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우,『게 눈 속의 연꽃』(문학과 지성, 1990) 읽다.

  

그대 몸 속 한가운데에 내부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입에서 항문까지 그 꾸불꾸불한 길은 외부이다. 그러니까 삶은 거듭되는, 커다란 ‘빵꾸’이다. 구린내도 자주 맡으면 향기롭지 않은가, 된장처럼. … 중략 … 여기가 바로 바깥인데 왜 안 나가지냐.


위는 책 뒤표지 황지우의 발문이다.
황지우는 말한다. 몸 속에 내부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내부라 생각하는 몸은 외부와 통했으므로 기실 외부이다. 여기가 바깥인데 왜 바깥으로 나갈 수 없는가. 바깥은 안에 있기 때문이다. 바깥에 있으면서 자꾸만 바깥으로 나가려 하니 바깥으로 갈 수 없다. 바깥은 내부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놈을 어떻게 잡을꼬.
뫼비우스의 띠, 클라인씨의 병, 혹은 만다라.


황지우의 네 번째 시집『게 눈 속의 연꽃』에서 그는 길(!) 위에 섰다.
일견 길이란 소재는 진부하다. 애초에 유목민이었던 인간에게 길이란 노동이고, 사랑이며, 저주고, 삶이었다(디지털 노마드, 역시 마찬가지겠지!). 헤아릴 수 없는 시인이 길에다 물음표를 뿌리며 걷고, 회수하지 못한 마침표를 그리며 길에서 길을 잃었다. 시․공간을 초월해 보편적일 수밖에 없는, 이 길을 황지우가 다시 걷고 있다.


시인이 길에 서 있는 이유는 분명치 않지만, 정황을 미뤄보건대 출발점(서울)은 확실해 보인다. 서울에게 쫓겨난, 혹은 서울에서 탈출한 황지우는 서울을 돌아보며 ‘찢어버리고 싶을 만큼’의 적의(敵意)를 표하기도 하고 ‘이제 그만 따라’오라고 애원하듯 부탁하기도 한다. 서울은 그에게 ‘얼마간 굴욕을 지불해야 지나갈 수 있는 길’이었으므로, 도시로부터 탈출한 시인은 ‘창자 같은 갱도를 뚫고 지금 막장을 막 관통한 것’이라며 ‘세상과 끊겼다는 절박한 안도감’을 경험한다. (「허수아비」연작시나「산경(山徑)」,「화엄광주(華嚴光州)」등의 시편에서 황지우가 느낀, 세상에 대한, 혹은 스스로에 대한 절망과 분노가 전위적이며 실험적으로 나타나 있다.)

서울을 떠난 길은 두 갈래의 방향으로 나뉘어진다. 산으로 가는 길과 바다로 가는 길이 그것. 이른바 대지와 하늘의 경계점이 산이며, 대지와 해원(海原)의 경계점이 바다이다. 그것들은 각각 수직과 수평의 극한점이며, 대지를 밟아야 하는 인간이 닿을 수 있는 최극점이다. 그곳은 영원과 찰나의 교점이며, 초월성과 유한성이 맞닿을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이며, 불변과 가변의 기준점이다. 서정주는 여기서 ‘문(門) 열어라 꽃아, 문(門) 열어라 꽃아’ 애원했으며, 청마는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을 흔들며 ‘소리 없는 아우성’을 외쳤다. 지구 반대편의 어느 나라에서는 소멸되는 영혼을 천장(天葬)으로 하늘에 닿게 한다지만, 기껏해야 우리는 풍장(風葬)을 봤을 뿐 천장(天葬)은 알지도 못한다. 시인은 하늘길을 열 수 있을까.

황지우는 풀꽃을 보며 ‘이름 부르며 마음과 교미하는’ 경지를 맛보기도 하고, ‘잔설에 푸른 나무 그림자를 드리운 길이 천상으로 뻗쳐 있’는 것을 직시하며, 설레며 산을 오른다. 산마루에서 황지우는 달콤하고 지루한 삶의 비밀을 본 것일까. 쉽지 않다. ‘산을 오르는 동안 사람들은 자신의 몸무게에 의해 실존주의자가 되었다가 산꼭대기에 이르면 유물론자’가 된다. 유물론자는 산의 정상에서 하늘로 오르는 계단을 밟을 수 없다. 유물론자에게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절의 한편에 ‘구리 물고기’ - 풍경(風磬) 속 물고기가 눈을 감지 않는다면 하늘길을 볼 수 있을까. - 가 ‘낚시에 거려 흔들리고 있’다. 이놈을 어떻게 잡을꼬. 마침내 ‘모든 길을 끊는 눈보라’는 ‘다시 처음부터 걸어오라, 말한다’.

