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디스토피아 시대, 유토피아를 꿈꾸다.

 

「창세기」 2․3장은 인간이 유토피아로부터 추방되는 과정을 묘사한다.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의 모든 과실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었다 한다. 단 하나, 에덴동산 중앙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준:선악과)를 제외하고. 어느 날 뱀은 선악과를 따 먹으라며 하와(아담)를 유혹한다. 유혹은 달콤하며, 매혹적이다. 결국 인간은 선악과를 딴다 - 인류 최초의 죄 : 원죄. 여호와는 금기를 어긴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하며 유토피아에서 쫓겨난 인간은 땀 흘리며 농사를 짓는, 최초의 육체적 고통을 경험한다.

이는 인간의 생산 활동이 수렵․채집에서 농경으로 발전했음을 은유한다. 여기서 수렵과 채집이 이루어지는 에덴동산이 유토피아로 설정되어 있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농경(고통)의 시작이 최초의 낙원, 에덴동산 밖이었음도 예사롭지 않다.

요는 이렇다. 가장 원시적 경제 활동이라 믿었던 수렵과 채집 행위가 실은 가장 완벽한 형태의 생산 활동이었다는 것. 흔히 우리는 야만에서 문명으로 ‘발전’했다고 생각하지만, 「창세기」는 발전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키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상징적 장치가 문화 인류학적으로도 유효하다는 점이다.

 

마셜 살린스는 수렵․채집 사회를 ‘인류 최초의 풍요로운 사회’라고 불렀다. 그에 의하면 수렵․채취인들은 문명 사회의 노동자들보다도 훨씬 적게 일하고 많은 여가 시간을 가지면서도 사냥과 채집으로 얻은 식량을 공동체 성원이 나누어 먹으며 충분한 영양을 고루 섭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칼라하리 사막에서 살아가는 쿵 족이 주로 먹는 음식은 몽곤고라는 나무 열매인데, 이는 미국인들이 아침 식사로 즐겨 먹는 가공된 곡류에 비하면 단백질의 함유량이 10배나 많고, 열량은 5배 가령 높은 영양식이라 한다. 중요한 것은 쿵 족은 식량의 조달을 위해 1주일에 약 2.4일(18시간) 가량 노동을 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영양 상태나 건강 상태가 인근의 농민들보다 훨씬 나았다는 것이다.

 

 

영화 [아바타]의 흥행 기세가 꺽일 줄 모른다. 아바타 전문 암표상까지 등장한지 오래고, 63빌딩 아이맥스 영화관[3D]의 경우 추후 5주까지 영화표가 매진되었다 하니, 전인미답의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아바타는 다양한 신화적 은유가 담긴 영화다.

판도라 혹성의 홈트리(Home Tree)는 에덴동산의 생명나무로 나비(Navi)족과 유기적 일체감을 이루고 있다. 이른바 수신(樹神) 숭배의 원시적 토템이다. 성경의 생명나무나, 가깝게는 단군신화의 신단수(神檀樹)가 이 범주에 속한다. 신목(神木)은 천상과 지상의 교점이며, 유한과 초월을 매개하는 신령한 존재다. 물론 나비족이 판도라의 신, 에이와(Eywa)와 접신하는 과정 및 이 별의 동․식물과 하는 교감은 정령 신앙으로 탱그리(Tengri)의 변주가 된다.

제익 셜리(Jake Sully)가 나비족의 아바타로 분하는 것은 전형적 수육(受肉) 신화의 형태를 띤다. 성경에서 여호와는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예수라는 육체를 얻고, 단군신화에서 수신(獸神)인 곰은 동굴에서 마늘과 쑥이라는 주술적 소재를 통해 웅녀로 화한다. 3m가 넘는 나비족은 두말할 것도 없이 거인 신화 모티프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티탄(Tian)족이나, 제주도의 설문대 할망, 혼돈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한 도수문장은 모두 거인이다.

육체를 부여받은 신은 세계를 구원(이는 건국의 화소로 변형되기도)한다. 신화는 창세로 시작하고 구원 모티프로 종결한다. 제익 셜리가 이크란(Ikran)의 주인이 아닌, 토루크 막토(Toruk Makto)가 되는 그 순간 오마티카야(Omaticaya) 족은 재림 예수를 본다. 신라[新羅:새로운 세계] 시조 박혁거세가 나정(蘿井)에서 탄생하는 순간 신마(神馬)가 울음으로 축복했듯이, 판도라의 새 질서는 토루크(봉황)의 날갯짓으로 시작된다. 토루크 막토는 판도라의 구원자다.

 

영화 [아바타]의 아름다움은 3D라는 기술적 차원만이 아니다. 몽환적이며 신비로운 푸른 색감만도 아니다. 우리의 머리가 잊은 신화, 우리의 들숨과 날숨이 기억하는 신화적 원형을 재구하기 때문이다. 아바타가 은유하는 유토피아는 에덴을 닮았다. 나비족은 수렵과 채집을 하며 산다. 그들에게 문명의 흔적이라곤 활과 칼이 고작이다. 농경의 흔적과 산업의 검은 그림자가 없다. 마셜 살린스가 표현한 ‘최초의 풍요로운 사회’란 판도라의 나비족을 가리키는 게 아닐까. 디스토피아의 시대, 영화 [아바타]가 꿈꾼 유토피아는 매혹적이다.

 

뱀발. 영화는 개봉한 주에 보았는데, 원체 게을러 이제야 포스팅 올립니다. 거의 한달 전이네요. 포스팅의 애초 기획은 영화 [아바타]에서 파생한 3D TV 시장이었습니다. HD TV에 이어 3D TV로 시장을 개척하는 자본의 상술에 심술이 났기 때문입니다. 쿵 족보다 네 배 이상 노동을 하는 저로선, ‘신기술’이 두렵습니다. 등골이 휘어요. 아바타는 유토피아를 재구했지만, 기업은 아바타로 TV를 팔아 먹을 겁니다. 글을 쓰다 보니 원래의 포스팅 계획과 완전히 달라진, 요상한 변종 글이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읽어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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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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