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

늦은 아침에 일어났다. 날이 흐리다.

뭐지. 분명 해는 떴는데 이상한 빛이 감돈다. 물을 마시고 담배를 피운다. 멀뚱멀뚱.
아, 일식이구나. 그랬지, 오늘 일식이 일어난다 했어.
하늘을 본다. 눈이 부셔 잘 안 보인다. 초등학교 다닐 적, 일식을 보려고 셀로판지로 만든 안경을 만든 기억이 난다. 기억이 비상한 나는 안경 위에 선글라스를 대고 하늘을 본다. 보인다. 해의 절반 정도가 가려져 있다. 신기한 일이다.
아래를 보니 사람들이 여유롭게 산책을 하고, 유치원 꼬마 병아리들은 재잘재잘 시끄럽다. 여느 때와 같은 하루의 시작이다. 그리고 일식이다.
잠자리들이 어디론가 한 방향으로 계속 날아간다. 가만히 지켜보니 이건 한두 마리가 아니다. 잠자리 떼가 모두 일정한 간격으로 동남쪽 방면으로 유영하고 있다. 어떤 놈은 내 바로 앞에서 슥 지나가기도 한다. 그 놈들은 한가하고, 나는 녀석을 보고 약간 당황스럽다. 잠자리 한 마리가 하루에 이백 마리의 모기를 먹는다는데, 하나 분양 받아 키워볼까, 허튼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멀뚱멀뚱.
뉴스를 보니 금세기 최고의 우주쇼니, 제주도에서 촬영된 화면을 보여주는가 하면, 인도는 어쨌고, 중국에서는 오백년 만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나 어쨌나, 떠든다.
음모론을 믿는 나는 뭔가 이상하다.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나는, 뭔가 음모의 냄새가 나는 하루의 시작이다.



역사는 어떤 것을 기록하는가.

역사(歷史)란 무엇인가 하는 대단히 어려운 물음에 아주 쉽게 답한다면, 그것은 인간 사회의 지난날에 일어난 사실(事實)들 자체를 가리키기도 하고, 또 그 사실들에 관해 적어 놓은 기록들을 가리키기도 한다고 흔히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날의 인간 사회에서 일어난 사실이 모두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쉬운 예를 들면, 김 총각과 박 처녀가 결혼한 사실은 역사가 될 수 없고, 한글이 만들어진 사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사실 등은 역사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사소한 일,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일은 역사가 될 수 없고, 거대한 사실, 한 번만 일어나는 사실만이 역사가 될 것 같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고려 시대의 경우를 예로 들면,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자연 현상인 일식(日蝕)과 월식(月蝕)은 모두 역사로 기록되었으면서도 금속 활자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발명된 사실은 역사로 기록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우리는 지금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 활자를 누가 몇 년에 처음으로 만들었는지 모르고 있다. 일식과 월식은 자연 현상이면서도 하늘이 인간 세계의 부조리를 경고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역사가 되었고, 목판본(木版本)이나 목활자 인쇄술이 금속 활자로 넘어가는 중요성이 인식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역사로 될 수 없었다.

<중략>


인류 사회의 이상 가운데 하나는 정치적 민주주의가 더 확대되는 것이고, 그것이 곧 인류 역사가 나아갈 방향이기도 하다. 인간이 정치적으로 자유로워지는 길은 곧 스스로 권력을 가지는 길이며, 권력을 가지고 행사하는 인간이 많아지는 길, 즉 국민 주권주의(國民主權主義)가 확대되는 길이 곧 역사가 나아가는 길인 것이다.

<중략>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우리들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인간의 정치적 자유, 경제적 균등, 사회적 평등, 사상적 자유를 이루어 나가는 데 궁극적으로 합치(合致)되고 있는가 그렇지 못한가를 분간할 수 있어야 한다. 합치되는 사실은 역사적 사실이며, 거슬리는 사실은 반역사적(反歷史的) 사실임을 알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역사를 보는 직접적인, 그러면서도 쉬운 방법의 하나라 할 수 있다.