 

비로소 바다로 간 거북이
- 김현 선생님 영전(靈前)에

 

큰 거북이 한 마리
이 진득진득한 진흙밭에
놀다 갔구나
몸뚱어리는 덧없어도
육체성은 耐久的이었다는 걸
알려주는 그대 肉體文字
무릇 文體란 몸으로 꼬리치는 것,
그렇게 뻘밭에 잠시 놀다가
먼 바다 소리 먼저 듣고
큰 거북이 서둘러간 뒤
투구게들, 어, 여기도
바다네, 그대 몸 나간 진흙 文體에
고인 물을 건너지도
떠나지도 못하고 있네
舊盤浦 商街 맥주집 문을 열고 나와
잠수교 밑으로 내려가면, 거기,
바다, 바다가 있지, 그렇지만
아, 게의 近視 앞에 바다는 있지만
바다가 보이지 않네
뵈지 않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고
없는 것은 없는 것이므로
바다로 간 큰 거북이여
不死보다는 生이 낫지 않은가

 着語: 김현 선생은 지난 6월 27일 새벽에 영면하셨다. 서울대 병원 영안실 빈소에는, 『文藝中央』(87년 여름호)에 졸고「바다로 나아가는 게: 김현과의, 김현에로의 피크닉」과 함께 게재되었던, 서재 앞에서 환히 웃고 계시는 당신의 근영이 영정 액자에 끼워져 모셔져 있었다. 사흘 후 주검은 한강 상류 양수리 지나 경기도 양평의 퍽퍽한 사토질 땅에 묻혔고, 인부들이 포크레인으로 함부로 파낸 볼품없는 그 구덩이에 내려가 있는 관 위로 모래흙 한줌 던질 때, 이상하게도 나도 그랬지만 우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토록 죽음의 예감에 집착하셨고 그 문턱에 이르는 마지막까지 그것에 대해 글을 남기셨으나 당신이 훌쩍 넘어가버린 저 너머에 대해 우리에게 알려줄 길이 없는 심연에 드신 선생님, 죽음 뒤에도 집은 있어야 하니, 부디 좋은 방 얻어 오늘밤 편히 주무세요.


거북이 한 마리가 바다로 갔다. 뻘밭부터 바다까지 거북이가 남긴 긴 흔적이 길처럼 이어져 있다. 거북이가 떠난 그 진흙의 흔적들, 고인 물에 게들이 기어 다닌다. 투구게는 고인 물을 건너지도, 바다로 떠나지도 못한다. ‘유물론자’인 투구게는 바다가 보이지 않으므로, 투구게는 바다에 갈 수 없다. 바다를 지척에 두고 투구게는 바다를 보지 못하므로 바다에 갈 수 없다. 있고 없고, 없고, 있다는 이 역설적 인식은 ‘안에서는 바깥만 보고 있었는데 안에는 또 안이 있었구나’라는 탄식이나, ‘그래, 좀 편해? 아무리 멀리 밖으로 나가봐, 거기에 또 바깥이 있지!’라는 자조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눈보라를 뚫고 길의 끝에 다다른 ‘투구게’는 ‘바다거북이’를 보며 묻는다. 이놈을 어떻게 잡을꼬.

‘날기 위해 절벽으로 달려가는 새처럼 내 희망(希望)의 한가운데에는 텅 비어 있’었음을 목격한 시인은 문득 돌이킬 수 없는 깨달음을 느낀다. “삶이란 게, 좆또 아무것도 아니었네” 시인은 ‘서울을 빠져나올 때, 아내에게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아. 이건 내가 나에게 내린 유배야”라고 말했던 것도 우스꽝스럽고 부끄럽다’는 낯뜨거운 고백도 서슴지 않는다. 이제 시인은 ‘세상에서 할 일은 세상을 죽어라 그리워하는 것이려니, 혹시 사람이 오나 빗자루 들고 길 밖으로' 나가 '그물'을 칠 준비를 한다.  가슴 속에는 옛 조사(祖師)의 어드바이스를 품고, ‘이제는 그대 흔적을 찾지 않고 그대가 올 곳으로 먼저 가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황지우가 미리 가 쳐놓은 그물, 산과 바닷가의 날실과 씨실 만든, 이 성긴 격자 그물로, 과연 시인은 ‘이놈’을 잡을 수 있을까, 그 결말이 궁금하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着語 : 기다림이 없는 사람이 있으랴. 희망이 있는 한, 희망을 있게 한 절망이 있는 한. 내 가파른 삶이 무엇인가를 기다리게 한다. 민주, 자유, 평화, 숨결 더운 사랑. 이 늙은 낱말들 앞에 기다리기만 하는 삶은 초조하다. 기다림은 삶을 녹슬게 한다. 두부 장수의 핑경 소리가 요즘은 없어졌다. 타이탄 트럭에 채소를 싣고 온 사람이 핸드 마이크로 아침부터 떠들어대는 소리를 나는 듣는다. 어디선가 병원에서 또 아이가 태어난 모양이다. 젖소가 제 젖꼭지로 그 아이를 키우리라. 너도 이 녹 같은 기다림을 네 삶에 물들게 하리라.

 

 

 

Posted by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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