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 소설집 『미궁에 대한 추측』(문학과 지성, 1994) 읽다.

 

불편한 우화 읽기

 

책 수집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은 [초판 1쇄]에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기도 한다. 초판 1쇄든, 초판 7쇄든 그게 무에 중요하겠느냐마는 그게 또 그렇지가 않나 보다. 내가 아는 사람도 그랬다. 그네에게 [초판 1쇄]는 책의 순결성과 완결성을 담보했다. 게다가 같은 초판 1쇄라도 처음 인쇄한 출판사의 것이 진짜다. 가령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한길사]에서 나온 초판 1쇄인지 [해냄]에서 나온 초판 1쇄인지가 그네에겐 중요했다. 그 결벽성이 멋져 보였던 것일까. 내게도 초판 1쇄본의 책이 조금 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책들은 독서용이라기보다는 디스플레이 소장용으로 구입했던 것이다. 이런 책들은 아주 오랫동안 용도변경하지 않고 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한다. 책꽂이에 방치된 채 먼지를 뒤집어 쓰고 숙면을 하는 것이다. 자장자장. 잘도 잔다. 지금 막 동면에서 깬, 이승우의 소설집도, 그러니까, 초판 1쇄다.

 

「선고」 : 삶의 무료함에 염증을 느끼는 F는 어느 날 미궁에서 초대를 받는다. 미궁의 사람들은 낮에 미로를 만들고 저녁에 그들의 왕을 뽑는다, 매일. 새로 왕이 된 자는 그 전날의 왕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다. 어느 날 F는 왕이 되고, 그 다음 날 F는 사형 선고를 받는다.

- 인간은 천 개의 권리와 한 개의 의무를 지녔다.  단 한 개의 의무란 죽음이다. 권리는 부조리다.

「하얀 길」 : 능수역은 하루에 여섯 번 기차가 정차한다. 도시로 가는 세 번과 도시에서 오는 세 번의 기차다. 요양차 능수에 온 ‘나’는 능수에 매료돼 아예 이곳에 정착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 아름다움은 거리가 주는 환영이다.

「해는 어떻게 뜨는가」 : 해는 어떻게 떠오르는가. 이 질문은 너무 시시하다. 이런 질문에 대답하지 못할 사람은 망구스 족에는 없다. 해는 주술사가 부른다. 주술사는 해를 부르는 유일한 존재다. 지리한 장마의 시작과 함께 사람들은 해가 뜨지 않자 불안해 한다. 주술사는 부정한 자가 있기 때문이라며, 제비뽑기를 통해 부정한 자를 색출해 그를 벌하는데….

- 대중은 늘 권력에 기만당한다. 권력의 힘은 무지한 대중으로부터 나온다.

「미궁에 대한 추측」 : 에게해의 남단에 위치한 크레타섬의 중심지엔 미노스왕이 통치를 했던, 위대한 도시 크노소스가 있다. 신화의 등장 인물은 미노스왕과 그의 아내 파시파에, 포세이돈의 황소와 미노타우로스, 세공인 다이달로스, 미노스왕의 딸 아리아드네 공주와 속국의 왕자 테세우스다. 파시파에는 황소를 연모해, 황소의 아이 : 반인반수의 미노타우로스를 낳는다. 미노스 왕은 다이달로스에게 괴수 미노타우로스를 가두기 위한 미궁을 짓도록 한다. 미노타우로스는 미궁에 갇히고,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 공주의 도움으로 미노타우로스를 죽인다, 고 신화는 말한다. 과연 미궁의 진실은?

- 신화(상상력)는 땅(사실)의 견고함에 기초한다.  해석되지 않은 텍스트는 벙어리다.

「수상은 죽지 않는다」 : 수상이 죽었다는 소문이 창궐했다. 소문이 극에 달했을 때, 수상은 특별 담화를 발표한다. 수상은 건재하다, 이 소문의 진원지는 반국가 단체이다, 강력한 권력의 집중만이 국가를 보호할 수 있다, 며 TV속 수상은 주먹을 불끈 쥐고 카메라를 응시했다. 소설가 K.M.S는 수상의 담화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 마치 충분히 연습을 한 연기자가 수상의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K.M.S는 자료를 찾아 지금의 수상이 가짜임을 확신하고 이를 소설화하려 한다. 어느 날 K.M.S는 국가 기관에 의해 잡혀가 취조를 당하고 어디론가 끌려 간다.

