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이상 평전』(향연, 2003) 읽다.

  

이리하여 나의 종생(終生)은 끝났으되 나의 종생어(終生語)는 끝나지 않는다.

- 소설「종생기」중

 

요절한 천재 작가 이상(李箱)에 대한 평전.

고은에 의하면, 20대의 문학이란 일종의 ‘아동 문학’이며, 이는 고작 ‘자기 자신의 변해(辨解)’ 정도의 수준일 뿐이라 한다. 따라서 고은은 이상(李箱)의 삶을 탐색함으로써 그의 문학 실체를 파악하자는 것이다. 이상의 ‘모더니즘’ 및 ‘쉬르리얼리즘’은 이전 세대에 대한 성찰 없는 부정 정신으로서 결국 그의 천재성이란 1930년대 풍속에 대한 파괴적 자존심이었으며, 또한 그의 문학은 문화사 의식의 수확물인 아닌, 그저 배타적 의식 단위로서 에고이즘으로 가득 찬 사생활 문학이라는 것.

고은은 말한다. 지금껏 우리는 김소월을 김소월로, 한용운을 한용운으로 파악했지만 유독 이상(李箱)에 대해서만큼은 서구의 특산물-현대의 이방인 처용-로 접근해 왔기 때문에 그에 관한 신화가 탄생한 것이라고. 이 책은 이상(李箱)의 일대기를 고증하며 그의 문학이 얼마나 미완성의 문학, 습작기의 문학, 자의식 낙서의 문학인가를 증명한다.


「오감도(烏瞰圖) - 시 제 2호」

나의아버지가나의곁에서조을적에나는나의아버지가되고또나는나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고그런데도나의아버지는나의아버지대로나의아버지인데어쩌자고나는자꾸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니나는왜나의아버지를껑충뛰어넘어야하는지나는왜드디어나와나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노릇을한꺼번에하면서살아야하는것이냐


 

작가론(표현론)이다. 작가론은 상상을 제약하므로 읽는 재미를 반감시킨다는 함정도 있지만, 작품의 의미 해독에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이 또한 사실이다. 이상 예찬론자에게 이 책은 불편할 것이다. 한편 이상 예찬론자였던 이들에게 이 책은 흥미롭다 - 위에 인용한 시의 경우, 이상의 삶을 들여다 본다면 어렵지 않게 풀이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며, 이상 전집과 이 책, 그리고 국어사전이 있다면 한달 쯤 섬에 갇혀 지내도 심심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고은의 언어는 매우 어렵고 너무 어렵고 막 그렇다. 문학 이론 및 문학사에 대한 전문 용어, 생소한 관념어, 현학적 수사, 음독하기 어려운 한자어 등이 아주 많다 - 책의 대강을 알 수 있고, 고은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비교적 명료하게 요약한 <서설> 부분만 읽어 보아도 고은의 언어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일부 님들은 이 책을 ‘쓰레기’ 따위로 폄훼했지만, 이는 지나치다. 수작이라고까지 말하기엔 조심스럽지만, 오직 자신의 이해 범주를 기준으로 책에 대한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번 이렇게 외쳐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 소설「날개」중

 

예전에 어떤 분이 화두를 제시하셨다. 소설「날개」의 마지막 부분에서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에서 요 ‘한 번만’에 대해 그 분은 궁금해 하셨던 것이다. ‘한 번만’이라니. 그렇다면 이상에게 비상의 기억이 있었던가. 이상의 어떤 텍스트에도 비상은 존재하지 않는데? 요 문제에 대한 해답이『이상 평전』에 암시되어 있다.

덧. 이 책은 1974년에 발간되었다가 절판. 고은 전집에 실려 있다 2003년에 재발간된거라 한다.

Posted by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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