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손님(창작과 비평, 2001) 읽다.


제의적 한풀이와 기독교적 화해

 

장정일의 표현을 빌리자면, 황석영은 노벨문학상이라는 잔칫상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듣보이다. 내가 기억하는 황석영이라고 해봤자 소설 객지를 통해 완성한 한국 리얼리즘 문학의 개척자 정도. 혹자는 황석영의 가카 대통령 취임 초기 행보를 두고 기회주의니, 전향이니 해댔으나 내 기억 속의 황석영은 객지그곳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2001년에 지금의 아내가 된 그 당시의 여자 친구에게 선물 받은, 손님을 읽는다.

 

대한민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가가 나온다면 그 최초의 영예는 시인보다는 소설가일 가능성이 크다. ? 시는 번역의 문제가 있으므로. 소설은 스토리와 서사이므로 언어 자체의 문제는 그다지 크지 않다. 진도. 대한민국은 2012년 현재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다. 즉 분단의 특수성은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소재라는 것. 영화에서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가 주기적으로 인기몰이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이나믹 코리아의 이면에 은폐된 그늘, 그리고 그 그늘을 치유하는 한풀이로서의 문학적 은유는 대한민국 문인만이 취할 수 있는 호사(?). 만약 황석영이 야심가라면? 하며 불편한 심정으로 책을 읽는다.

 

황해도 진지노귀굿열두 마당을 기본 얼개로 했다는 한 이 책은 굿의 제의적 속성이 그러하듯, 망자의 을 알고, 공감하며, 의 풀이를 궁극의 목적으로 한다. 여기서 은 분단의 역사가 잉태한, 동족상잔의 비극과 그 비극의 현재진행형을 말한다. 미주 한인 동포인 류요섭 목사가 방북해서, 50625의 참상을 재확인하며, 망자와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은 곧 에로의 다가섬이다.

작품의 상징적 장치는 주인공 류요섭의 직업이 목사라는 것과 제목 및 얼개의 배열이 각각 굿이라는 무속적 전통 요소를 차용했다는 것이다. 이는 기독교의 코스모폴리탄적 박애주의와 한국적 전통의 한 풀이를 등가적 차원으로 융합시키는 작업이다.

 

그런데, 왜 망자들을 좀비처럼 등장시켰는가 몰라?

Posted by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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