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토지(21권) (나남, 2002) 읽다.

  


유장한 물줄기, 토지를 읽다

 

애초에 생각은 이랬다.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읽고 맘껏 자랑해 주겠다고. 그러나 분량이 분량인지라 읽는 일은 늪처럼 깊고, 나는 침잠해 갔다. 반세기 동안 쓴 책을 반 년만에 읽으리라고 생각한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3년을 걸려 책을 읽는다. 이제 다 읽었다.

 

느리며 느린 물줄기의 기승전결,

유장한 내러티브 안에 끊임없이 반복되는 수축과 이완의 얼개. 이 책은 질 - - - 장의 내용적 얼개가 있다. 가장 작은 장에서부터 편으로 부로 이야기는 확대확장되는 구조인데 매 장, 그리고 매 장면은 들숨과 날숨처럼, 근육의 수축과 이완처럼, 봄의 약동과 가을의 조락처럼, 생의 듦과 나감처럼 움직인다. 모세혈관이 꿈틀거리듯.

 

무엇 하나 정해진 것 없는 우리들의 삶.

작품 속의 인물들은 모두 비결정적 원자로서 세계를 조직한다. 비결정적 원자다. 가령, 최치수, 구천, 별당 아씨, 윤씨 부인, 김개주, 우관 스님, 혜관 스님, 길상이, 서희, 봉순네, 봉순이, 수동이, 김서방, 강 포수, 조준구, 꼽추 아들, 김 훈장, 귀녀, 김평산, 칠성이, 임이네, 용이, 월선, 홍이, 목수 윤보, 그리고 두만이네. 평사리, 동학 농민 운동, 이복형제, 역질, 그리고 러일 전쟁과 간도 이주. 점선처럼 나열된 단어와 관계들의 지난한 흡착관계.

 

삶은 여러 조건들의 결합이다.

조건과 조건은 마치 유전자처럼 배열 방식과 결합의 순서에 따라 다른 산출값을 지닌다. 조건은 가변적인 생물이다. 삶은, 그래서 역사는, 살아있는 생물로서 태어나고 생장하며 흐른다. 미완으로 완성된 결말 구조는 그것 자체가 삶의 축소판이다. 또한 마치 영화의 파노라마 기법처럼 시선의 원근과 인물을 매개로 변화하는 초점의 이동에서 노작가의 젊은 에너지를 느낀다.

 

그런데 난

난 무엇을 읽었던 것일까.



Posted by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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