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베르베르 『나무』(열린 책들, 2003) 

 

18편의 단편을 엮은 소설집.

1.「내겐 너무 좋은 세상」- 미래, 인공 지능을 장착한 생활 용품들이 뤽을 괴롭힌다. 뤽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슬리퍼가 뤽을 이동시키고, 커피 포트와 커피 잔이 커피를 알아서 대령한다. 뤽은 피로하다. 마치 인간처럼 말을 하고 살아 움직이는 기계들. 예상 가능한 반전. 지구에는 유기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2.「바캉스」- 중세 시대로 바캉스를 가다. 책에서 본 중세와 실제의 중세는 다르다. 악취와 살인, 강도와 마법사. 미래에도 보험은 필수.

3.「투명 피부」- 투명 피부를 가진 과학자. 서커스로 돈 벌다. 한국 여자, 투명 피부 과학자의 생식샘을 자극한다.

4.「냄새」- 우주인이 보석을 만드는 방법. 냄새나는 운석을 지구로 떨어뜨린다.

5.「황혼의 반란」- 프랑스식 고려장. 프랑스식 빨치산.

6.「그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자」- 인간 식별법. 접근법. 인간의 풍속과 생식. 인간을 사육하는 법 등이 소개되어 있다.

7.「조종(操縱)」- 왼손의 반란. 손은 몸의 지체일 뿐이라고? 웃기시네.

8.「가능성의 나무」- 미래를 나무에 그려본다.

9.「수의 신비」- 과연 17 이후의 수가 존재할까?

10.「완전한 은둔자」- 모든 것이 네 안에 있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그러했다. 네가 하는 일은 그저 네가 알고 있는 것을 다시 배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 사유. 뇌의 사유. 그래서?

11.「취급 주의 : 부서지기 쉬움」- 우주 만들기 장난감. 인간의 신이 되어 버린 쥐. 쥐의 우주.

12.「달착지근한 전체주의」- 포르노 소설 <내 여자들>과 과학 소설 <하얀 가운을 입은 바보들의 결탁>. 뒤바뀐 운명. 미디어, 전체주의의 시작.

13.「허깨비의 세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언어, 존재의 본질. 존재의 본질, 언어.

14.「사람을 찾습니다」- 완벽한 여성. 그의 짝은 어디에도 없을걸? 완벽한 여성이 존재할 수 없듯이.

15.「암흑」- 감각의 절대성. 그 오류. 박지원의 <일야구도하기>.

16.「그 주인에 그 사자」- 애완 동물 사자.

17.「말 없는 친구」- 나무도 인간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까?

18.「어린 신들의 학교」- 인간 세계를 관리하는 신(神). 신들을 관리하는 신? 과연?



 

빨리 읽힌다.

베르베르는 기술적으로 훌륭한 작가이다. 문장이 깨끗하며, 전개가 빠르다. 군더더기가 없다.

사고와 발상은 더욱 훌륭하다. 그는 감각의 절대성을 조롱하며, 상식의 허점을 까발린다. 발가벗겨진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흥미롭다. 그에게 시간과 공간은 가변적이며, 그래서 독자는 자유롭다.

 

재밌는 점. 베르베르는 외계인이 지구에 악취가 나는 운석을 떨어뜨린다는 비상식적 진술을 마치 냉장고 문을 열고 어제 먹다 남은 피자를 렌지에 데워 먹는 것처럼 서술한다. 진지하지 않게. 위트 있게. 능청맞지 않은가. 대개의 경우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전제의 공통분모가 필요하다. “손담비는 섹시하니까 최고의 가수야.”라는 말이 설득력을 있기 위해서는 ‘섹시함은 최고 가수의 요건’이라는 등식을 화자, 청자가 공통적으로 인지할 때 가능하다는 얘기다. 상식적이지 않은 이야기일수록 전제는 더욱 중요하다. 그러나 베르베르는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잘 읽히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알 것만 같다. 능구렁이 같은 천재. 혹은 외계인.

 

지난 주 금요일 MBC 다큐 <해파리의 역습>을 봤다. 꿈을 꿨다. 해파리가 도로를 기어다니거나, 술집에서 술을 마신다. 어떤 해파리는 만취해서 전봇대를 붙잡고 토를 했고, 주정을 부렸다. 사람들이 해파리의 등을 두드려 주다가 해파리의 토사물이 옷에 묻어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다. 해파리의 해권이 문제였다. "인간에겐 인권을, 해파리에겐 해권을"이란 슬로건으로 제 108대 국회에 해파리당 파리해씨가 당선된 것은 이미 3년 전의 일이었다. 해파리들은 촛불집회를 했고. 결국 국가 인권 위원회는 해파리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인간들은 물에서 숨을 쉬는 방법을 익혔고, 바다 속으로 이사 가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부동산 거품이 가라앉았고, 뷔풰 음식에는 더 이상 해파리 냉채가 나오지 않아 어떤 사람들은 서운해 했지만 그런대로 서울은 평온했다. 제주도에 사는 이유식 군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뭐 이런 식인가?

 

사고는 명징하게, 언어는 구체적으로.


Posted by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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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keith.pe.kr BlogIcon 한규 2009.11.09 2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리뷰가 맛깔나네요. 베르나르베르베르를 정말 잘 표현하신듯 싶어요. 눈에 담아두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