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만에 쉬는지 모르겠다.

아내와 오랜만에 나들이를 다녀와야겠다.

어디든 가고 싶다, 어디든 가고 싶다, 인터넷 검색 엔진을 돌린다. 광릉 수목원으로 산책을 갔다 남양주에 살고 있는 변태 오징어를 만나고 올까, 춘천에 가서 닭갈비 먹고 이외수 형님 멀리서 훔쳐 보고 올까, 하다 소래 포구에 가기로 정한다. 꽃게가 한창이란다. 작년보다 어획량이 10배 이상 늘었다 하니 눈요기도 하고, 회도 먹을 수 있을 것이고, 오랜만에 코에 바다 바람도 넣고. 좋을 것이다. 게다가 마침 소래 포구 축제라 한다. Olleh~!

 


집에서 소래포구로 가는 길은 단조롭다. 서울 동쪽에서 인천 방면으로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직진. 청계 요금소에서 톨게이트 요금을 내고(하이패스 go go), 몇 개의 터널을 지나면 조남 분기점. 무시하고 직진. 안현 분기점에서 신천IC 방향 - 서울에만 신천, 신천이 있는 것이 아니다.

신천 IC에서 나와 잘 닦여진 국도를 타고 10여분 가량 차를 달리면 오른쪽으로 소래 생태 공원과 소래 대교가 보인다. 이 코스대로 오면 톨게이트 요금을 한번만 내니 좋고(월곶 IC로 나오면 고속도로 요금을 한번 더 내야 함), 고속도로의 도시적 속도감과 국도만의 밋밋한 한적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으니 또한 좋다.

집에서 소래포구 주차장까지 정확히 45분. 가깝다. 소래 포구 축제가 시작되었다지만 평일이라 사람이 적다. 다행이다.



주차를 하고 걷는다.

원래는 주차 요금을 받는데 축제 기간이라 그런가, 주차 관리 요원이 없다. 공짜다. 모든 것에는 대가가 있다 하지만, 그래도 난 공짜가 좋다. 대개의 나는 속물스럽다.

입구에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고, 그 뒤로 만국기가 펄럭인다. 조개구이집도 보인다. 횟집의 낚시꾼들이 사람 낚시를 하고 있다. 아내와 난 주위를 두리번거리지 않고도 길을 걸을 수 있기 때문에 낚시꾼님들에게 잡히지 않는다. 소래 포구의 횟집들, 신기한 점 - 여기 횟집들은 전국 팔도의 이름을 다 가지고 있다. 부산 ○○, 목포 ○○, 군산 ○○, 대구 ○○○, 순천 ○○, 안동 ○○, 여수 ○○, 광주 ○○○, 강릉 ○○, 영덕 ○○. 
 



어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즈음, 각종 튀김을 파는 곳이 있다. 소래포구에 오면 우린 늘 새우 튀김을 사먹는다. 값을 물으니 작은 새우 튀김 20개에 오천원. 가격이 좀 올랐나, 기억이 가물가물. 옆에 감자 튀김, 가래떡 꼬치를 파는 노점도 보인다. 군것질은 즐겁고, 시장은 활기차다.

 


어시장으로 들어가니 와, 와, 꽃게다. 꽃게가 정말 많다. 꽃게는 어떤 수화를 하려는 것일까. 집게발을 들어 꽃게가 수음(手音)을 보낸다. 녀석들의 손짓은 바다를 향수하는 것일까, 절명의 순간에서 단말마의 몸부림일까. 도시에서의 꽃게와 여기 꽃게는 같은 것이겠지만, 요 녀석들의 꿈틀거림은 어쩐지 작위적이지 않다.




집에서 인터넷으로 검색했을 때는 kg당 만 오천 원이라 했는데, 직접 와보니 꽃게 파는 사장님이 만 삼천 원만 달라 한다. 꽃게는 집에 갈 때 사기로 하고 우선은 눈요기룰 한다. - 입구에 있는, 나중에 꼭 오라고, 잘해주겠다고 한 예쁜 여사장님. 이 가게 상호가 <삼성호>라 망설이기도 했지만, 후에 집에 갈 때 약속대로 가게에 들렀더니 정말 잘해 주신다. 지인들께 드리고, 우리 내외도 찜요리 해 먹으려고 4kg씩 각각 포장했는데 족히 6kg는 넘게 달아 주셨다.

왼쪽에도 꽃게, 오른쪽에도 꽃게. 꽃게들 사이를 걷고 있으려니 내 걸음이 갈지(之)자. 눈이 위로 솟아 양쪽으로 갈라진다.


