 있다. 시인 천상병이나 소설가 이외수 같은 작가들이 그렇다. 나는 천상병의 시에서 별 감흥을 느끼진 못하고, 이외수의 소설 역시『벽오금학도』이후의 글은 평가가 애매하다. 하지만 그네들의 삶, 그것에 조명을 비춘다면 아, 이건 시잖아. 탄성이 절로 나온다 - 굳이 비교하자면 천상병이 좀더 시의 형태와 비슷하다, 이외수는 TV 출연 횟수가 잦아지면서 흥미가 떨어졌다.

이 책은 사진가 김영갑의 수기 및 사진집이다. 양장본으로 되어 있다. 사진이 대략 50점 정도 실려 있고, 짧은 수기는 20개 약간 넘는다. 나는 사진에 대해 문외한이니 느낄 수 있는 감동의 진폭은 제한될 것이며, 수기는 짜임새 있지 않아 눈을 가늘게 뜨고 읽으면 떫은 감 맛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며 쌉싸래한 취기와 알싸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던 건 김영갑의 삶, 그의 예술혼이라 말할 수 있는 고독과 외로움의 무게 때문이 아니었을까. 루게릭 병 확진. 자신의 영혼만큼 사랑했던 카메라를 들 수 없다는 자괴감. 차츰차츰 소멸되는 육신을 바라보며 일생을 반추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김영갑 : 1957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이래 20여 년 동안 고향땅을 밟지 못했다. 서울에 주소지를 두고 1982년부터 제주도를 오르내리며 사진 작업을 하던 중 그곳에 매혹되어 1985년 아예 섬에 정착했다. 바닷가와 중산간, 한라산과 마라도 등 섬 곳곳 그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또 노인과 해녀, 오름과 바다, 들판과 구름, 억새 등 그가 사진으로 찍지 않은 것은 제주도에 없는 것이다. 밥 먹을 돈을 아껴 필름을 사고 배가 고프면 들판의 당근이나 고구마로 허기를 달랬다. 섬의 ‘외로움과 평화’를 찍는 사진 작업은 수행이라 할 만큼 영혼과 열정을 모두 바친 것이었다.

창고에 쌓여 곰팡이 꽃을 피우는 사진들을 위한 갤러리를 마련하려고 버려진 초등학교를 구하여 초석을 다질 무렵부터 사진을 찍을 때면 셔터를 눌러야 할 손이 떨리기 시작하고 이유 없이 허리에 통증이 왔다. 나중에는 카메라를 들지도, 제대로 걷지도 먹지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루게릭 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3년을 넘기기 힘들 거라고 했다. 일주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누웠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점점 퇴화하는 근육을 놀리지 않으려고 손수 몸을 움직여 사진 갤러리 만들기에 열중했다. 이렇게 하여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이 2002년 여름에 문을 열었다.

투병 생활을 한 지 6년 만인 2005년 5월 29일, 김영갑은 그가 손수 만든 두모악 갤러리에서 고이 잠들었고, 그의 뼈는 두모악 갤러리 마당에 뿌려졌다. 이제 김영갑은 그가 사랑했던 섬 제주, ‘그 섬에 영원히 있다.’

  출처 : 두모악 갤러리


내가 사진에 붙잡아두려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 아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들판의 빛과 바람, 구름, 비, 안개이다. 최고로 황홀한 순간은 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삽시간의 황홀이다. (본책 인용 - 180쪽)


Posted by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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