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크 쥐스킨트, 좀머 씨 이야기(유혜자 역, 열린 책들, 1992) 읽다.


프리즘을 통과해야 의미 있는 세계

 

어린이의 눈과 어른이의 눈은 다르다.

어린이의 눈은 세계를 투과하는 빛을 왜곡반사굴절의 과정이 없이 있는 그대로 투사한다. 날것이다. 반면 어른이의 눈은 그 빛을 변형주조가감하여 해석하며 판단한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 이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해석되거나 의미화 되지 않은 정보는 숱한 길가에서 피고 지는 숱한 무명(無名)의 들꽃과 같은 테니. 플랫폼의 프리즘을 통과한 빛, 아니 세계는 프리즘을 통과했으므로 의미 있는 세계다.

 

일종의 성장 소설이라 할 수 있는 이 짧은 삽화는 어린이가 어른이로 성장하며 얻은 것과 잃은 것의 교집합을 보여준다. 여집합에 살고 있는 나와 어른이가 잃은 다른 여집합의 기억은 아련하며, 어렴풋하다. 분명히 모순적으로 보였을 이 여집합의 세계를 저 여집합에서는 혼돈스러웠겠지. 하지만 그것이 프리즘을 통과한 세계다.

 

밀폐 공포증…… 밀폐 공포증…… 좀머 아저씨는 밀폐 공포증이 있어…… 그 말의 뜻은 아저씨가 방안에 가만히 있지 못한다는 것…… 방안에 가만히 있지 못한다는 것은 밖에서 돌아다녀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밀폐 공포증>이 있으니까 밖에서 돌아다녀야만 하고…… <밀폐 공포증><방안에 있지 못하는 것>과 같은 말이고, <방안에 있지 못하는 것><밖에서 돌아다녀야만 하는 것>과 같다면, <밖에서 돌아다녀야만 하는 것><밀폐 공포증>과 같은 말이지. 만약 그렇다면 그렇게 어려운 <밀폐 공포증>이라는 말을 쓰지 말고 <밖에서 돌아다녀야만 하는 것>이라고 쉽게 말해도 되겠지……. 그렇다면 <좀머 씨는 밀폐 공포증이 있기 때문에 밖에서 돌아다녀야만 한다>라는 어머니가 하려면 이렇게 말해야겠지. <좀머 씨는 밖에서 돌아다녀야만 하는 것이니까 밖에서 돌아다녀야만 돼…….> (44)

Posted by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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