 


꽃게와 대하 파는 곳을 지나니 이번엔 젓갈이다. 각종 젓갈을 파는 가게가 즐비하다. 새우젓, 꼴뚜기젓, 명란젓, 창란젓, 오징어젓, 낙지젓, 아가미젓, 굴젓, 조개젓, 젓, 젓. 그리고 젓.

알싸한 젓갈 냄새에 취하니 갈지자 걸음이 더욱 취해 있다. 그물에 잡혀 플라스틱 통에 갇혀 있는 해체된 것들. 그것들도 바다를 기억하고 있는가. 제주 은갈치, 만원에 10마리 준다는 산낙지까지 구경하니 내 몸에 바다가 들어왔다. 물심일여(物心一如)란 놈은 산수에서만 서식하는 것이 아니었다.

 


포구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밀물이다. 정박해 있는 배 뒤로 갈매기가 한가하다. 바다 냄새 - 비릿한 짠내, 요 냄새. 회도 한 접시 먹기로 한다. 모듬회를 산다. 만 원. 광어․우럭․도미․전어 회가 한 줄씩 있다. 회를 썰어주시는 예쁜 사장님이 말씀하신다. 축제장에 가면 맥주 시음회 해요, 거기서 맥주 마시면서 회 드세요.



축제장.

수인선 협궤 열차가 지났던 철로, 그 밑 굴다리를 지나면 소래 공원이 있다. 이 소래 공원은 얼마 전에 새로 조성된 곳으로 넓고 깨끗하다 - 지금의 소래 포구는 깨끗한 최신식 화장실이 많다. 넓은 중앙 무대에서 이름 없는 가수가 미군 관현악단의 조잡한 연주에 맞춰 “We are the world~" 노래를 부르고 있다.




행사장 뒤로 삐죽 고개를 내민 아파트가 있다. 아파트 벽면에 “주민 기본 생활권 침해하는 소래 포구 행사 반대”라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소래 포구가 삶의 터전인 어민과 상인들은 외지인의 발길이 많아야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여기, 소래 포구에 가정을 꾸린 사람들은 외지인 때문에 몸살을 앓는 것이다. 이율배반(二律背反)은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먹고 사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인천시 남동구에 있는 각 동(洞)마다 천막을 치고 행사를 한다. 만수동, 만수동, 만수동. 나머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줄을 서서 다트 게임을 하니 순대를 준다. 공짜는 맛있다.

프레스코 가발을 쓰고 아내와 난 서로의 사진도 찍어 준다. 카드 마술쇼를 구경하기도 한다. 먹을거리 장터도 기웃거린다. 맥주 시음회장에서 맥주를 마시고, 근처에 앉아 회를 먹는다. 소주를 마시고 싶었지만, 운전을 해야 하니 맥주 한 캔만 마시기로 한다.

주변 대학의 노래패들로 보이는 학생들이 노래를 한다. 녀석들은 순진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최신 유행 가요에 맞춰 춤을 추며 노래한다. 아홉 번째라는 소래 포구 축제는 거창했고, 엉성하다.




방향을 바꿔 길을 돌아선다. 간장 게장 만 원 어치, 창란젓 육천 원 어치 산다. 꽃게도 산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은 반찬 걱정이 없겠다. 해가 많이 짧아졌고, 왔던 길의 역순으로 집에 간다.




뱀발 : 지식의 샘을 초대해 꽃게찜을 먹는다. 이 사람, 눈을 희번득하며 게를 먹는다. 자신은 게를 사랑한단다. 게를 사랑하는 지식의 샘을 보며 사랑과 광기(집착)는 구분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취기가 오르자 놀기로 한다. 집에 화투가 없어 아쉬운 대로 부르마블을 한다. 내가 은행을 맡고 셋이 돌아가며 주사위를 던진다. 아내가 홍콩에 도착. 지식의 샘이 말한다 - 빌딩 사려면 47만원, 호텔 사려면 58만원, 땅 값 포함이야. 웬 걸, 카드 뒷면을 보니 정확하다. 나 벨기에 도착. 지식의 샘이 말한다 - 빌딩은 65만원, 호텔은 89만원, 물론 땅 값 포함. 카드 뒷면을 보니 역시 정확하다. 뭐냐, 이 사람. 어렸을 때 많이 했단다. 뭐냐, 이 사람. 우리 부부 도박단은 지식의 샘에게 석패했다.



Posted by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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