   - 강만길,「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발췌


미디어법 통과


예상한대로, 결국, 미디어법이 통과됐다.

한나라당은 신속했다. 아침 일찍부터 국회 본회의 의장석을 점거한 한나라당 선발 본대는 뒤늦게 본회의장 출입구를 봉쇄한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을 한가하게 지켜보고 있다. 군대는 가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군의식이 투철한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 대표는 의장석 앞 발언대에 기대 다리를 떠는 센스도 보여 주신다. 민주당 의원들과 보좌진들은 점심 먹고 이쑤시며 트림하며 들어오는 한나라당 의원들을 막지만 중과부적(衆寡不敵), 아니 회의장 정문 아닌 방청석쪽으로 잠입에 성공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기지가 돋보인 시간차 공략 성공. 이 치들이 군대에 왜 안 갔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들은 신속하고, 집단적이며, 능수능란하고, 기지 넘치며, 상명하복에 충실하고, 재기 발랄하며, 전투적이었다. 박수를 보내려다 참았다.

국회 질서 보호를 위한 경호권이이 발동되고, 김형오를 대신한 이윤성 부의장이 의사봉을 들고 진행을 한다. 직권상정 표결 처리. 뿅망치. 뿅뿅뿅. 만장일치. 뿅뿅뿅. 반대 한 표 없이 모든 법안이 통과됐다. 찬반 토론 및 심사보고, 제안 설명 과정을 무시하는 것은 날치기 통과의 기본 전술 중 하나이므로 이를 두고 뭐라해선 안 된다. 모르시는 분은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날치기 백과사전>(2018, 한나라)를 읽어보시라. 독서가 힘이다. 이 과정에서 대리 투표 논란과 투표 종료 후 재투표 종용 등은 조금 문제가 있어 보이나 위에 적시한 책에 보면 그런 선례가 있을 지도 모르니 열심히 찾아 보자.  

언론 노조는 파업을 했고, 민주당 의원 전원은 의원직 총 사퇴를 결정했고, 나는 이번주 <무한도전>이 방영되지 않아도 인고(忍苦)할 수 있다고 사뭇 비장한 각오도 했는데 미디어법은 그렇게 통과됐다. 마술 뿅망치는, 30분만에, 뿅뿅뿅. 거 참 신기하다. 돈을 모아 나도 마술 뿅망치 하나 장만하고 싶다. 이것만 있으면 라면 뿅뿅뿅. 숏다리 오징어 뿅뿅뿅, 소주와 멸치 뿅뿅뿅. 아 세상은 아름다워질텐데. 공동구매로 같이 사면 싸게 살 수 있다 하는데 같이 구입할 님들을 모으는 게 급선무가 아닐까 싶다. 찾아봐야겠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언론노조는 촛불 집회 취소하고 한라당사로 간다 하고, 정권 퇴진 운동을 벌인다 하고, 아고라에서는 이젠 전쟁이라며 전대협 큰형님들까지 나섰고, 산업은행으로 가자 하고, 민주당 등 야 3당은 의원직 총 사퇴를 고민중이고[각주:1], 혹은 이윤성 국회 부의장의 의사 진행 과정을 법리적으로 걸고 넘어지려 하고[각주:2],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박근혜는 국민이 공감할 것(?)이라며 앞통수 제대로 때려 주시고, 시대는 불감증 중증 증세고, <무한도전>이 없이도 토요일을 견딜 수 있는 나는 멀뚱멀뚱.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잠자리는 어디쯤 날아갔을까.
마술 뿅망치는 누구와 함께 사야 하나.


 

- <독설닷컴>에서 퍼옴
 

 

 

  1. 요건 글쎄... 지금껏 지켜본 무력(無力)의 민주당의 깜으로 봤을때 아마 용두사미가 되지 않을까 싶다 [본문으로]
  2. 요건 글쎄... 가장 현실적이며 강력한 추진 동력이 될 듯 하다. 나같은 무식쟁이가 봐도 위헌인 것 같은데 말이다. 잘만 하면 하나는 건지는 거다. [본문으로]
Posted by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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