- 의심하라, 모오든 광명을. 대체 우리가 보는 것은 무엇인가.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일기」 : 나는 안양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동생의 면회를 간다.2시간 넘게 기다려 3분의 면회를 한다. 감옥에 갇힌 동생은 자신의 운명에 대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 감옥, 갇힌 자, 조종당하는 운명.

「홍콩 박」 : 홍콩에서 배가 오기만을 학수고대하는 홍콩 박은 어느 날 잡지사를 그만 둔다. 홍콩 박의 ‘배’가 도대체 무엇인지를 알 수 없지만, 홍콩 박의 그 맹신에 우리는 모두 전도된다. 오지 않는 메시아를 기다리며, 홍콩 박의 배가 정말 와주기를 간절히 빈다. 어느 날, 나는 뱀을 밀수하다 붙잡힌 홍콩 박의 모습을 TV에서 목격한다.

- 누구나 원하는, 메시아의 재림은, 죄송하지만, 없다.

「동굴」 : 별 볼일 없는 소설가인 나에게 어느 날, 두 개의 일거리가 생긴다. 하나는 아프리카 출신 H.M.호프 의 소설 『예술가』를 번역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등학교 동창이자 지금은 잘 나가는 변호사이며 정치 입문을 준비하는, 친구 김기욱의 에세이를 대필해주는 것이다. 내키지 않은 두 개의 일을 하는, 나의 직업은 소설가이다.

- 알레고리. 예술의 기원은 생존을 위한 주술에서 시작한다.

 

하나 건졌다. 장편보다는 단편을, 내러티브보다는 메타포를, 유려함보다는 치밀함을, 교훈과 편안함보다는 의문과 불편함을 선호하는 나로선 ‘건졌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이 책은 단편집이며, 은유적이며, 불편하다. 고로 하나 건졌다.

성민엽(「불온한 문학, 그리고 진실」)은 이승우의 문학을 ‘지배와 복종의 메커니즘을 알레고리로 드러낸, 비극과 불온의 문학’으로 평했는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지배․복종의 구조’라는 표현은 소설집의 몇몇 작품(「선고」, 「해는 어떻게 뜨는가」, 「수상은 죽지 않는다」 정도)을 관통하는 지축이 되므로, 일견 타당해 보이나, 소설집 전체를 아우르는 기층적 원형은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지배와 복종의 구조는 「하얀 길」 중 도시로부터 고립된 능수역이나, 「일기」에서 동생을 수감한 감옥의 은유로는 적확하지 않다는 말이다.

이승우는 우화에 능한 작가이다. 우화는 원형적이므로 보편을 지향한다. 서사를 제외하고, 상징을 추상하면 이렇다.

이승우에게 세상은 미궁이다. 존재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무단으로 피투(披投)되었다. 그렇다. 이승우의 은유는 피투다. 그러나 마땅이 있어야 할, 기투(企投)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세상은, 따라서, 미궁이다. 능수역은 도시로부터 버려진 곳(「하얀 길」)이다. 죽지 않는 수상이 통치하는 국가(「수상은 죽지 않는다」)는 세계로부터 고립되었으며 탈출을 시도하는 자-진실을 파헤치려는 자는 감금당한다. 홍콩 박의 오지 않는 배(「홍콩 박」)는 탈출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절제된 희망이며, 작가적 양심을 저버리고 대필업을 하는 소설가(「동굴」) 역시 생계라는 미궁에 갇힌, 미노타우로스의 변형이다. 존재하는 자는 자신의 존재 의의를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미로를 만든다. 입구만 있고 출구는 없는 미궁은, 그러니까, 삶이다. 탈출의 통로는 없는가. 아니다, 있다. 그러나 미궁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길은 비상이나 죽음이라는 통로다. 인간에겐 새의 날개(이카루스의 날개)가 없으므로 인간은 그에게 부여된 하나의 의무, 죽음을 통해서만 미궁[동굴,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다. 죽음에 의해서만 길이 열리는 미로는, 그러므로, 살아 있는 존재에겐 닫혀진 길이다.

 

Posted by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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