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7분에 마무리하는 구두 광(光) 내기

 

며칠 전부터 구두가 지저분한 게 신경 쓰입니다.

정장 입을 때, 허리 벨트와 구두가 의외로 눈에 잘 띄거든요.

체형에 맞지 않는 옷의 품이나 양복과 셔츠의 불협화음 색감도 문제지만, 벨트의 버클이 삐딱하다든지, 손질이 덜 된 구두도 그야말로 NG입니다. 청바지에 티셔츠는 성글게 입을 수록의 ‘맛’이 있지만, 나태한 정장 차림은, 글쎄요, NG입니다. 옷 맵시 좋은 분들은 뭘 입어도 태가 나겠지만, 저 같은 양민은 사소한 것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비싼 옷은 못 입어도 깔끔하게는 입자는 게 제 신조인지라,

비싼 구두는 못 신어도 깨끗하게는 신자는 게 제 신조입니다.

 

오늘은 출근 전 약간의 시간을 할애해 구두 손질을 해봤습니다.

광(光)의 종류는 대한민국 군대를 전역하신 분들께만 비전(秘傳)되는 ‘물광’입니다. (제가 불광보다 물광을 선호함)

먼저 준비물.

▲ 구두솔 (나무 손잡이 달린 천 원 짜리)

▲ 구두약 (옛날식 뚜껑에 말 달리는 모양 있는 오백 원짜리)

▲ 못 쓰는 면이나 헝겊

▲ 물 10방울 정도와 약간의 시간

 

구두의 먼지를 솔로 털어냅니다.

슥삭슥삭ㅡ 정도의 느낌이면 좋습니다.

 

솔에 구두약을 묻혀 구두에 골고루 바릅니다.

구두약은 적당량으로 한번 정도가 좋습니다. 양치질 할 때 치약 짜는 정도의 분량 정도? 구두약을 너무 많이 묻혀 덕지덕지 되면 닦아 낼 때 고생합니다. 스으윽 스으읔ㅡ 정도입니다.

 

구두약을 묻혔던 부분의 반대쪽 솔로 구두를 닦습니다.

묻힌 구두약을 털어낸다는 느낌으로 솔질을 합니다. 솔질은 가볍게 합니다. 솔로 광을 삐까뻔쩍 내려고 하면 힘이 들뿐더러 구두코의 윤택이 강조되지 않으므로 솔질은 ‘가볍게’가 좋습니다. 쓱싹쓱싹ㅡ 의 느낌입니다. 이때 입으로 쓱쓱쓱싹ㅡ 쓱싹쓱싹ㅡ 소리를 내면 더욱 좋습니다.

 

검지와 중지를 이용해 준비한 면에 촉촉이 물을 적십니다. (역시 검지와 중지로) 적셔진 면에 구두약을 바릅니다.

물론 중지 쪽에만 구두약을 묻혀도 상관 없지만, F.M은 역시 검지와 중지입니다. 물이 묻은 면을 구두약에 꾸욱ㅡ 눌러 구두약을 묻히는 게 보통입니다. 촉촉이 젖은 면에 구두약 꾸욱ㅡ.

 

구두약이 잘 적셔진(물과 혼합된 구두약) 면을 구두코에 문지릅니다.

고스톱 치는 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천천히, 살살, 야무지게 문지릅니다. 처음엔 둔탁한 빛이나, 2분여 정도 공을 들이면 반짝반짝 광이 납니다. ③에서 ‘솔광’을 약하게 냈던 이유가 있습니다. 엷게 ‘솔광’을 내었기 때문에 구두코의 ‘물광’ 윤택이 더욱 강조됩니다. 동양화에서의 홍운탁월(烘雲拓月)을 적용한 것입니다. 홍운탁월이란 ‘구름을 그려 달을 드러낸다’는 뜻으로 비움과 가림으로 대상을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전체[구두의 솔광 전체]의 빛을 가림으로써 부분[구두코의 물광]의 빛이 살아나는 이치입니다. 서양화로 표현하자면 카라바지오식의 명암법입니다. 빛과 어둠을 강하게 대비하면서 강조할 부분만을 극적으로 부각시키는 기법이죠. 빛과 어둠의 강한 대비로 대상은 입체감을 갖게 되고 그 도시적 칼라는 적당한 세련미와 비장미마저 더해줍니다. 험험….

 

외출 시 솔질은 따로 하지 않고, 헝겊 따위로 먼지만 닦아 냅니다(5초 소요).

특별히 오물이 묻은 게 아니라면 구두 손질은 일, 이주일에 한번 정도면 괜찮습니다. 외출하기 전 헝겊으로 슥슥ㅡ 닦아주기만 해도 단정합니다. 전 한 달에 한 번 정도 구두 닦는데요, 헝겊질로도 구두가 반짝반짝해지지 않는 시기에 ~⑤와 같은 물광을 냅니다. 깨끗이 신는 건 좋지만 과한 것은 안 좋습니다. 간단, 간단히 하자구요.

 

이 정도면 동창 두꺼비의 결혼식이든, 변태오징어의 돌잔치든 당당할 수 있습니다. 아래는 인증샷.

 

▲ 손질을 한 구두와 그렇지 않은 구두가 확연히 비교되지요?

 

▲ 쇼 케이스. 밑창에도 구두약을 바르면 더 괜찮았을 텐데요.

 

▲ 출근 전 살짝 컷. 자세히 보면 사진을 찍는 제가 보입니다. ^^

 

뱀발.

광택의 발현 여부는 능숙도나 손질 여부에 따라 시간차가 있습니다. 구두 구입 후 처음부터 길[광(光)]을 잘 들여 놓으면 아무래도 물광 내기가 손쉽습니다. 최초 물광은 ⑤를 여러 차례 반복하는 것입니다. 반짝반짝 광을 낸 후 다시 광을 죽이고, 다시 광을 내고요. 마치 담금질하듯이요. 쇠를 달구고 두드리고 찬 물에 담궈 그 단단함이 더해진다고 합니다. 담금질한 쇠가 쉽게 부러지지 않듯, 길이 잘든 물광은 그 빛이 쉽게 바래지 않습니다. 험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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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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