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바리데기』(창비, 2007) 읽다.
21c, 설화의 복원과 주조를 말하다
한겨레 연재될 때 몇 번 읽다. 이제 책으로 읽는다.
아래는 ‘바리데기’(혹은 ‘바리공주’) 설화의 줄거리다.
설화에 따르면, 옛 한국의 어느 왕이 있었는데 (어비대왕 혹은 오구대왕이라고 한다) 혼례를 일년 미루어야 아들을 낳고, 길하다는 예언을 무시하고 결혼한 탓에 아들을 낳지 못하였다. 딸만 계속 낳다가 마침내 일곱째도 딸로 태어나자 버렸다. 바리공주가 태어나자 왕이 공주를 버려, 바리공주는 한 노부부에 의해 구해져 양육되었다. 후에 왕과 왕비가 죽을 병이 들어 점을 쳐 보니 저승의 생명수로만 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여섯 공주 모두가 부모를 위해 저승에 가길 거부했는데 바리공주가 이를 알게 되어, 바리공주는 자신을 버린 부모를 구하기 위해 기꺼이 저승에 가겠다고 하였다.
바리공주가 저승에 가 약이 있는 곳까지 갔는데, 저승의 수문장이 바리공주와 일곱 해를 살고 일곱 아들을 낳아야 약을 주겠다고 하였다. 바리공주가 그 조건을 채운 뒤 수문장과 일곱 아들과 함께 약을 갖고 이승에 돌아오는데, 궁에서 나오는 왕과 왕비의 상여와 마주쳐, 가져온 영약으로 되살렸다.
왕이 바리공주에게 물어 바리공주의 남편이 된 저승의 수문장은 장승이, 일곱 아들은 칠원성군이 되었고 바리공주는 이러한 연유로 왕에게 자청하여 한국 무당의 조상이 되었다.
출처 : 위키백과 (이본에 따라 내용의 가감이 있음)
황석영의 소설 『바리데기』는 설화 ‘바리데기’를 모티프로 한다. 아니 소설은 무대 장치만 현대적으로 변용할 뿐 설화의 서사구조를 그대로 답습한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이런 거다.
바리데기의 기본 구조는 여타의 영웅 설화 구조를 닮았다.
1. 고귀한 혈통 : 설화 ‘바리데기’는 왕의 딸이다. 소설의 ‘바리’는 할아버지가 6․25 영웅이었으며, 아버지는 수재다.2. 기이한 출생 및 뛰어난 능력 : 설화 ‘바리데기’에서 왕은 금기를 어기고 결혼한 죄로 일곱 명의 딸을 낳는다. 일곱 번째 딸 ‘바리데기’는 혼자서 저승에 갔다 올 능력이 내재돼 있다. 소설의 ‘바리’ 역시 일곱 번째 딸로 태어난다. ‘바리’는 타인의 과거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초월계와 인간계를 교섭한다.
3. 버려짐과 조력자의 등장 : 설화와 소설에서 주인공 모두 일곱 번째‘도’ 딸인 죄로 버려진다. 설화에서 ‘바리데기’는 ‘노부부’와 ‘부처’, ‘마고할미’ 등의 도움을 받는다. 소설에서 ‘바리’는 ‘할머니’, ‘칠성이’, ‘까막까치’(초월계), 그리고 ‘소룡 아저씨’, ‘샹 언니’, ‘탄 아저씨’, ‘루 아저씨’, ‘압둘 할아버지’(인간계) 등의 조력자로부터 위기를 벗어난다.
4. 시련 : 설화에서 생명수를 구하기 위해 저승으로 가는 부분(‘무상신선’의 가사 도움과 자식 낳아주기 포함)과, 소설에서 기아, 산불, 밀항, 아기의 죽음 등은 시련에 해당한다.
5. 승리 : 설화에서 ‘바리데기’는 저승에서 가져온 생명수로 죽은 부모를 살리고 죽음을 관장하는 ‘무신(巫神)’이 된다. 소설에서 ‘바리’는 다시 태아를 잉태하고 생명을 생산하는 ‘어머니’가 된다.
번호까지 붙여 가며 거창하게 분석했지만, 실은 단순하다.
설화 속 ‘바리데기’가 생명수로 부모를 살리듯 망령(亡靈)들을 저승으로 인도하듯, 소설 속 ‘바리’가 아이를 잉태하여 생명을 다음으로 인계한다는 것.
말하자면 설화의 ‘바리데기’가 죽은 자를 위무하는 죽음을 관장하는 신이라면, 소설의 ‘바리’는 질곡의 삶을 어떻게든 살아남아 생명을 표상하는 신이 되었다는 말씀.
그런데 소설을 읽으며 내내 든 의문. 왜 황석영은 이런 글을 쓸까. 전작 『손님』에서 분단의 비극을 코스모폴리탄으로서의 기독교로 치유하는 것도 참 어색했는데, 이 소설 역시 시공간을 뛰어넘어 재생한 ‘바리’가 정해진 궤적을 따라 작동하는 시계태엽인형 같다는, 이 찜찜한 기분은 또 무엇일까. 노벨, 노벨, 노벨의 환청이 들린다.
이후로 전개될 황석영의 소설을 일부러 읽지는 않을 것 같다는 이 예지는 그리고 또 무엇일까.
'갈무리 >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슈타인 가아더, 『소피의 세계』ㅡ 철학의 담론을 소설의 형식으로 주조한 메타픽션 (2) | 2013.10.09 |
---|---|
무라카미 하루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ㅡ 글쓰기란 주제가 아니라 형식이다 (0) | 2013.09.28 |
박경리, 『토지』ㅡ 유장한 물줄기, 토지를 읽다 (0) | 2013.03.26 |
찰스 디킨스, 『위대한 유산』 ㅡ 위대한 것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이다 (0) | 2012.12.26 |
황석영, 『손님』 ㅡ 제의적 한풀이와 기독교적 화해 (0) | 2012.1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